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덕 김주현 Sep 13. 2024

1화 '힘의집' 주르카네زورخانه

<고대운동 이야기> 제 1장. 열망 : 테헤란


고대운동 이야기 


제 1장. 열망 : 테헤란



“자네 나랑 레슬링 한판 할텐가?”

테헤란 남부 슈스에 위치한 Sajjadieh 주르카네에 처음 방문했을 당시 60대 후반의 할아버지 한분이 건넨 첫 마디였다. 내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그래도 할아버지 입장에서 나는 딱 두달 전 20대에서 30대로 앞자리가 바뀐 아직 한창인 나이 서른 젊은이다. 여기 짐좀 들어달라 부탁을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데 레슬링으로 한판 붙자니. 당황해서 우물쭈물하니 다른 젊은 청년을 데리고 오더니 이 기술 저 기술 시범을 보이셨다.

‘아, 나는 잘못 했다가는 뼈도 못 추리겠구나.’

손사래를 치며 정중히 거절했는데 내내 아쉬우신지 계속 물으신다. 여기까지 왔는데 레슬링을 하지 않는 것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표정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이란 할아버지들의 첫 인상이다. 여기 할아버지들은 두시간 동안 엄청난 크기의 방망이를 휘두르고 비로소 레슬링이라는 본 운동에 들어간다. 실제로 해보면 방망이를 휘두르는 고대운동의 세션 전체를 소화하면 상당히 강도가 센데 이들은 이를 겨우 웜업 정도로 여긴다. 젊은 20~30대도 아니고 60~70대가 그렇게 여기고 있다. 할아버지들이 노인에게 적당한 스포츠라 함은 탑골공원에서 바둑을 두거나 게이트볼 정도가 최선이라 생각하는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곳은 제 3세계 이란. 책 <소마틱스>에서 ‘노화는 신화다' 라고 주장한 토마스 한나의 혁명적 외침이 여기 이란에서는 ‘무슨 당연한 소리를 그렇게까지…’ 라고 여기지 않을까. 과연 나이가 정말 숫자일 뿐인 이 할아버지들에게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1화 '힘의집' 주르카네زورخانه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에 이러한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이 유명 여행 사진작가의 필름 사진을 현상 하던 중 사진 속 인물이 마치 여기로 오라는 듯 손짓을 하는 환상을 본다. 나에게도 그런 사진이 있다. SNS에서 우연히 본 오랜 흑백 사진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서는 힘을 보여주면서도 크게 힘들이지 않았다는 듯 무덤덤한 표정으로 서있는 사진 속 사나이들이 나를 향해 무언의 손짓을 했다. 사진 속 공간은 주르카네라 불리었고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르카네가 있는 이란에 직접 가보는 수 밖에 없었다. 


<주르카네에서 철완鐵腕을 자랑하는 수련생들 사진 @google>

'주르카네زورخانه'는 이란에서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을 정도로 어렵지않게 찾아볼 수 있는 전통 체육관을 말한다. 직역하면 ‘힘의집’을 의미한다. 페르시아어는 매우 직관적인 일반 명사들이 많아서 기초 명사만 조금 알아도 이란 여행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도서관은 직역하면 ‘책집' , 에스컬레이터는 직역하면 ‘전기계단' 이런식이다. 전통 체육관 주르카네라는 공간에서 방망이를 휘두르는 운동 이름도 매우 직관적이다. 이란에서는 이 운동을 '바르제쉬에 바스타니ورزش باستانی’라 부르며 이를 직역하면 ‘고대운동'이다. 주르카네를 찾아 고대 전사들이 가진 철완의 비밀이라는 고대운동을 경험해 보는 것. 그것이 이란 여행의 목적이었다. 


