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테의커피하우스 Nov 25. 2023

전혀 특별할 것 없는 루틴

매뉴팩트커피 - 연희동

매뉴팩트커피,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11길 29
키워드: 플랫화이트와 라테, 에티오피아 싱글 오리진, 연희맛길



들어가는 말


내게 가장 좋아하는 커피 전문점을 한 군데만 뽑으라고 한다면 약간의 고민 끝에 매뉴팩트커피라고 할 것이다. 이곳을 알게 된 지도 언 10년이 다 되어가니 나 혼자 카페에 쌓인 정이 꽤 두둑하다. 소위 ‘단골 카페'라고 처음 마음에 둔 곳은 사실 따로 있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 상가 건물에 ‘카페 삼매경'이라는 상호를 내건 커피 전문점이 있었다. 이 카페를 꽤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들락거리며 주인분의 환심을 사던 때가 있다. 그런데 어느 새인가 주인은 바뀌어 있었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아예 폐점을 해 버려서 내심 서운했던 기억이 있다. 마음 둘 곳이 없던 시기를 지나 두 번째로 애정하는 카페를 발견했는데 그곳이 바로 매뉴팩트커피다.


우연히 SNS에서 라테가 맛있는 곳이 있다는 소문을 입수해,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이 생겨 연희동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당시는 서울 변두리 구에 거주하던 시기라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40-50분은 이동해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코 닿으면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기에 한번 가려면 왕복 한 시간 반 정도는 시간을 빼두어야 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나설 수는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보통 주말을 이용해 이곳에 갔다. 마치 루틴이 있는 사람처럼 주말 오후면 매뉴팩트로 발걸음이 향했다. 커피를 한잔 마시고 내친김에 원두까지 한 봉지 골라 사 오는 일을 매주 반복했다.




플랫화이트와 라테


매뉴팩트커피는 플랫화이트가 맛있기로 소문이 난 곳이다. 그 사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카페에 내점 한 손님의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음료를 보면 다수가 플랫화이트를 주문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아닐 때도 있지만 말이다. 플랫화이트는 에스프레소에 스팀밀크를 넣어 만든 음료다. 라테와 다르게 우유 양이 적게 들어가고 리스트레토 샷으로 추출한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호주에서 즐겨 먹는 라테라고 알려져 있는데 우유 양이 적어 진한 에스프레소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플랫화이트 맛집이라고 정평이 나 있는 듯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매뉴팩트의 카페 라테를 가장 좋아한다. 이곳의 라테는 다른 곳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절묘한 밸런스를 유지한다. 우유와 원두의 배합이 조화롭고 어느 요소 하나 튀지 않는다. 원두의 향미도 라테와 잘 어울려서 입안에 감도는 맛이 일품이다. 그야말로 최상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데 성공한 라테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까지 마셨던 라테는 어딘가 모르게 우유와 원두의 조합이 어긋나 있거나 밸런스가 완벽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매뉴팩트카페에서 라테를 마시고 난 이후 깨달았다. 오래된 영혼의 짝꿍을 돌고 돌아 만난 듯한 경험이었다.


보통 따뜻한 음료로 주문해서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만 여름에는 아이스라테도 종종 주문한다. 찬 음료로 마셔도 따뜻한 음료와 동일하게 고소한 맛이 입안에서 기분 좋게 퍼진다. 최적의 밸런스란 이런 것이구나 무릎을 탁 치게 되는 맛이다. 집에서 에스프레소를 내려서 우유와 배합한 최적의 조합을 구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 어쩐지 아깝지 않다.


