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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테의커피하우스 Dec 10. 2023

신념이 깃드는 곳에

블루보틀 카페 - 소격동

블루보틀 카페, 서울 종로구 북촌로 5길 76
키워드: 브루잉 커피, 공간의 쓰임, 산겐자야의 추억



들어가는 말


블루보틀이 한국에 첫 상륙했을 때 국내 여론이 떠들썩했던 것을 기억한다. 외국에서만 맛볼 수 있던 블루보틀 커피를 한국에서도 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대감을 품은 사람들이 많았던 탓일 테다. 나 역시 몇 차례 외국 여행에서 접했던 커피 브랜드가 한국에 진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한국에서 해석되는 블루보틀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무척 궁금해졌다. 외국 프랜차이즈 매장을 국내에 들여올 때 어떤 방식으로 브랜딩 하느냐에 따라 결괏값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고급화 전략을 써서 인테리어와 패키지, 서비스 등에 신경을 쓴다든지, 대중적인 이미지로 다가가기 위해 가격을 낮추고 광고에 힘을 쏟는다든지 저마다 방식은 다양하다. 그렇기에 한국에 첫 발을 내디딘 블루보틀의 입점 전략이 궁금했다.




블루보틀 삼청점


한국에서 처음 블루보틀을 방문한 곳은 성수동 1호점이 아닌 삼청동에 있는 2호점이었다. 그랜드 오픈 직후에 인파를 걱정한 나머지 내점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집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종로구에 두 번째 매장을 오픈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는 정말 가 봐야지’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고 약 2년 후, 2021년에 처음 방문했으니 두 번째 매장을 오픈하고도 꽤 시간이 흐른 이후에 방문한 셈이다. 삼청동 인근을 지날 때마다 매장 외관만 구경해 봤지 실제로 들어가기까지는 계속 망설이게 되었다. 유동인구가 많고 늘 손님이 북적이는 느낌이라 나중에 가 봐야지 하다가 처음 가게 된 것이 약 2년 전 일이다.


블루보틀 삼청점은 단독 매장으로 설계됐고 1층부터 3층까지 공간이 이어진다. 층별로 쓰임새가 각자 달라서 층별로 어떤 구성을 이루고 있는지 보는 재미가 있다. 모든 층에는 손님이 앉을 수 있는 공간과 직원이 일하는 공간이 공존한다. 이는 손님과 직원 사이에 벽을 두지 않고 오히려 그 벽을 깨려고 한 흔적이 돋보이는 점이다. 다른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을 보면 대개 직원의 공간과 손님의 공간을 구분해 두고 각자의 스페이스에 서로가 침범하지 않는다는 무언의 룰이 있다. 오히려 그 분리된 공간 구성이 손님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적고 때로는 편안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블루보틀 삼청점은 일부로 그 틀을 깨면서 ‘이곳은 커피를 즐기러 온 사람을 위한 공간'이며 ‘직원과 소통할 수 있다’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소위 카공족이나 모임을 하러 방문하기에는 적합한 곳이 아니다. 오로지 커피를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사실을 내심 강조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블루보틀 삼청점 테라스에서 바라본 전경


1층은 주문을 하는 카운터와 원두 및 굿즈를 취급하는 진열대, 2층은 메뉴를 제조하는 공간이 펼쳐진다. 그리고 꼭대기인 3층은 사이폰 음료를 제조하는 공간이 있고 외부 테라스와 연결된다. 2층은 음료를 대기하는 손님들을 위한 간이 좌석이 전부다. 그 대신 1층과 3층에 손님을 위한 좌석이 마련되어 있는데 어디까지나 30분 내외로 음료를 즐기고 퇴장하기 적합한 테이블과 의자로 구성돼 있다. 안락한 소파나 작업에 용이한 책상 등은 찾아볼 수 없다. 세로로 길고 높은 작업용 테이블과 반대로 높낮이가 매우 낮은 간이 의자와 커피 테이블이 전부다. 회전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고 공간 창출을 최대치로 하되 미적으로 아름다운 배치를 구상해 탄생한 결과물일 수도 있다. 그 덕에 이곳의 인테리어는 매우 정돈되어 있으며 요란스러운 느낌이 없다. 잠시 앉아 음료를 즐기고 퇴장하기에 최적화된 공간 구성이다.