이란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인기가 많아서 한국인은 특별 대우를 받는다. 드라마 <주몽>과 <대장금>은 시청률 90%를 넘겼다. 10명 중 9명이 동시간대에 하나의 드라마를 보는 것도 신기한데 그게 막상 한국 드라마라니 참 신기할 따름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시작된 신정 정치로 인해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드라마 내용에 제한이 많다. 마침 정치적, 선정적이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한국의 사극 드라마가 방영 기준에는 부합했다. 심지어 공항에서 도착비자를 찍어주는 이미그레이션 직원 조차 한국 사극 드라마를 보면서 일하고 있었다. 비자도 없이 무작정 왔는데 대한민국 여권을 보며 나지막이 “꼬레…” 라고 읊조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란에는 왜 왔는지도 물어보지 않고 냅다 도장부터 찍어준다. 걱정과 달리 거의 프리패스에 가깝게 공항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했다. 아무튼 덕분에 테헤란 시내 어딜가나 이목이 집중되었고 관심을 한몸에 받고 질문도 많이 받았다. 한국인 남성을 보면 무조건 “주몽!” 부터 외치고 본다. 당연히 여성을 보면 무조건 “소서노"를 외친다. 한 평생 이란에 살면서 TV에서만 보던 한국인을 실제로 마주하게되니 마치 연예인을 영접한 것 마냥 반응한다. 사진을 찍자고 하거나 영상통화를 하면서 친구나 가족에게 자랑하기도 한다. 분명 길거리에서 남녀가 같이 사진을 찍는 것도 법적으로 처벌 받는다 들었는데 이란 시내를 돌아다닌 첫날부터 히잡을 쓴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성분들이 처벌을 무릅쓰고 한국에서 온 어리둥절 여행자와 사진을 찍기를 여러번 성공했다. 지하철 혹은 길거리에서 이들이 가장 많이 한 질문은 바로 “이란에 왜 왔어요?” 였다. 페르시아 대제국의 후예로서 자부심은 높지만 현재의 정치적 상황과 국가적 이미지로로 인해 외국인 여행객이 드문 점 그리고 특히나 한국인 여행자이 도대체 여길 올만한 이유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답했다.

“주르카네 배우러 왔어요"

이 대답에 대부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첫째로는 내가 말한 ‘주르카네' 발음이 안좋아서 한번에 알아듯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크-’ 발음이 목 깊숙히 가래 긁어내듯이 발음해야하는데 쉽지 않았다. 둘째로는 ‘주르카네’는 힘의집이라는 뜻으로 운동 보다는 공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가 ‘힘의집 배우러 왔어요' 라고 말한 셈이다. 당연히 어리둥절 할 수 밖에. 결국 내가 방망이 휘두르는 모션을 취하면 그제서야 알았다는 듯이 박수를 치며 고대운동이라는 이름을 제대로 알려준다. 

“바스타니!“

풀 네임은 ‘바르제쉬에 바스타니'다. ‘바르제쉬’는 ‘운동’, ‘바스타니’는 ‘고대'라는 뜻으로 합쳐서 써야 ‘고대운동’ 이라는 의미를 가지지만 이란에서는 누구나 ‘고대'라는 말만 꺼내도 ‘고대운동'으로 받아들인다. ‘고대', ‘고대의' 라는 말을 수식어 뒤에 따를 피수식어는 엄청나게 많을텐데 그 최정점에 ‘운동'이 자리잡아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이들이 내 이란 여행 목적을 알게된 기쁨도 잠시. 다시 고개를 갸우뚱 하며 의문을 제기한다.

“왜?”

이미 올림픽 정식 종목이자 전세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태권도가 한국 본토에 있는데 굳이 노인들이나 하는 운동을 배우러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도무지 이해가 안간단다. 그도 그럴것이 이란 MZ세대 입장에서는 안그래도 이시대 세계의 흐름과 정반대로 후진해서 과거로 회귀하는 자신들의 나라에 불만이 상당할텐데 힘의집과 고대운동을 이와 같은 선상에서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는 낡은 관습으로 여길 수 도 있겠다 싶었다. 재미있게도 대화 중 등장한 태권도는 오히려 한국보다 이란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으며 심지어 국제대회에서도 이란 선수들이 한국을 넘어 더 상위에 랭크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태권도를 전공한 한국인이 역으로 이란에 와서 고대운동을 배우겠다하니 이란 사람들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될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운동을 배우고자하는 나의 열망은 더 뜨거워졌다. 그들이 두번째로 자주하던 질문 때문이었다. 

“직접 이란에 와보니 어떠세요?”

