유부녀의 스타벅스 캐나다 워홀 [20]
[20] 너가 혼자 있는 게 싫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쇼핑몰은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복작였고,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곳곳에 생겼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진정한 ‘솔로 크리스마스’다.
가족도 없고, 애인도 없고…
나 홀로 방에서 와인이나 깔까?
- 자기야, 나랑 같이 크리스마스 파티갈래??
케이트에게 문자가 날아왔다.
“크리스마스 파티?”
- 응! 나랑 친한 친구 그룹이 있는데,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같이 모여서 파티하거든!
자기도 와!
우리끼리만 하는 게 아니라 각자 가족들도 같이 와!
“근데 내가 껴도 되나?”
- 아휴 당연하지!
보통 부부 동반으로 같이 오는데
우리 남편은 소심해서 이런 파티는 안 와.
자기가 우리 남편 대신 온다고 생각해!!
캐나다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초대해 주면 완전 땡큐지!”
- 좋아 좋아!
그럼 내가 파티 시간 맞춰서 데리러 갈게!
–
–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였다.
케이트가 5년 동안 인연을 이어 온 친구들과
그 친구들의 가족들로
파티장은 그득했다.
“다들!! 이쪽은 내 와이프 꿈뀨야!!”
케이트가 장난스럽게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꿈뀨!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꿈뀨!”
다들 처음 보는 나를
거리낌 안아주고 볼뽀뽀도 해주며
환대해 주었다.
“자기야! 이거 좀 옮기는 거 도와줄래?”
케이트가 낑낑대며
트렁크에서 뭔가를 꺼냈다.
세상에.....
“케이트... 이게 다 뭐야..?”
두 손으로 다 들리지 않을 만큼의 음식이
케이트의 트렁크에 가득했다.
“파티 음식이지!”
케이트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뭐야..
준비할 거 아무것도 없대매...
“배달시켜 먹는 거 아니었어?!
나한테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라며!”
트렁크에 한 가득한 음식을 보고
케이트에게 소리를 바락 질렀다.
음식을 준비해 오라고 했다면
당연히 준비해 왔을 거다...
아무것도 준비할 게 없다면서
이렇게 본인만 음식 바리바리 싸들고 온 건
상당한 반칙이었다.
“아오! 귀 따가워!!
내가 너한테 음식 싸 오라 할 것 같은 사람처럼 보여?!”
닥치고 자긴 그냥 먹기나 해.
캐나다에서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크리스마스잖아!
자! 이거 같이 들자!
셋에 같이 들어 올리는 거야!”
캐나다에서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크리스마스..
그 말에 콧등이 시큰거렸다.
–
–
파티장에 음식이 가득 차려지고,
케이트와 친구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음식 앞을 둘러쌌다.
“기도해야지! 기도!”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인 크리스마스답게
모두 모여 음식 앞에 기도 할 준비를 했다.
“우리의 새 멤버 꿈뀨가 해볼까?”
엥? 나..?
케이트가 내게 기도 제안을 건넨
조니의 등짝을 후려쳤다.
“닥쳐, 조니.
내 와이프 건들지 마.”
“꿈뀨! 종교 있어요?”
누군가가 물었다.
“아니요.. 저는 무교….
기도 어떻게 올리는 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이 조니를 일제히 쳐다봤다.
“야ㅋㅋㅋㅋ
왜 종교도 없는 애한테 신앙을 강조하는데!!”
“조니 너 땜에 꿈뀨 당황했잖아ㅋㅋㅋ”
조니가 항복하는 손짓을 올렸다.
“워워워.. 알겠어, 알겠어.
다들 진정해. 내가 정말 미안하다!
꿈뀨, 미안ㅋㅋㅋㅋ
자자자, 다들 눈 감고..
한다..?
하나님,
오늘 이 자리에 모두 있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여기 우리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을 시간을 주심에 감사하고,
항상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하고 건강할 수 있도록
지켜주시옵소서.
아멘.
Merry Christmas Everybody!”
–
–
내가 살고 있는 나의 세상에선
신은 존재하지 않지만
여기 함께한 사람들과 같이
두 눈 꼭 감고, 두 손 꼭 모아
자그마하게 속삭였다.
‘바다 건너, 13시간의 시차를 넘어온
이 낯선 타지에서
사랑받고 또 사랑 주는 삶의 기회를 안겨 준
운명에 감사합니다.’
–
–
“내일 크리스마스이브인데 뭐 해?”
벌써 크리스마스 이브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일하지. 내가 할 일이 뭐 있겠어”
공휴일 근무는 시급이 평소보다 1.5배다.
가족도 없고, 애인도 없는데
일할 거 말곤 할 게 없었다.
돈도 더 준다는데…
“아니~ 너 일하는 거야 나도 알지
내 말은 너 근무 끝나고 말이야”
같이 일하던 슈퍼바이저인 아떼가 물었다.
“그냥 일 끝나고
다운타운 가서 크리스마스 트리 구경하려고 하는데?”
캐나다의 크리스마스는
한국의 크리스마스보다는 더 성대해서
다운타운은 곳곳에 트리로 꾸며졌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트리 구경하러
다운타운에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는 가족들이랑 보내야지!
크리스마스 이브랑, 당일에는 길거리가 엄청 조용해.
다들 집에 가족들이랑 모여서
밥 먹고 선물 까느라
그날은 여는 가게도 없어.”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연인들의 공휴일이 아니던가..
서양의 크리스마스는
우리나라의 설, 추석과 같은 큰 명절과도 같아서
크리스마스 연휴 전 후로는
길거리가 조용하단 사실을 몰랐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우리 집에 와.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시간 보내자.
와서 하룻밤 자고 가, 꿈뀨.”
아떼가 말했다.
“말은 너무 고마워 아떼.
근데 아떼도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야지!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날이 크리스마스라며.”
아떼는 혼자 사는 게 아니었다.
쌍둥이들의 엄마이고,
한 남자의 아내 이기도 했다.
그런 아떼의 가족과의 시간을
방해하긴 미안했다.
“크리스마스잖아!
근데 꿈뀨 너는 가족들이 여기 없잖아”
아떼가 걱정된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떼!! 난 전혀 혼자가 아니야!
이미 케이트와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도 다녀왔고
아떼도 이렇게 챙겨주는데
내가 혼자라는 생각할 겨를이 어딨어!”
“난 너 혼자 있는 게 싫어..
내가 너를 많이 아껴서 그래..”
참...
캐나다에 온 지 고작
8개월 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니..
–
–
과연 아떼의 말이 맞았다.
크리스마스 이브 전 날은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크리스마스 이브와 당일이 되니
거리가 한산했다.
매장에 손님이 너무 없어서
근무시간이 지루할 정도였다.
“꿈뀨!
오늘 크리스마스인데 일하느라 수고했어!
집 가서 열어봐!”
지루한 근무시간이 끝나고
아떼가 다가오더니
무언가 담긴 봉투를 하나 건넸다.
–
–
크리스마스 근무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아떼가 건넨 봉투를 열어봤다.
락앤락 그릇들.
뚜껑을 하나씩 열어봤다.
돼지고기 볶음
누들 볶음
달달한 케이크까지..
그 어느 곳에서도 살 수 없는
아떼가 손수 만든 음식이었다.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
–
이제 내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4개월.
남은 시간 동안
아낌없이 사랑하고, 감사하며
보내야겠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