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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C Jul 22. 2024

다음 세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

김광진 <진심>, N.EX.T <해에게서 소년에게>

   선배, 후배라는 호칭을 좋아합니다. 학교 선후배뿐 아니라 회사에서 만난 동료들도 퇴사 뒤에는 가급적 선배, 후배로 호칭을 정리합니다. 회사에 다닐 때에도 직급이나 직책보다 선배로 불릴 때가 더 기분이 좋았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평균 나이가 45세라고 하니 저는 그 평균을 아주 조금 넘어선 셈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선배보다 후배가 많아진 나이가 됐죠.


   30대 중반을 넘어설 무렵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후배들에게, 특히 10대와 20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 건. 물론 우리 세대라고 편하게만 살아왔던 것은 아닙니다. 대학 시절 IMF 사태가 터져 취업난이 심각했고 기업이 줄도산하여 거리에 신용불량자가 넘쳐나던 시절도 겪었습니다. 그렇지만 고비를 넘기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어 버틸 수 있었죠.


   지금은 입시도 취업도 부동산이나 물가도 구조적인 문제로 굳어져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시대입니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열심히 일해도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시대. 너무 많은 사람이 결혼이나 출산을 기피하는 시대. 1020세대를 볼 때마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도록 방관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 불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후배들에게 해줄 있는 거라곤 가끔 만나 밥이나 사는 게 전부였지만요.


    오늘 소개하려는 두 곡의 노래는 아끼는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곡입니다. 다음 세대에게 들려주는 선배들의 위로와 응원을 담은 곡들이죠.




   김광진의 <진심>은 1998년 6월에 발표한 곡입니다. 당시에는 이 노래가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제 플레이리스트를 차지하고 있는 곡입니다. 김광진 님은 가창력이 뛰어나진 않지만 어눌하고 담담하게 불러 오히려 오래 질리지 않고 마음을 울리는 매력이 있습니다. 이 노래는 김광진 님이 앵콜 곡으로 자주 부르는 곡이기도 하고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서도 시작을 알리는 곡이었다고 하니 본인도 무척 아끼는 곡인 것 같습니다.


<진심>

1998년 6월

김광진 솔로 2집 My Love My Life 앨범 타이틀곡

작사/작곡 김광진


https://youtu.be/bkdNg7UM2Q4?si=f5cjKrYfP3_NxSsS


그렇게 화내지 마요 그말은 진심이 아니죠
이해를 할 수 없다면 그저 웃어 넘긴다면 어때요
그래도 잊진 말아요 그대의 소중한 재능이
숨겨진 보석과 같은 거죠 언젠간 환하게 빛날테죠

꿈만큼 이룰 거예요 너무 늦었단 말은 없어요
그대를 지켜주는 건 그대 안에 있어요 강해져야만 해요
그것만이 언제나 내 바램이죠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지게 되겠죠 허나 이런느낌 다시 없을테죠
영원히 사랑하기에 나의 모든 걸 다 준다해도
그대를 지켜주는 건 그대 안에 있어요 강해져야만 해요
그것만이 언제나 내 바램이죠

떠나갈 때가 오나요 그대 힘든 길을 가는 동안
이것만 기억해줘요 그대 사랑하지요
세상 그 무엇보다 그대만을 영원히 나 기다려요


   이 노래의 가사를 보고 있자면 약간 혼란스럽습니다. 1절은 분명 후배나 제자에게 해 주는 말인 것 같은데, 2절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전환됩니다. 마치 헤어지는 연인에게 하는 말 같죠.


   1절 처음 부분이 저에겐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화를 내며 떠나는 '그대'가 등장하는데, 아마도 '그대'는 화자나 다른 사람의 말로 상처를 받은 듯합니다. 화자는 그 말이 진심이 아니니 웃어 넘기라고 조언하죠. 저도 팩폭으로 남부럽지 않은 T형 인간이지만 누군가에게 팩폭을 날리거나 조언하는 건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요즘 세상에 조언이란 까딱하면 선 넘는 꼰대의 말이 되기 쉬우니까요. 반대로 말로 상처 입은 경험도 많이 해 봤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딴 말을 하냐며 분노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타격감이 없어졌습니다. 말로 상처를 주는 사람치고 나에게 깊은 관심이나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으니까요. 이 노래 가사처럼 그저 웃어 넘기면 될 일이죠.


   이런 가사에 이어 "그대의 소중한 재능이 숨겨진 보석과 같은 거죠 언젠간 환하게 빛날테죠" 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아직 빛나지는 않지만 숨어 있는 보석.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빛날 보석을 화자는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꿈을 키우고 강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화내며 떠나는 이에게 어려운 상황에 있더라도 자신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 생각해 보니 보통 내공은 아닌 듯합니다.


