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희 Oct 27. 2024

나의 하니와

 미술관이라면 모를까. 박물관에는 딱히 관심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다. 도쿄 국립박물관을 찾아볼 땐 ‘그래도 근본 박물관은 한번 가봐야지’하며, 재미 없으면 정원이나 구경할 요량이었다. 서울로 치자면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것이려나.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에는 각종 흙으로 만든 토우 같은 사진이 잔뜩 담긴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하,니,와’라고 적혀있었다(나는 이제 읽을 수 있다, 한문만 아니라면). ‘조만간 특별전을 하나보다’하면서 박물관에 입장했다.



  한국인 DNA로 웬지 발길이 가지 않는 아시아관은 패스하고, 고대 보물이 많다는 호류지박물관으로 향했다. 이런 ‘박린이(박물관 어린이)’에게도 전시는 아주 심플하고 경쾌했다. 청동기나 철기시대는 벽 반면 정도를 할애해 간단히 소개했다. 일본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서양의 외국인들부터 애증이 뒤섞여 역사만 생각하면 마음이 갑갑해지는 한중일 관람객도 편하게 볼 수 있다. 특히 일본을 중심으로 한 역사에 한국이 거꾸로 등장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역사책을 말 그대로 거꾸로 읽는 느낌이다.

    

 박물관은 섬나라 일본이 중국의 선진문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성실하게 기록했다. 대단한 애국자도 아니지만 백제와의 관계를 얘기하는 부분에선 어쩐지 모를 자랑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러다 통일신라시대 백제가 멸망하던 시절, 선진문화와의 교류가 급감하면서 일본의 자체적인 문화가 발전했다는데, 그때 나온 대표적인 문화재가 바로 하니와란다.


 무릎을 탁쳤다. 하니와를 발견하고 얼마나 일본의 역사 문화학자들이 기뻐했을까. ‘이게 바로 일본거야’라는 말을 객관적인 역사의 언어로 표현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어떠한 보호 유리도 없이 다양한 종류의 하니와를 가까이서 360도로 관람할 수 있도록 아주 자랑스럽게 전시해두었다.



 ‘나만의 것’을 찾은 그 기쁨을 보며 박물관이 귀여운 느낌이 들었다. 그 기쁨이란 어떤 걸까. 나는 그 전시장의 신남과 자랑스러움이 마음에 와닿아서 하니와까지 특별해보였다. 기념품샵에서 알게 됐는데, 이 박물관의 마스코트가 바로 하니와다. 내 걸 찾는다는 건 저렇게나 기쁜 일이구나. 웃기고 귀엽지 않은가. 그럼 사는 수밖에. 나는 ‘카와이(귀여워)’를 연달아 외치며 수많은 고가 제품 중 그나마 가격이 합리적인 키링과 책갈피를 집어들었다.


 키링을 바로 뜯어 가방에 달았다. 내 가방이랑 하나도 안 어울리는데. 좋아하는 것을 해보겠다고 모든 생활을 멈추고 언어도 모르는 도시에서 세 달치 월급을 써가며 보내고 있는 내 생활에 마치 절대 부적이라도 다는 것 마냥. 내가 좋아하는 것. 말은 거창했지만, 소소하게 나는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고,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으며, 실제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의 글을 공개하려는 마음을 먹었다. 조금만 더 집중하면 나만의 것을 발견할 것 같았다.




 그 동안 나는 신나게 하던 일이 회사 때문에 하루 아침에 바뀌어버려도 곧바로 적응해야 했고, 사는 곳은 대강 회사에 맞춰 살았다. 평소에 뭘 하시냐 사람들이 물으면, 과거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아주 많은 것중에 골라 답했다면, 이젠 정말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는 것 외에는 하는 것이 없어 창피해서 대답을 망설이는 때가 왔다. 새로운 음악을 듣지 않으면 늙는 거라는데, 이제 플레이리스트 조차 만들지 않는 나를 보고 이렇게 그냥 내 젊음이 끝나는 건가 생각한 적도 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올해 시간 중에 8.3%, 지금까지 살아온 410개월 중 0.24% 정도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나는 그 한 달이라는 시간을 난생 처음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 예산, 그리고 그 안에 모든 활동을 내 마음대로 조절하고 있었다. 글을 써보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며, 내 하루의 시간을 아무런 제약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판단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하면 나의 하니와에 닿을 수 있겠다.’ 희망 같은 게 보였다. 다 지나고 나면, 비록 나의 인생의 0.24%의 시간에 해당할 지라도 나는 내 마음속에 아주 넓게 나만의 하니와를 잔뜩 장식한 채 살아갈지 모른다.


이전 09화 갱신을 기다리지 않는 여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