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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테의커피하우스 Dec 31. 2023

단골 카페라는 존재

까페라티노 - 대현동

까페라티노,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8길 2 무궁화상가아파트 107호
키워드: 직접 로스팅한 원두, 테이크아웃 전문


작은 테이크아웃 전문점

들어가는 말


지금 사는 동네에 이사를 온 이후로 단골 커피숍이라고 부를 만한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날들이 몇 년간 이어졌다. 괜찮아 보이는 카페가 몇 군데 있어서 종종 찾아가도 봤지만 ‘여기다’ 할 만큼 마음에 쏙 드는 곳은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까페라티노를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 방문하게 된 것은 까페라티노 바로 옆에 있는 디저트 가게에 조각 케이크를 사러 간 날이었다. 기념할 만한 일이 있어서 케이크를 하나 사서 나오는 길에 까페라티노라는 상호명을 건 커피 전문점을 발견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볼까지 발그레해진 날이었다. 손이라도 녹일 심산으로 커피를 주문했다. 메뉴 구성은 단출했지만 왠지 모르게 범상치 않은 내공이 느껴졌다. 커피를 제외한 음료는 두 가지 종류의 에이드뿐이고, 오로지 커피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점잖게 어필하는 듯했다. ‘일단 한번 마셔보면, 분명 빠져들걸?’ 하고 말하고 있는 듯한 수줍은 자신감이 느껴졌다.


이 가게는 이대 정문에서 약 1분 남짓 떨어진 곳에 있다. 골목 모퉁이를 돌면 오른편으로 보이는 가게다. 평소에 이대 가로수길만 오갈 뿐 주변을 살피지 않는다면 발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게다가 테이크아웃 전문점이라서 실내에서 취식이 어렵다. 그야말로 커피만 사서 나와야 하는 곳이다. 어쩐지 관심을 갖고 ‘한번 사서 먹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이상, 접근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




우연히 발견한 작은 카페


까페라티노는 우리 집으로부터는 약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평일 시간을 틈타, 잠시 나갔다가 오기에 적당한 거리다. 왕복 20분이면 다녀올 수 있어서 재택근무를 하는 날에 종종 들른다. 점심을 챙겨 먹고 바로 책상에 앉아 일하는 게 조금 무겁게 느껴질 때면, 별다른 생각 없이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간다. 그리고 대다수의 경우에는 이대역 주변에 있는 카페를 들러 커피를 한 잔 뽑아서 돌아온다. 애석하게도 이게 점심시간에 누릴 수 있는 직장인 신분으로서의 여유, 전부다.

세 가지 원두 중 선택이 가능해서 기쁜 마음이 듭니다


원두는 3가지 중에 고를 수 있고 ‘케냐, 예가체프, 스페셜 블렌드’가 제공된다. 날도 춥고 따뜻한 음료가 마시고 싶어서 처음 방문한 날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원두는 약간의 고민 끝에 예가체프를 선택했다. 처음 주문했던 날도 그러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예가체프 원두만을 고집한다. 사실 다른 원두를 선택해 볼 만도 한데, 단 한 번도 다른 원두를 선택해서 마셔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 선택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처음부터 느낀 바이지만, 이보다 내 취향에 적합한 원두가 또 없기 때문이다. 첫 한 입을 마시던 순간 입 밖으로 짧은 탄성을 내었다. ‘아’ 하고 말이다. 그동안 애토록 찾던 단골 카페를 드디어 찾았다 하는 안도의 한숨이자 이리도 맛있는 커피는 오랜만에 먹는다 하는 감탄이 섞인 외마디였다.


누군가에게는 커피가 단순히 잠은 깨기 위해 마시는 각성제일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에는 일상의 동반자와도 같이 다가온다. 맛있는 커피는 나에게 그 존재만으로 커다란 삶의 울타리가 되어 준다. 조금 거창할지 몰라도,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조금은 기댈 수 있다는 안정감과 충족감이 든다.




따뜻한 말이 주는 힘


운명적으로 만난 예가체프 커피와 더불어 사장님의 접객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까페라티노에는 점잖으신 중년 남성 한 분이 혼자 일하고 계신다. 매장 앞에서 키오스크로 주문을 넣으면 매장 안으로 접수가 되고 그 후에 차분히 커피를 내려 주신다. 혼자 일하는 공간이라서 키오스크를 도입한 점이 눈에 띈다. 주문이 밀리는 시간이면 혼자 많은 주문량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가만히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 보면 어쩐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진다. 동작에는 부산스러움이 없다. 차분한 손짓에는 겸손함이 배어 나온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분이 내려주는 커피는 분명 맛있을 것 같다’는 일종의 확신이 마음에 피어오른다.


완성된 커피를 내어 주실 때는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한 마디도 함께 건네주신다. 어쩐지 모르게 마음에 훅 들어오는 한 마디다. 단순히 접객 형식에 따라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그러기를 바라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나는 이때 말이라는 건 어떤 사람이 어떻게 건네느냐에 따라 이리도 달라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같은 말이라도 다른 사람이, 다른 목소리로 전달했다면 이 정도로 울림이 있지 않았을 것 같다. 사장님의 한 마디는 ‘정말 힘을 낼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따뜻한 한 마디가 주는 힘은 상황에 따라 이리도 크게 다가올 수 있구나 싶었다.