<테헤란 지하철에서 만난 인연들 @Tehran.2020>

이들은 대외적으로 자신들의 나라가 어떻게 비춰지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미지에 가려진 자신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나 또한 그동안 몰랐던 페르시아 문화 하나하나 감탄일색했고 여행내내 이란인들 뼛속 깊이 배어든 친절과 겸손이 좋았다. 그들의 친절은 이슬람 종교 때문이라기 보다는 고대 페르시아 적부터 간직해온 민족적 특징이라 생각된다. 기원전 538년 기존에 바빌론 포로로 끌려와있던 유대인들을 풀어준, 유대인들로서는 최고의 찬사라 할수 있는 ‘기름부은 자'로 불린 고레스(키루스)왕도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자였다. 이스라엘로서는 나름 큰 빚을 진 민족인데 지금은 사이가 매우 좋지않다. 성경에는 메대-바사 왕으로 등장하는 고레스 왕 통치 시기 당시 페르시아 제국에는 이슬람이 없었고 조로아스터교가 국교였다. 조로아스터교에서 강조하는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은 시간이 흘러 국교가 바뀌었음에도 이들 민족에 뿌리깊이 남아있는 민족성이 된 듯하다. 마치 친절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가진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실제로 테헤란에 오기 바로 전에 있던 아프리카는 해가지면 절대 돌아다녀선 안되는 위험한 대륙이었지만 이란은 혼자서 늦은 밤까지 별다른 걱정없이 대중교통을 타고 돌아다닐 정도로 치안도 좋았다. 한국을 제외하고 이정도로 밤 늦게까지 걱정없이 다닐 수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었다. 또 다른 고대운동 본고장 인도는 미안하게도 다시 한번 가자고 하면 항상 망설여지는 곳이지만 이란만큼은 언제든지 다시 오고 싶은 그런 나라였다. 


선입견을 가진 것이 미안했다. 뉴스를 통해 정치적, 군사적, 종교적 이슈만 접해왔고 할리우드 영화나 미드에서 테러를 일으킨 배후는 항상 이란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여행하기엔 위험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해발 4000m 알부르즈 만년설 아래 자리잡은 도시는 평화로웠고 사람들은 여행자에게 친절하고 마주하는 불편한 상황에서는 항상 쿨했다. 게다가 가장 놀란 것은 정식 국가명이 이란 이슬람 공화국the Islamic Republic of Iran 인것 치고는 사람들이 종교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여행 중 만난 이란 사람들 중엔 물론 독실한 신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종교적 규제와 정치적 탄압에서 해방과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이었다. 가장 잘 설명해주는 사례가 바로 히잡이었다. 테헤란 공항에 도착한 첫날, 비행기가 착륙하고 문이 열리고 난 뒤 그제서야 여성들이 가방 깊숙히 처박아둔 히잡을 쓰는 것이었다. 외국에서는 법이 적용되지 않고 이란 영토로 들어왔으니 어쩔 수 없이 지키는 것이다. 히잡으로 대표되는 종교적의무를 현재 이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법으로 강제하기 때문에 지킬 뿐 아무리 봐도 영화에서처럼 종교로 인해 테러를 일으킬만한 신앙인들이 아니었다. 거리에서 본 여성들도 상당수가 최대한 히잡이 얼굴을 안가리게 마치 패션 아이템처럼 머리 끝에 벗겨지지 않을 정도로 살짝 얹어만 둔 경우가 많았다. 꼭 해야하는 패션 아이템 정도로 생각하는 듯 했고 가능하다면 실내에서 만큼은 하지 않으려는 장면을 종종 목격했다. 유신 독재시절 민주화 운동이 일어날 당시 우리나라 상황 처럼 이미 이란 사람들은 현 정부와 정권을 잡은 수뇌부들로부터 마음이 떠난 것처럼 보였다. 오죽하면 이란 여성들의 꿈이 한국사람과 결혼하는 것이라는 농담도 심심치 않게 들었다. 국제 결혼만이 이란을 합법적으로 탈출 할 수 있는 루트라는 것이다. 이왕이면 드라마로 인해 이미지가 좋은 한국으로. 


아무튼 친절한 이란 사람들 덕분에 페르시아어 한마디도 못하던 당시의 내가 주르카네를 잘 찾아갈 수 있었다. 이란 사람들 상당수가 영어에 약했고 숫자 표기마저 아라비아 숫자 대신 페르시아어를 많이 쓰는 상황이었다. 이란에 입성하기 전에 페르시아어 숫자 정도는 알고 가야한다해서 숫자만이라도 익혀두고 갔던 터였지만 이마저도 막상 버스가 승강장에 들어오면 버스 번호와 페르시아어가 같이 쓰여져 있어서 단 시간내에 무엇이 숫자이고 무엇이 글자인지 분간도 쉽지 않았다. 이때마다 근처에 있던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기 일수였다. 그럴때마다 다들 친절하게 알려주려고 애썼고 단번에 해결되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다같이 해결해주고 나서 박수를 쳐주었다. 역으로 친절을 당한 황송한 느낌까지 든다. 재미난 일화가 있다.