더운 한낮에 즐기는 매뉴팩트 아이스라테




연희 본점


내가 방문하는 매뉴팩트커피 연희 본점은 공간이 협소하여 10명 남짓의 이용객만 내점 수용이 가능하다. 크지 않은 공간이라서 약 6명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원목 테이블과 몇 개의 사이드 테이블 그리고 소파 좌석 2개가 전부다. 이곳은 연희 맛길의 초입에 있는 허름한 건물 2층에 있다. 가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도 있을 법한데 애초에 카페를 목적으로 만든 곳이 아닌 듯하다. 어쩐지 간이로 공간을 빌려 만든 작업실 같다. 이곳에 가면 친구의 개인 작업실에 놀러 가는 기분이 드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데 있을 것이다.


협소하지만 안락한 느낌의 실내 공간

허름한 건물 위쪽으로 좁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체감상 15평 정도 될 법한 공간에 자그마한 카페가 펼쳐진다. 누가 봐도 카페로 활용하기에 적합한 공간은 아니지만 이 또한 나름의 안락함이 존재한다. 입구를 중심으로 정면에는 주문하는 카운터가 있고 바로 뒤쪽에는 직원들의 휴식 공간이 보인다. 그 오른편에는 콜드 브루를 제조하는 곳이 마치 인테리어 장식을 연상시키듯 벽면 한쪽을 전부 채우고 있다. 제조 공장 같기도 하고 실내 소품 같기도 한 모양새가 흥미롭다. 그리고 그 바로 앞쪽에는 브루잉 스페이스가 있다. 두세 명의 직원이 이 공간에서 에스프레소 음료를 제조하고 있다. 맞붙어 있는 테이블에는 핸드드립에 사용되는 커피 도구와 핸드드립 전용 공간이 일자로 쭉 뻗어 있다. 이 모든 공간이 손님이 앉는 공간과 별도의 구분 없이 뒤섞여 공존한다.


협소한 공간이지만 모든 것은 질서 있게 처리된다. 직원과 손님, 누구 하나 서두르거나 보채는 경우가 없다. 동선이 꼬이거나 주문을 실수하는 일도 없다. 모두가 평정심을 갖고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주문을 한 뒤에 잠시 기다리다 보면 완성된 음료를 직원분이 직접 가져다준다. 주문을 받은 사람과 음료를 제조하는 사람이 다른데 어떻게 매번 내가 주문한 것인지 알고 가져다주는지 신기하다. 하지만 이 집만의 영업 비밀이겠거니 하고 사건의 전말에 대해 파헤치는 일은 그만두기로 한다. 때로는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매번 궁금한 건 사실이다.




에티오피아 싱글 오리진


매뉴팩트커피에서 맛본 원두 중에 가장 훌륭했던 원두는 에티오피아 싱글 오리진 라인이다.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포도주의 향이 연상되는 과일 향미가 풍부한 에티오피아 원두로 기억한다. 이곳에서는 스테디셀러 원두와 싱글오리진 원두를 다른 패키지로 취급한다. 하얀색 패키지에 들어 있는 상시 취급 원두는 ‘폴 고갱' ‘샌프란시스코' ‘카멜리아'로 총 3종류다. 그중에는 다크로스팅을 한 폴 고갱이 가장 내 입맛에 맞았다. 반면 싱글 오리진 원두는 갈색 패키지에 들어 있고 라인업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편이다. 한번 바뀌면 근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간 동일한 싱글 오리진 원두를 제공한다. 최근에 업데이트된 원두 중에 에티오피아 코케 허니는 합리적인 가격에 매우 훌륭한 향미를 가진 원두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직접 농장과 직거래한 원두를 수입하고 로스팅하여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커다란 원목 테이블이 꽤 마음에 듭니다.


