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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희 Oct 31. 2024

(번외) 내가 만난 그냥 하는 사람들 이야기

추진력이 필요한 나와 당신에게


# 1.

 한 4년 전 합정동에서 소개팅남과 술을 마셨다. 그는 매일 독일어 단어 13개씩을 외운단다. 자긴 언젠간 독일에서 살 거라고. 왜 13개냐니까, 딱 그만큼이 자기가 미루지 않을 수 있는 양이란다. 정식으로 독일어를 배우는 것도 아니었고, 무작정 단어를 외우기 시작한 거라 막상 독일어로는 몇 가지 단어와 인사 정도밖에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어째선지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가득 차있었다. 당장 독일에 떨어뜨려놔도 뭐든 잘 해낼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 그건 그가 무작정 외우기 시작한 13개의 단어들이 모여 만든 자신감일 수도, 생각한 대로 해낼 거라는 자기 확신이었을 수도 있다. 그날 그 눈빛과 목소리는 그를 빛나게 했다. 본인이 ESTJ라고 했으니,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단어 18,000개는 더 외웠겠지? 아니면, 지금쯤 독일에 있을까?

#2.

 친한 고등학교 친구가 돌연 선생님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좋은 수능 성적으로도 교대를 선택해서 진학했고, 임용고시 전국 석차에도 들었던 친구였다. 아이들이 좋아 시작한 일인데, 비합리적인 문화, 매일 교실로 찾아와 협박하는 학부모를 겪으며, 더 이상 이 직업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서이초 교사 사건이 있었는데, 몇 년간의 고충을 들어온 나는 그 사건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았다.

 슈퍼 문과였던 친구는 돌연 약사를 하겠다고 했다. 이과생들을 따라잡기 위해 친구는 고등학교 과학부터 공부해야 했다. 하기로 했으니 하는 거다. 카카오톡도 삭제하고 퇴근 후 공부하기를 3년, 약학전문 시험인 피트를 봐서 지금은 당당한 약대생이 됐다.

 약대 나와서 뭘 하고 싶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녀는 동네 약국을 하고 싶다고 했다. “너랑 어울려”하고 짧게 호응했지만, 진심이었다. 얼굴이 새하얀 친구의 첫인상은 차가워 보이지만 한번 어색함을 깨면 표현도 잘하고 사소한 일도 잘 기억하는 남다른 기억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3.

 이번 일본 여행에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회사 선배의 동생이었다. 그는 20년 전 일본어도 못하던 시절 일본에 사업을 하러 왔단다. 얼마 전 만난 예비 창업자 B의 말처럼 ‘Keep it moving’이다. 32살에 첫 번째 회사를 정리(?)하고, 그때 함께하던 미국 기업으로부터 한국 법인장 자리를 제안받았다는데, 거절했단다. 모두가 그 자리를 승낙하라고 권하니까 별 이유 없이 싫었다고 한다. 모두가 같은 반응을 보여 더 위험해 보였다나. 캐나다의 지인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그는 150명의 회사원이 있는 글로벌 회사의 대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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