콘센트가 없는 매장


블루보틀 매장에는 와이파이와 콘센트가 없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바로 위에 말한 공간 구성과 밀접한 이야기가 될 법한데 이 두 가지 요소를 과감하게 없앴다는 사실만으로 블루보틀코리아가 어떤 공간을 만들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 2023년 현재, 한국의 카페는 커피를 즐기는 공간이라기보다 개인 작업실 혹은 공부방에 가깝다. 물론 온전히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각 카페마다 내점 한 사람의 절반 이상이 개인 업무나 작업을 하기 위해 온 듯한 인상을 받는다. 특히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일수록 그 손님의 색채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그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와이파이와 콘센트를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은 내심 경외심을 갖게 만든다. 이 메시지에서 블루보틀은 여타 다른 카페들과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일종의 신념 비슷한 것이 보인다.


커피를 즐기는 공간으로만 존재하겠다는 블루보틀의 신념은 다수에게 통용되는 카페의 쓰임새에서 벗어나 있다. 카공족이 수요층을 좌지우지하는 현시점에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테다. 하지만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있다면 결국 주변의 인정은 자연스레 따르게 되어 있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리둥절할지도 뚝심 있게 존재하는 것들은 주변에서 결국 그 ‘존재에 대한 이유’를 붙여 주고 이내 따르게 된다. 인간도 마찬가지라서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굳은 의지와 믿음만 있다면 결국 주변으로부터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정받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블루보틀의 신념과 가치에 대해 다수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이유도 바로 이 ‘뚝심'에서 나오는 것이라 믿는다. 만약 똑같은 브랜딩으로 다른 카페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수만 개의 다른 프랜차이즈와 차별성이 없었을 것이다. 차별성이 없다는 사실은 카페 시장에서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잠재적 요소다.

블루보틀 로고가 박혀 있는 재생 용지 컵이 마음에 듭니다.



브루잉 커피


커피에 대해 얘기해 보자. 블루보틀에서 취급하는 음료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브루잉, 에스프레소, 티. 그리고 세 가지 분류 안에 속하는 메뉴들은 저마다 시그니처 음료가 주를 이룬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커피전문점에서 취급하는 메뉴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레시피로 만든 음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브랄타는 블루보틀에서 취급하는 플랫화이트 메뉴다. 다만 메뉴판에 플랫화이트라는 이름을 올리지 않고 다소 생소한 메뉴명을 적어 두었고 보는 이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낸다. ‘지브랄타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하게끔 손님을 재치 있게 유도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음료를 주문해 먹어 본 사람이 재방문했을 때 자신이 아는 이곳만의 시그니처 음료를 기억해 내서 다시 주문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비슷한 맥락으로 아이스크림을 라테에 올려서 제공하는 놀라플로트와 콜드브루에 단맛을 가미하여 라테로 형상화한 뉴올리언스는 블루보틀의 시그니처 메뉴이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함이 있기에 손님들의 발길을 이끈다.

작은 잔에 소량으로 제공되는 아메리카노

게다가 다른 데서는 좀처럼 취급하지 않는 카페오레가 메뉴에 올라와 있어서 반가운 마음이 든다. 카페오레는 따뜻한 드립에 우유를 살짝 가미해서 마시는 음료다. 진한 에스프레소와 우유의 합을 느낄 수 있는 라테와 다르게 부드럽고 쉽게 마실 수 있는 것이 오레의 특징이다. 다만 해당 주에 취급하는 핸드드립 원두에 따라 카페오레의 맛이 달라질 수 있어, 주문 시 바리스타에게 추천 여부를 물어보는 편이 좋다. 예를 들어 금주에 제공하는 핸드드립에 사용되는 원두가 산미가 강한 원두인 경우 카페오레를 주문하면 그 조합이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한 번은 케냐 원두를 드립으로 내린 카페오레를 주문한 적이 있었는데 독특한 향미가 우유와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후회했던 경험이 있다. 그러니 당일에 제공되는 드립의 원두와 카페오레의 합이 어울리는지 한 번쯤은 체크해 보고 주문하기를 추천한다.


