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로커피 - 성북동
해로커피 (성북동), 서울 성북구 성북로 19-3
키워드: 한옥 카페, 직접 로스팅한 원두, 고즈넉한 분위기
연고가 없는 동네의 길모퉁이에 있는 한옥 카페를 찾아가게 되는 일은 꽤 드문 일이다. 외관이 화려하거나 실속 없어 보이는 카페에 대한 반감이 있는 탓에 외부에서 카페를 가게 될 일이 생기면 고민 끝에 프랜차이즈 전문점을 고르게 된다. 대개 잠시 앉아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경우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성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해로커피에 가게 된 것은 단순히 공간을 빌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들여 검색해 보고 내 마음에 쏙 드는 카페를 발견한 끝에 방문하게 된 것이다. 내 안에 좋은 카페의 기준이 되는 몇 가지 항목이 있다. 아래 서술한 조건에 해당되는 요소가 많을수록 내 기준에서는 합격점인 카페다.
첫 번째, 화려하지 않을 것. 카페 외관이 화려하거나 내부에 소품을 즐비하게 진열한 카페를 보면 어딘가 모르게 본심을 숨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맛에 자신이 있다면 굳이 많은 것들을 가게 안에 들여놓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두 번째, 메뉴에서 취급하는 음료가 많지 않을 것. 소품과 비슷하게 음료도 종류가 많으면 어딘가 모르게 자신감이 결여된 곳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주력하는 상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그것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메뉴는 적당히 추려서 제공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세 번째, 음악이 시끄럽지 않을 것. 카페에서 흘려보내는 음악에 대해 이리도 진지할 만한 일인가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음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화나 개인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볼륨으로 적당히 공간을 채우게 하는 것이 포인트다. 가요나 팝을 틀어 놓는 곳은 선호하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재즈, 클래식, 보사노바 정도의 장르가 좋겠다.
물론 이는 온전히 내가 선호하는 것들로 만든 기준이기에 다른 사람에게는 좋고 나쁨이 통용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다양한 메뉴와 소품을 취급하는 카페가 더 많은 선택지를 주기에 선호될 것이다. 다만 해로커피처럼 단출한 것들에 집중하는 공간이 나의 경우 더 잘 맞는다는 얘기로 글을 시작하고 싶었다.
해로커피는 옛 한옥을 개조하여 만든 카페다. 성북동의 골목 안쪽에 위치한 한옥을 개조하여 카페로 탈바꿈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곳을 처음 찾아가는 사람은 지도 어플을 켜고 가야 무리 없이 도착할 수 있다. 물론 골목길 초입에 작은 간판이 벽에 붙어 있었던 거로 기억한다. 이 표시만 발견한다면 길을 잃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조금 낯선 골목 안쪽으로 초대되기 때문에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약간의 조바심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천천히 그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커다란 한옥 기와집이 보이고 대문이 활짝 열려 있는 카페를 발견할 수 있다.
한옥은 안뜰을 중심으로 디귿자 모양으로 생긴 구조다. 실제로 가게 안에 들어가 보면 말 그대로 디귿자 모양으로 뻗은 내부 구조가 눈에 띈다. 안뜰과 마주하는 면을 통창으로 바꿔 두어서 어느 자리에 앉든지 안뜰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몇 발을 내딛으면 나무로 된 바닥이 삐그덕 소리를 내며 손님을 반긴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교무실에 들어갈 때 유독 낡은 지면을 밟으면 삐그덕 소리를 내던 것이 연상되어 정겹다. 낡은 것들은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면이 있다.
주문을 마치고 자리를 잡고 앉으면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온다. 바닥부터 각종 소품들까지 전반적으로 목재를 사용하여 편안하고 안정감이 든다. 간간이 눈에 들어오는 소품들은 손때가 탄 골동품이 많다. 테이블과 전등, 의자 모두 어딘지 모르게 낡고 오래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주는 감각이 대체로 밝고 정돈된 것들이라서 단순히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잘 가꾸어진 오래된 물건이 주는 섬세한 자극들은 옛 향수를 불어 일으킨다. 할머니집 안방에 있던 가구의 촉감, 이불과 베개에 배어 있던 냄새, 전등에 매달려 있는 벌레와 먼지 같은 것들이 연상된다.
해로커피는 가게에서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사용한다. 안쪽 공간에 로스팅 기계가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본 적은 없다. 메뉴판에 올라와 있는 메뉴는 아메리카노, 라테, 플랫화이트, 아인슈페너가 대표적인 에스프레소 음료고 그 외의 베리에이션 음료는 다양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그 대신 필터 커피로 마실 수 있는 원두 종류가 다양하다. 작은 배치로 직접 로스팅을 했다고 하니 꽤 믿음직스럽다. 이곳은 총 6가지의 원두를 제공하는데 나는 동행한 사람과 함께 성북아리랑과 브라질을 한 잔씩 주문했다. 성북아리랑은 다크초콜릿 향미가 나는 원두로 진하고 쌉싸름한 맛이 일품이었다. 브라질은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나며 끝맛이 라이트 한 것이 마시기 쉽고 보리차와 닮은 맛이 났다.