예가체프의 매력


일전에도 다른 가게에서 예가체프 원두를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정확한 맛이 기억나진 않아도 부드러운 향이 매력적인 원두라고 느꼈다. 까페라티노에서 제공하는 예가체프 원두 역시, 처음 한 모금을 마시면 부드러운 원두 향이 입안에 살짝 퍼진다. 그리고 목으로 넘기면 고소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캐러멜 향이 뒤에 훅 치고 들어온다. 이때 느껴지는 향미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그래서 다 마신 이후에도 커피가 맛있었다는 기억이 오래 남는다.


한 번 마신 이후에 잊히는 커피가 있고, ‘이 집 커피는 다음에 또 사 먹어야지’ 하는 커피도 있다. 후자라면 모름지기 그 향이 매력적이다. 근사한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헤어지고 난 뒤 집에 가서도 머릿속에 향이 맴돌듯, 커피도 입속에 맴도는 향이 매력적이어야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커피의 세계 안에서는 좋은 원두를 잘 볶아서 그 안에 있는 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둔다. 어떤 커피를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 원두의 향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최적의 상태로 생두를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원두를 잘 볶는 것 역시 전문가의 손길을 빌려야 가능한 일이다.


일전에 까페라티노에 갔을 때 주인분께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쓰는 것인지 여쭤보았다. 대답은 예상했던 것처럼 ‘그렇다'였다. 이곳만의 독특한 예가체프 원두 향은 주인분의 로스팅 기술에 달려 있는 듯하다. 그렇기에 직접 볶은 원두인지,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볶은 것인지 새삼 궁금해졌다. 내가 로스팅과 관련해 이것저것 묻자 주인분은 이렇게 대답해 주셨다. ‘좋은 원두를 잘 볶는 것만으로 맛있는 커피의 절반 이상이 완성돼요. 나머지 절반은 내리는 사람의 몫인데, 그 부분은 NG이지만요 (웃음)’.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겸손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 할 법한 말이라서 기억에 남는다. 그 대답을 듣자 ‘역시 좋은 사람이 좋은 커피를 내릴 수 있구나’ 싶었다.


직접 로스팅해 본 예가체프 (쉽지 않네요 역시)




테이크아웃 전문점


한국 카페 시장에서 테이크아웃 전문점으로 살아남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상상만으로도 조금 벅찬 기분이 든다. 카페는 일종의 자릿 세을 내고 공간을 빌리는 형태의 내점객이 주를 이룬다. 그렇기에 테이크아웃 전문점으로 존속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맛 혹은 가격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1,500원짜리 카페 아메리카노가 출근 시간과 점심시간에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는 뭘까? 자리를 빌리지 않는 대신 가성비를 택하겠다는 손님층이 많다는 것이다. 애초에 공간을 빌릴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면, 가격 메리트가 있고 맛은 나쁘지 않은 가성비 커피를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나 역시 테이크아웃을 해야 할 때면 가성비 커피 브랜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양이 푸짐하면서도 가격 부담이 없기 때문에 접근성이 올라간다.


하지만 까페라티노의 경우에는 단순히 가격 측면에서 메리트가 있지 않기에 맛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곳이다. 즉 이곳의 커피는 잠재적 고객층이 가성비 커피의 메리트를 포기하고 약 2배의 가격에 달하는 커피를 사 먹을 것인가의 측면으로 접근해야 한다. 다른 저가 커피 브랜드가 아닌 이곳만의 커피를 선택하게 하는 특이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카페 경쟁이 치열한 서울 중심가에서, 개인 카페의 상호명을 내걸고 테이크아웃 전문점을 운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이가 싶다. 본인이 내걸고 판매하는 커피 맛에 어지간히 자신이 없는 한 승부를 걸기 어려운 게임이다. 그렇기에 이곳의 커피는 내가 그 진가를 뒤늦게 알아보기 이전에 이미 많은 손님의 인정을 받아 지금까지 존속해 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곳에 가면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일종의 신뢰 관계를 꾸준히 쌓아 올려온 덕분이다.


천 드립으로 내려 본 예가체프


마무리하며


동네 주변에 단골 가게가 생기면 어딘가 모르게 내가 기댈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기분이 들어 마음 한편이 든든해진다. 마음이 혼란스러운 날이면 잠시라도 좋으니, 그곳에 들러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이런 가게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물파스를 바른 듯, 마음이 시원해질 때가 있다. 물론 일시적으로 적용되는 가짜 해결책일지라도 ‘물파스 효과’라는 것이 필요한 날이 있다. 일에 진전이 없고 도돌이표가 반복되고 있는 듯한 날이 그렇다.


그럴 때면 단 10분이라도 좋으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곳에 잠시 들러 충전을 하고 싶어 진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힘을 내어서 단골 가게에 다녀온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아직 세상은 살 만한 공간이라고 느끼게 된다. 아마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거나 그들과 이야기 나누는 과정에서 얻는 에너지, 혹은 사장님이 제공하는 서비스 등에 의해 일종의 충전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점심시간에 틈을 타 까페라티노에 다녀오는 일은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한 마실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빡빡한 하루의 틈 사이에 좋아하는 가게로부터 위로를 받는 일상의 쉼표가 나에겐 절실히 필요했던 게 아닐까. 아마 가게 주인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묵묵히 존재해 주는 것들로부터 엄청난 위로와 힘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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