에스프레소와 드립으로 제공하는 커피 원두의 분위기는 다크와 라이트로 나뉜다. 에스프레소 음료에는 진하고 고소한 원두를, 드립으로 제공하는 원두는 부담이 없는 베리 계열의 에티오피아 원두가 주를 이룬다. 또한 컵 노트를 보면 과일 풍미가 짙게 배어 있는 원두가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에티오피아 싱글 오리진을 제공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숙성된 향을 가진 원두가 많아서 그 가공법에 노하우가 있을 법하다. 직접 내려주는 핸드 드립을 매장에서 마시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바리스타가 원두 분쇄도, 물 온도, 타이머에 집중하여 공을 들여 내리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구경할 수 있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연희맛길로


이곳은 연희동의 맛집이 분포돼 있는 ‘연희맛길'의 초입에 있다. 주말에는 방문객이 끊이지 않고 근처에 점심 식사를 하러 온 커플들도 많이 보인다. 가족 단위로도 많이 찾는 곳이라서 식당과 카페는 사람들로 붐빈다. 내로라하는 유명 중식당이 근처에 많은데 예전부터 화교가 밀집해서 살았던 동네라서 그 여파가 맛집의 형태로 남은 듯하다. 근처에는 중국인 학교도 있고 걸어서 10분 내외의 거리다. 술집과 디저트 가게가 많은 연남동과도 15분 내외로 맞닿아 있다. 신촌이나 합정과의 접근성이 좋아서 약속 장소로 잡기에도 좋은 동네다.


나의 경우에는 연희동에 가면 자주 가는 P베이커리에서 좋아하는 빵을 사고 매뉴팩트에 들른다. 마치 필수코스처럼 이 두 곳은 꼭 거쳐간다. 그래야 할 일을 한 듯한 기분이 든다. 카페에 자리가 허락된다면 앉아서 마시고 갈 때도 있으나 대체로 손님이 많은 탓에 테이크아웃으로 받아 들고 나온다. 연희맛길 초입으로 나오면 큰 슈퍼가 하나 있는데 이곳을 한 바퀴 돌면서 신기한 식자재와 외국 수입 코너를 구경한다. 때때로 몇 가지 생필품이나 식재료를 구매할 때도 있다. 그렇게 세 군데를 다 들르면 든든해진 가방을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간다. 전혀 특별할 것 없는 루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즐겁다. 좋아하는 동네나 가게에 잠시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어딘가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마무리하며


매뉴팩트커피를 떠올리면 외면은 수수하지만 내면은 단단한 여성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사람으로 비유를 하자면 옅은 화장을 하고 단출한 감색 원피스를 입은 조금은 깐깐해 보이는 사람이다. 어딘지 모르게 쉽게 다가갈 수 없으나 한번 말을 붙여 보면 상냥하게 대답을 해준다. 그에 더해 자신의 이야기나 견해 등을 솔직하게 말해 주는 사람이다. 알고 지내다 보면 진국이라고 생각되는 종류의 사람이다. 매뉴팩트에 처음 방문했을 때 소감도 이와 비슷해서 다소 환대받지 못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가게에 말을 붙여 보면 솔직하고 가감이 없으며 무엇보다 친절하다. 내가 모르는 부분에 대해 질문을 했을 때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려 왔다는 듯한 분위기로 대응해 준다. 그 점이 바로 이곳을 떠올릴 때 느껴지는 단단하고도 따스한 이미지다.


한 번은 원두 진열대 앞에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점원이 다가와서 차근차근 원두에 대한 설명을 해 준 적이 있다. 손님을 대하는 방식이 사근사근하고 고압적이지 않으며 그렇다고 너무 저자세가 아닌 점이 좋았다.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듣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개만 사려다가도 두 개를 사게 만드는 점원의 태도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사람이나 공간에 환대를 받는 느낌을 주는 것은 단순히 친절한 접객 태도만 있다고 가능한 일 아니다. 가게 전체의 분위기가 주는 적당한 ‘여유’가 필요하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손님 개개인에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 한다. 그 와중에 응대, 맛, 서비스 모두 놓쳐서는 안 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을 안다. 그 관점에 있어서 매뉴팩트커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다. 내가 지난 10년간 방문하면서 처음과 달라진 점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이곳은 내 마음속 넘버 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전 08화 신념이 깃드는 곳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