   2절에서는 '그대'의 정체가 연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더라도 다시는 이런 느낌을 받지 못할 거라고 말하죠. 영원히 사랑하고 영원히 기다린다고. 저는 들을 때마다 이 부분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 하는 GD의 <삐딱하게>를 지지하는 사람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영원 논쟁보다 좀더 걸리는 지점은 1절에서 떠나는 사람을 위로하고 스스로 강해지라며 응원하는 어조로 노래하던 화자가 2절에서 갑자기 영원한 사랑과 기다림을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뿌듯한 마음보다 부담감에 떠나는 발걸음이 너무 무겁진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듭니다.


   이 노래가 떠나는 연인에게 헌정하는 노래라고 해도 다음 세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인 것은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잊지 말라는 당부언제까지나 그대를 지지하겠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을 진심을 담아 부르는 김광진 님 덕분에 저도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 더 사족을 붙이자면 '바램'은 '바람'으로 수정하면 좋겠습니다. 노래방에서 가사가 지날 때마다 왠지 교정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김광진 님의 <진심>보다 6개월 정도 앞서 발표한 곡입니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던 그 달에 발표된 곡이죠. 고백하자면 중학교 시절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계를 휩쓸 때 저는 N.EX.T의 팬이었습니다. 강렬한 밴드 사운드도 좋았지만 일찍이 글빨에 열광하는 아이였던 저는 신해철 님이 쓴 가사가 무엇보다 좋았습니다. 대중 가요의 가사들이 사랑 타령으로 점철돼 있던 시절, 신해철 님의 가사들은 신세계와 같았습니다. 물론 신해철 님의 노래에도 사랑을 소재로 한 곡이 많지만, 자신을 성찰하고 삶을 관조하고 세상을 비판하기도 하는 그 노래들은 독보적인 것이었습니다.


   특히 1997년에 들었던 이 노래는 처음 듣는 순간부터 빠져들었죠. 게다가 제목이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니. 최초의 신체시라는 최남선의 시에서 제목을 빌려 왔지만, 최남선의 해(海)가 바다라면 신해철의 해는 태양이라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당시 이 앨범은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의 OST이기도 했습니다. 그 만화를 본 적은 없지만 이 앨범, 특히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일렉트릭 기타가 내는 소리에 우주를 나는 비행체들의 모습이 그려지곤 했습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

1997년 11월

N.EX.T 4집 앨범 및 'Lazenca - A Space Rock Opera' 타이틀곡

작사/작곡 신해철


https://youtu.be/DPOWJkaspok?si=eLBueTlXp9EYS5xm


눈을 감으면 태양의 저 편에서 들려오는 멜로디 내게 속삭이지
이제 그만 일어나 어른이 될 시간이야 너 자신을 시험해 봐 길을 떠나야 해
네가 흘릴 눈물이 마법의 주문이 되어 너의 여린 마음을 자라나게 할 거야
남들이 뭐래도 네가 믿는 것들을 포기하려 하거나 움츠러들지 마
힘이 들 땐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 앞만 보며 날아가야 해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 마
변명하려 입을 열지 마 그저 웃어 버리는 거야
아직 시간이 남아있어 너의 날개는 펴질 거야

Now we are flying to the universe
마음이 이끄는 곳 높은 곳으로 날아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 앞만 보며 날아가야 해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 마
변명하려 입을 열지 마 그저 웃어 버리는 거야
아직 시간이 남아있어 너의 날개는 펴질 거야
더 높이 더 멀리 너의 별을 찾아 날아가

소년아 저 모든 별들은 너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란다
세상을 알게 된 두려움에 흘린 저 눈물이
이 다음에 올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지


   가사를 정리하는 동안 신해철 님이 얼마나 휴머니스트였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언뜻 보면 명령조로 보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른이 되기 위해 힘겨운 길을 가야 하는 여린 소년들을 걱정하는 마음과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특히 "남들이 뭐래도 네가 믿는 것들을 포기하려 하거나 움츠러들지 마 힘이 들 땐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 앞만 보며 날아가야 해" 하는 가사는 소년들에 대한 믿음 없이는 할 수 없는 조언입니다. 청소년을 미숙한 존재, 불완전한 존재로만 보는 사람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말이죠.


   김광진 님의 <진심>에서 "숨겨진 보석과 같은" 재능을 언급했듯이, 이 노래에서도 "너의 날개는 펴질 거야" 하며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믿으라고 토닥입니다. "마음이 이끄는 곳, 높은 곳으로 날아가", "더 높이 더 멀리 너의 별을 찾아 날아가"에도 소년들이 자신의 길을, 자신의 별을 스스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부드러운 내레이션으로 처리한 후반부는 소년들에 대한 사랑이 목소리로도 느껴집니다. 소년아 우리도 두려웠단다. 저 별들이 모두 이 세상과 고군분투한 선배들의 눈물이야. 이 눈물이 별이 되어 다음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지. 그러니 너 자신을 믿고 네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높이 날아라. 신해철 님이 그리워지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부디 이 노래 듣고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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