필터 커피를 주문하면 커피 노트가 적힌 카드를 같이 주신다. 내가 느끼는 음료의 향미와 커피 노트가 어디까지 일치하는지 비교하며 마시는 재미가 있다. 처음에는 노트를 보지 않고 마셔 보길 권한다. 어떤 맛이 나는지 머릿속에 그려보고 과일, 견과류 등을 연결 지어 상상해 본 이후에 커피 노트를 보면 재미가 더해진다. 사람마다 맛과 향기는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정답은 없다. 내가 느낀 맛과 감별사가 느낀 맛이 어떤 부분에서 다른지 비교하는 작업 자체에 중점을 두면 그만이다.
다음에 이곳을 방문한다면 에스프레소 음료를 마셔 보고 싶다. 따뜻한 음료를 맛보고 이어서 한 잔은 아이스 음료로 추가 주문을 해 봐도 좋을 것 같다. 내점 시 다른 테이블에 놓여 있는 컵을 구경해 보니 오래된 크리스털 빈티지 잔과 비슷한 투명 잔에 음료가 담겨 있었다. 우리 집에도 비슷한 잔이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엄마 혼수로 준비해 두신 세트로 된 그릇과 잔이다. 우리 집안사람 누구도 쓰지 않길래 내가 냉큼 사용한 적이 있다. 해로커피의 아이스잔도 그 크리스털 잔과 비슷하게 생긴 투명 잔에 아이스 담겨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어쩐지 애틋한 기분이 들었다.
한옥이 주는 고즈넉한 분위기에 더불어 사장님의 차분한 접객 스타일이 이곳만의 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개별적으로 튀는 요소 없이 전부 하나의 색깔과 톤으로 정리되어 있어서 내점해 있는 동안 마음이 자연스레 편안해진다. 우드톤의 탁자와 의자와 같이 하나의 리듬감을 가진 가구들이 놓여 있어서 눈과 마음이 편안하다. 잔잔한 멜로디에 악센트를 주기 위해 빈티지한 장식장이나 테이블, 조명을 배치해 두었다. 덕분에 이곳만의 고유한 리듬이 완성된 듯하다. 좋은 안목으로 선택된 소품들은 내부 공기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손님층은 대체로 나이가 드신 분들이나 커플이 많다. 하지만 왁자지껄한 분위기 없이 차분한 내점객이 주를 이룬다. 어느 한쪽으로 연령대가 쏠려 있는 경우, 다분히 목적성을 갖은 카페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래 앉아 있기 힘들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대학가 근처의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젊은 사람이 내점객의 80% 이상을 이루고 있다. 저마다 노트북이나 아이패드, 책 등을 펼쳐 두고 작업실의 용도로 쓰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카페가 아닌 작업실을 연상시킬 때가 많다.
반대로 서울 중심가에 있는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경우에는 나이 드신 분들이 내점객의 절반 이상을 이룬다. 친구, 지인 등의 모임이 있어서 식사를 하고 카페에 들어가 남은 이야기를 마저 나눈다든지, 주변에 있는 공원이나 시장 등에 연고가 있어서 외출했다가 카페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저마다 내점 하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연령층이 한쪽으로 쏠려 있는 경우, 카페의 순기능에서 벗어나 어떠한 ‘용도'로 쓰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은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다.
해로커피에는 간간히 동네에서 마실 나온 듯한 편안한 복장의 주민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곳은 주민들이 마음 놓고 방문할 수 있는 카페라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 사는 분들이 편히 방문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신뢰가 간다. 뜨내기를 위한 공간이 아닌 한 군데 잘 자리 잡은 카페라는 인상을 심어 준다.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눈다. 근사한 공간에는 저마다 근사한 사람들이 모인다.
해로커피가 동네 근처에 있다면 어쩐지 자주 방문할 것만 같다. 결이 맞는 공간은 좀처럼 찾기 힘들어서 일단 발견한 이상 소중히 다루고 천천히 친해지고 싶은 기분이 든다. 노트북을 가지고 들어가서 작업을 한다거나 약속 장소로 정해 놓고 분주한 시간대에 가기보다는 조금 한산한 때를 노려 방문할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평일에 일을 마치고 늦은 저녁인 7시나 8시쯤 혼자 방문해 조용히 앉아 있고 싶다. 어쩐지 이곳에서는 하루 종일 가열된 머리를 식히면서 조용히 내 안으로 집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커다란 외투를 하나 걸치고 터벅터벅 걸어가 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따뜻한 커피를 한잔 주문할 것이다. 그리고 ‘하아, 오늘도 고생했네'라고 속으로 소리 내어 말하고 싶다. 말과 공간이 건네는 위로는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공간에 말을 부여하면 작은 파동이 생기고 이내 큰 울림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