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두고 온 마음 2
휴가 첫 주, 일본을 떠나기 전 본가에서 백수생활을 했다. 원래 백수들은 한없이 게으르다가도 집에 가장 오래 있는 가족 구성원이 본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면 집안일에 으레 부지런해지곤 한다. (휴가로 구성된 가짜 백수 시절이 아닌, 나의 진짜 백수시절 경험에서 나오는 경험담이다.) 하루에 두 번씩 빨래도 돌리고, 틈틈히 이불도 빨고, 자주 청소하지 못하는 창틀, 방충망 먼지도 치우고...
준백수의 레이다망에 할머니 방이 들어왔다. 할머니의 화장대나 서랍은 엄마가 청소할 때도 손대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먼지가 좀 쌓인 것 같았다. 간만에 거울도 닦아주고, 책장에 먼지도 털고, 적어도 스무 번은 쓴 것 같은 테두리가 누렇게 바래가는 일회용 마스크도 몰래 버렸다.
그러다 정리함 한쪽 구석에 세워진 할머니의 여권이 눈에 들어왔다. 2004년에 만든 여권이었고, 5년짜리라 2009년에 만료되었다. 내가 스무살 되던 해다. 반가운 마음에 거실에서 TV를 보는(귀가 잘 안 들려 정말 보기만 하는 거다) 할머니한테 달려가 “할머니 이거 뭔지 알지? 할머니 여권이야!” 하면서 보여줬는데, 할머니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그러네”했다. 나처럼 반가워하지 않은 반응에 멋쩍어하면서 다시 방에 들어왔다. 쿵, 문을 닫고나서야 할머니의 쓴 웃음이 이해되면서 미안함과 헛헛함에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에게 들릴 리도 없지만 눈물이 나기 전에 문을 닫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올해 아흔 넷을 맞이한 할머니의 여권은 갱신을 기다리지 않는 여권이다. 여권을 재발급하면 기존 여권 뒷면에 구멍을 뚫어 무효처리를 해야 하는데, 방치되어 온 이 여권은 구멍 하나 없이 온전했다. 사진 속 할머니는 아마 70대 초반. 노인을 자주 안보는 사람들은 노인의 나이를 잘 가늠하지 못할 수 있지만 나는 안다. 사진 속 할머니 얼굴에는 그래도 젊음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여권을 가지고 태국이나 중국, 그러니까 아시아권 정도는 다닐 수 있는 기력, 혼자 간단한 요리를 해먹거나, 버스를 타고 친구네 집에 놀러갈 수도 있는 ‘젊음’이 있었다.
할머니는 TV를 봐도 한국기행 같은 여행 프로만 보고 또 보는 프로 여행러다. 우리 형제들이 여행에 익숙한 건 이 노장 프로의 여행에 대한 욕망을 물려받은 덕분인지도 모른다. 설이나 추석이 다가오면 강원도에 가지 않겠냐고 가족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넣어왔다. 70대 때까지만해도 언니들이랑 해외 여행을 간다며, 짐을 싸던 게 우리 할머니다. 그 후엔 그게 서울 모임으로 바뀌고, 80대 땐 종종 오가는 전화로 바뀌더니, 이제는 서로 아픈 곳이 많아 그 집에 놀러가도 되냐는 말도 몇 년 간 못 하는 때가 왔다. 이모 할머니 댁에 모셔다 드린다는 말에도 “다음에”만 연신 이야기 하는 할머니는 아픈 동생의 모습이 보기 싫은 건지도 모른다. 아무도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할머니들은 앞으로 서로를 못 만나게 될 거라고 으레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스무 살 이래로 나는 여권이 만료되도록 두지 않았다. 여행이든 출장이든, 쓸 일이 있었고,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만료기간을 종종 살폈다. 나에게 만료기간은 갱신시점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료 세 달 전에는 갱신 받아야지 하는. 오늘에서야 그 끝을 생각하게 됐다.
나의 여권 존속기간은 언제까지일까. 10년 짜리로 계산하자면, 내 인생에 한 네 번 정도 더 갱신할 수 있으려나. 여권을 더 이상 갱신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가 됐을 때, 나는 가보고 싶었던 나라를 가봤을까. 내심 아쉬우면서도, 겉으로는 씩씩한 척 다닐만큼 다녔다며 다른 사람들을 되려 위로하지 않을까. 할머니 여권의 텅텅 빈 비자 칸을 괜히 몇 번 후루룩 훑어보고는 잠깐 고민하다, 다시 제자리에 넣었다. 할머니도 가족들 몰래 한 번씩 꺼내볼 지도 모르니.
*커버 이미지: https://www.business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615#google_vigne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