그 외에도 싱글오리진 원두를 드립으로 선택해서 마실 수 있다는 점이 만족스럽다. 일정 금액을 추가하면 모든 에스프레소 베리에이션 음료에 싱글 오리진으로 원두를 선택하여 주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브루잉 음료에도 예외가 아니다. 자신이 선택하는 원두 조합에 맞춰서 음료에 커스텀이 가능하니 주문하는 즐거움이 배가 된다. 우유의 경우에는 일반 우유 혹은 오트밀크로 선택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블루보틀은 우유가 들어간 음료를 잘 다루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우유가 들어간 음료를 주문할 때 그 만족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오트밀크도 마찬가지로 그 고소한 풍미가 라테 혹은 모카와 잘 어울리기 때문에 실패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산겐자야의 추억


첫 블루보틀 경험기는 다름 아닌 일본의 도쿄에서 시작됐다. 당시에는 한국에 블루보틀이 입점하기도 한참 전이라서 외국 여행을 할 때 블루보틀 매장이 있다면 그곳을 일부러 찾아가곤 했다. 외국에서만 접할 수 있었기에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측면도 있었다. 당시 도쿄 여행을 할 때 에어비앤비로 묵었던 숙소가 산겐자야에 있었다. 동네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파란색 블루보틀 입간판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느껴지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일부러 찾아간 것이 아니라 아침 산책을 하다가 발견한 것이라서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나에게도 이런 행운이!) 게다가 번화가와 동떨어진 조용한 마을에 있는 매장이라서 어딘지 모르게 수수하면서도 마음 한편을 적시는 매력이 있었다. 골목 후미진 곳 안쪽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산겐자야 매장은 나에게 그렇게 기억되고 있다.


매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문을 열자마자 카운터가 보이는데 이곳에서 스마트 패드로 음료 주문이 가능하다. 점원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니 설명을 잘 듣고 스마트 패드로 주문을 한 뒤에 오른쪽 카운터에서 음료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카운터를 중심으로 왼쪽 방향으로 들어가면 안쪽에 손님들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정갈하고 차분한 느낌이 공간 곳곳에 스며 있다. 테이블부터 의자, 소품, 조명까지 무엇 하나 조화롭지 않은 것이 없다. 자세히 살펴보면 빈틈없이 잘 가꿔진 매장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겨울 한정 메뉴 (오렌지 블러썸 스파이시 라테)

당시는 추운 겨울이라서 따뜻한 라테를 한잔 주문했다. 수염을 멋지게 기른 바리스타분께서 음료를 건네주시면서 간단히 설명을 해 주셨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멋진 수염의 바리스타는 라테 제조법에 대해 스몰 토크를 이어나갔다. 카페 라테는 우유 스팀 온도에 신경을 써서 만든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온도가 1도만 높거나 낮더라도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에 섬세한 스티밍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방금 만든 라테는 제조 직후에 바로 마시는 한입이 가장 맛있기 때문에 지금 바로 한입을 마셔 보라고 권했다. 나는 멋진 수염의 바리스타 앞에서 바로 컵을 입에 가져가 한 모금 맛을 보았다. 그분의 설명 그대로 절묘한 우유 온도가 혀끝에 닿았고 고소하고 쌉쌀한 단맛이 입안에 퍼졌다. 멋진 설명을 들은 이후에 마셔서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으나 꽤 훌륭한 라테였다고 여전히 기억한다.




마무리하며


블루보틀은 내 안에서 품질 높은 메뉴를 취급한다는 브랜드 이미지가 강력하게 자리 잡은 곳이다. 브랜딩이 다소 상업적이라는 여론도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만한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하기에 소비자로서 불만이 없다. 이곳에 가면 늘 기대하는 수준 혹은 그 이상의 음료와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틀림없이 보장되는 것들이 주는 일종의 안정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게다가 블루보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매장 분위기나 일종의 브랜드 문화 같은 것이 있어서 방문하는 일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바리스타가 음료에 대한 설명을 상세히 해 준다든지, 메뉴 주문 시 내가 전달한 이름으로 콜링을 해 준다든지, 트레이 없이 커피 서버와 잔만 제공한다든지 등의 블루보틀만의 고유한 문화가 있다.


이는 자신만의 영역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딱히 불쾌하거나 이질감 없이 다가온다. 한 마디로 매력이 있다. 이러한 문화는 어디까지나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느낄 것이다. 누군가에게 블루보틀은 지나치게 상업화되어 본질을 잃은 에고(ego)가 강한 브랜드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다면 늘 그 상태로 있어 주는 것들이 반갑다. 블루보틀의 타협하지 않는 브랜드 문화가 나에게는 그 일환으로 다가온다. 쉽사리 바꾸지 않는 것들에는 진심이 담기고, 진심은 결국 다수에게 통하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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