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라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내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려 한다고 괜한 헛수고라 생각하진 말아요
내 마음이 헛된 희망이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정상이 없는 산을 오르려 한다고 나의 무모함을 비웃지는 말아요
그대 두 손을 놓쳐서 난 길을 잃었죠
허나 멈출 수가 없어요 이게 내 사랑인걸요
내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그대 없이 나 홀로 하려 한다고
나의 이런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 나를 설득하려 말아요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려 한다고 괜한 헛수고라 생각하진 말아요
정상이 없는 산을 오르려 한다고 나의 무모함을 비웃지는 말아요
"나는 사랑하고 있는 걸까?——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사람, 그 사람은 결코 기다리지 않는다. 때로 나는 기다리지 않는 그 사람의 역할을 해보고 싶어한다. 다른 일 때문에 바빠 늦게 도착하려고 애써 본다. 그러나 이 내기에서 나는 항상 패자이다.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나는 항상 시간이 있으며, 정확하며, 일찍 도착하기조차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74p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착란을 일으킨다. 그의 착란은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보다 어리석은 것이 또 있을까? (...) 나는 니체의 당나귀처럼 사랑의 영역에서의 모든 것에 대해 "예"라고 대답한다. 나는 고집을 부리고, 배움을 거부하고, 똑같은 처신만을 반복한다. 어느 누구도 나를 가르칠 수 없으며, 나 또한 그렇게 할 수 없다.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26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