<테헤란에서 탔던 버스. 숫자가 페르시아어로 표기되어있다. @Tehran.2015>

슈스에 위치한 Sajjadieh 주르카네에 처음 방문하던 날. 요 몇일 테헤란을 돌아다니다보니 나름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에 요령이 생겼다. 테헤란 도시계획 덕분인지 어떤 버스를 타더라도 오로지 직진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도를 기준으로 세로방향으로 가거나 가로방향으로 가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래서 목적지 위치만 대강 확인하고 구글맵을 보면서 세로방향 직진 버스를 타고 가다가 목적지 즈음에 해당하는 위도에 도착하면 내려서 근처 다른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해 가로방향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서 목적지 근처에 왔다 싶으면 내리는 것이다. 


주르카네에 처음 방문하기로 한 이날도 이 전략을 써서 가고 있었다. 묵고 있던 숙소가 테헤란 북부 근처였기 때문에 일단 Sajjadieh 주르카네가 있는 남쪽으로 한참을 세로방향 버스를 타고 내려와야했다. 남부에 도착해서 구글맵을 다시 살펴보니 가로방향 버스를 타고 ‘슈스’라는 동네에서 내리면 충분히 주르카네에 걸어갈 도착할 수 있는 상황.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버스를 기다리는 옆에 서 계신 어르신께 물었다.

“슈스?” 

영어는 당연히 안통할테니 여기에 정차하는 버스에 타면 ‘슈스’에 가는게 맞는지 확인차 간단히 물어보는 작업이었다. 어르신은 이란인 특유의 고개를 옆으로 살짝 까딱하며 눈을 감았다 뜨는 ‘흠. 아마 맞을껄?’ 이런 느낌의 제스처를 취한다. 버스가 오고 마침 어르신과 같이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나는 버스 기사님께 한번 더 확인차 묻는다. 

“슈스?”

기사님도 똑같은 제스쳐를 취한다. 긴가민가한 제스처에 약간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아니라면 내리라 했겠지.’ 하는 마음으로 요금을 냈고 버스는 출발했다. 그리고 나의 시선은 버스에서 내릴 최적의 타이밍을 잡기위해 핸드폰 구글맵을 향해있다. 같이 탄 어르신도, 기사님도 다른 기존 승객들도 ‘슈스?' 라는 한마디 덕에 동양인 청년이 슈스로 향한다는 사실을 다 같이 인지하고 있는 상황. 막상 도착 전까지 버스는 고요했고 적막만 흘렀으며 딱히 나에게 관심은 없는 듯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잠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가 다시 열어보니 막상 구글맵을 통해 곧 도착하는 다음 정류장 표시에서 내리면 바로 횡단보도 건너편에 고대하던 주르카네 체육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당연히 급하게 하차 벨을 누르고 내리려는 찰나. 모든 승객들이 몰려들어서 나를 붙잡고 못 내리게 한다. 처음엔 이유도 모르니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버스 기사님 조차 운전대를 놓고 와서 나에게 걸어와서 여기서 내리면 안된다는 듯이 다급하게 말한다. 

“노! 슈스 노! “

알고보니 구글맵에 슈스라는 지역이 실제보다 넓은 반경으로 표시되는 반면 실제 슈스를 의미하는 정류장은 좀 더 깊숙히 들어가야 있었던 것이다. 나야 구글맵 상으로 주르카네가 이 즈음이 가까우니 당연히 여기서 내리는 것이 맞았지만 이들은 나의 행선지가 오로지 슈스인 것만 알았기 때문에 동양인 청년이 엉뚱한 곳에 하차하지 않도록 다들 나서서 말린 것이다. 행선지를 보다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던 내 실수로 인해 이런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실수라도 보통은 이런일이 벌어지지 않던데. 핸드폰 화면의 구글맵을 보여주며 안심시켜주고 나서야 그들의 친절로 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란에서는 과한 친절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무심한듯 하지만 다른이의 불행을 두고보지 못하는 츤데레 같은 그들의 민족성이 참 호감이 갔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Sajjadieh 주르카네. 
해질녘 도착한 주르카네 건물 1층 밖으로 북소리 연주와 우렁찬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실내로 들어서니 대리석 바닥이 깔린 로비와 카펫이 깔린 기도실 같은 큰 방이 보인다. 이곳에는 아무도 없다. 본능적으로 소리가 들려오는 계단쪽으로 몸이 향했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갈수록 소리가 커진다. 다같이 부르는 노랫소리도 들린다. 단체로 전통 의식Ritual을 행하는 듯한 소리다. 여기가 맞을까 싶은 의문도 잠시, 주르카네로 향하는 작은 문을 발견했다. 문이 작고 특히 높이가 낮아서 마치 절을 하듯이 숙이고 들어가야만 했다. 겸손한 마음과 낮은 자세들어와야 주르카네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단다. 그렇게 문을 열고 마주한 주르카네 내부 광경에 압도당했다. 높은 단상 위에서 북과 종을 치며 노래하는 한 사람 그리고 운동을 위한 1m 깊이로 움푹 파여진 원형에 가까운 경기장, 그 안에서 연주되는 북소리 리듬에 맞춰 방망이를 휘두르던 열명 남짓한 수련생들이 한 목소리로 딱 보아도 동양에서 온 이방인을 향해 인사한다. 

