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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C Jul 29. 2024

현재의 청춘과 과거의 청춘이 만나 부르는 노래

최백호 <덧칠>

   이분처럼 나이 든다면 노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분은 1950년생, 70대의 나이에도 본업인 음악을 지속하는 것을 넘어 여전히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도전합니다. 핫한 후배들과 콜라보 곡을 발표하기도 했죠. 그림을 그리고 만화책을 좋아하는 분이기도 합니다. 바로 최백호 님입니다.


   이분의 음악을 좋아하게 된 건 2013년에 발표한 <부산에 가면>부터였습니다. 에코브릿지가 작사 작곡한 곡인데 최백호 님의 서늘하고 우수에 젖은 목소리가 정말 매력적인 곡입니다. 무엇보다 노년의 성숙하고 절제된 목소리가 감각적인 젊은 뮤지션의 곡과 만나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낸 것 같았죠. 이 노래를 10년 가까이 질리지 않고 들으며 이런 곡이 다시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2022년 11월 발표한 앨범 《찰나》는 그 바람을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었습니다.



   《찰나》가 발표되고 난 뒤 앨범 정보를 살펴보다 곡 하나 하나가 새로운 시도이고 도전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 놀랐습니다. 후배 지코, 콜드, 죠지, Tiger JK, 정승환이 참여했고 선생보다 선배인 정미조 님이 참여한 곡도 있습니다. 작곡은 신인 작곡가 육성 프로그램 출신 작곡가들이 작업했다고 합니다. 선생께서 직접 작사/작곡한 곡도 있었죠. 일흔의 나이에도 그렇게 많은 선후배와 새로운 도전을 하는 선생의 모습에 나도 저렇게 나이 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앨범은 인생의 성장과 고민이 순서대로 담겨 있다고 합니다. 모든 곡이 좋았지만 그중 원픽은 콜드와 함께 부른 <덧칠>입니다. 이 곡은 20대 청년기의 고민을 담았다고 합니다.


하얗게 지새운 밤은 또 지나가네요
저 하늘 빛나는 별은 알고 있겠죠
차갑게 굳어진 맘은 시들어 가네요
겨울이 지나가면 꽃은 피어나겠죠
수없이 덧칠해 봐도 사라지지 않는 어둠
쉼 없이 달려온 길 너머엔 아침이 오기를

저 많은 사람들 어디로 가는 걸까요
그 발자국 위로 난 따라가면 될까요
수 없이 덧칠해봐도 사라지지 않는 어둠
쉼 없이 달려온 길 너머엔 아침이 오기를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아침이 오기를

https://youtu.be/E_NExKcaudA?si=9JU3ulyYOdNHWezY


   20대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자 불안과 방황의 시절이기도 합니다. 2010년 출간된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는데 청춘의 멘토처럼 보이던 그 책은 10년만에 '아프니까 ~이다'라는 밈으로 변형되어 자신의 처지를 냉소하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당시에도 이 책은 20대가 당면한 사회구조적 문제를 청춘의 성장통으로 은폐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대중은 열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면서 다른 집단의 고통은 순리로 여기라는 꼰대의 대명사가 된 듯합니다.


   시대를 넘어 20대가 불안과 방황의 시절인 이유는 초보 성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부모님으로부터 밀착 관리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스무 살이 되어도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은 물론이고 정신적 독립도 쉽지 않습니다. 성인이 되면, 대학에 입학하면 뭐든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죠. 대학 등록금은 비싸고 알바로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기도 벅찹니다. 삶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궁핍할 때가 이 시절일 텐데요, 그러다 보니 부모님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시절이자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간극을 실감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진로에 대한 고민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방황하죠.


   <덧칠>은 이런 청춘들에게 각 잡고 조언하는 것이 아니라 청춘들의 아픔과 방황을 그대로 표현하는 곡입니다. "하얗게 지새운 밤은 또 지나가네요"하는 가사에는 청춘의 고단함이 묻어납니다. "차갑게 굳어진 맘은 시들어 가네요"에서 보듯 그 고단함이 청춘의 마음마저 시들게 만들었죠. 이 곡에서 청춘의 낭만 같은 건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어둠의 이미지입니다. "수없이 덧칠해 봐도 사라지지 않는 어둠"이 청춘의 현실인 것이죠. "저 많은 사람들 어디로 가는 걸까요 그 발자국 위로 난 따라가면 될까요" 하는 부분은 특히 먹먹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남들은 다들 잘사는 것만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든 건지, 그냥 남들 사는 것처럼 살면 되는 건지 고민했던 그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 노래가 좋았던 것은 이렇게 청춘의 현실을 담담하게 가감없이 드러내면서도 조언이나 의미 없는 응원 대신 "쉼 없이 달려온 길 너머엔 아침이 오기를" 하며 스스로 희망을 놓지 않는 청춘의 모습을 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피처링의 공식을 깨고 콜드가 1절을, 최백호 선생이 2절을 부른 것도 청춘에 대한 배려로 느껴졌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부르는 후반부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는 현재의 청춘과 과거에 청춘을 겪은 이가 함께 그 시절을 공감하며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는 것 같았습니다. 입장의 동일함이 관계의 최고 형태라는 신영복 선생의 말씀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출처: 신영복 아카이브


   최백호 님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하게 후배들과 함께하며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청춘으로 좋은 어른으로 남아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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