“살람! 바스타니커르!”

‘커르کار’는 ~하는 사람을 뜻하는 어미로 고대운동을 의미하는 바스타니باستانی에 붙어 고대운동을 하는 모든 수련생을 일컫는다. 주르카네에 문을 열고 들어온 이상 이전에 어떠한 삶을 살았든, 여기서 방망이 운동을 했든 안했든 상관없이 동등한 고대운동 수련생 ‘바스타니커르’로 부른다.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 곳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나는 이들로부터 고대운동 수련생으로 부름 받았다. 이슬람력 1393년 12월 11일. 나는 고대운동에 입문했다.

<주르카네 내부 고대운동 수련생들 모습 @Tehran.2015>

첫 방문이라 조용히 들어가서 주르카네와 고대운동 장면만 촬영할 생각으로 갔지만 첫 발을 들인 순간부터 이렇게까지 환대할 줄 몰랐다. 본래 주르카네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방식이라 한다. 할아버지 한분이 와서 움푹 파인 중앙 경기장 고드Gowd 위로 계단 형태로 된 객석으로 안내해줬고 옆에 앉아계신 다른 분들과 관전하면서 조용히 촬영을 시작했다. 얼마지나지 않아 뜨거운 홍차와 각설탕 3개를 쟁반에 담아오시고 마시라는 제스쳐를 취한다. 각설탕을 손에 쥔채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직접 앞니로 각설탕을 하나를 물고 다시 마시는 제스처를 취하고 한마디 하신다. 

“옥췌?”

“아, 오케이. 메르시.”

왜 인지 모르겠으나 이란 사람들이 하는  ‘O.K’ 발음은 ‘옥췌'로 들렸다. 앞니로 물었던 각설탕이 뜨거운 홍차와 함께 녹으면서 목구멍 안쪽으로 흘러들어가니 처음 테헤란에 도착해서 맡았던 의문의 향기가 내 입안에서 감돌았다. 이 날 이후 홍차는 항상 이렇게 마신다. 내가 주르카네에 들어온 온 뒤로도 몇 사람이 더 왔는데 모두 같은 방식으로 맞이한다. 북을 연주하던 모쉐드مرشد (안내자)가 마치 장내 아나운서처럼 운동을 지휘하는 북소리 리듬은 유지한채 누가 입장했는지를 운동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알린다. 연주되는 리듬에 맞춰 방망이를 휘두르던 사람들은 리드미컬한 방망이 휘두르기를 유치한채 입을 모아 또 한번 외친다. 

“살람! 바스타니커르!”

굳이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고대운동을 관전하고 홍차를 마시며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다. 그 분위기가 익숙해질 즈음 고대운동이 중단되고 운동하던 수련생들도 홍차를 마시며 잠시 쉬는 시간이 되었다. 한 할아버지 수련생이 나에게 다가와 페르시아어로 뭐라뭐라 말씀하신다. 옆에 있던 젊은 친절하게 영어로 통역해준 내용은 다시 되물어야 될정도의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He is saying that you want to wrestle with him”

“What? Wrestle? Wrestling?”

레슬링 한판 하자고 제안하신 것이다. 그 한마디로 인해 여기 주르카네에서 운동하고 있는 수련생들이 고대운동을 왜 수련하는지, 그 중에서도 레슬링이 어떤 의미인지, 삶에서 이 운동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이 어느정도 크기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현재 이란은 올림픽 레슬링 최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그 베이스가 바로 오랜세월 보존해온 주르카네와 고대운동 문화다. 이란의 유명 레슬러들은 현재도 주르카네에서 고대운동을 수련한다. 

이전 01화 머리글 : <고대운동 이야기>를 시작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