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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C Aug 05. 2024

자유롭게 선택한 현기증, 사랑

이소라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폭우와 폭염. 폭력적인 날씨가 이어지다 보니 가기로 했던 바닷가 여행마저 취소했습니다. 집 안에서도 냉방병과 온열질환 사이에서 에어컨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텀블러에 얼음과 커피를 가득 채워 옆에 두고 종일 음악을 들으며 읽고 쓰는 지금이 어떤 휴가보다 평안합니다. 이런 날씨에는 여름 캐럴이라 불리는 신나는 곡들을 많이 듣지만, 저는 요 며칠 이소라 님의 노래들을 듣고 있습니다. 오랜 비와 더위에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느낌입니다. 이소라 님 노래들 중에 한 곡을 고르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지만, 요즘 가장 위로가 되는 곡은 김동률 님이 작사 작곡한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입니다.


내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려 한다고 괜한 헛수고라 생각하진 말아요
내 마음이 헛된 희망이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정상이 없는 산을 오르려 한다고 나의 무모함을 비웃지는 말아요
그대 두 손을 놓쳐서 난 길을 잃었죠
허나 멈출 수가 없어요 이게 내 사랑인걸요

내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그대 없이 나 홀로 하려 한다고
나의 이런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 나를 설득하려 말아요


   이 노래는 이소라 님 외에도 김동률, 곽진언 등 많은 가수들과 가수 지망생들이 불러 영상이 꽤 많은 편입니다. 그중에서 이소라 님의 버전과 곽진언 버전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좋아 두 곡을 오가며 반복 재생하고 있습니다.


https://youtu.be/qWF0TnOo9FE?si=OS6GucVMBi_pHLf7


https://youtu.be/WWFsBYr5Ck8?si=3qji1KWKAx2K_eUO


   이 곡의 탁월함은 이 두 문장에 있다고 봅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려 한다고 괜한 헛수고라 생각하진 말아요

정상이 없는 산을 오르려 한다고 나의 무모함을 비웃지는 말아요


   보이지 않는 길, 정상이 없는 산.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정상이 없는 산을 오르는 사람. 사랑이란 것이 그런 것인가 생각하다 사는 것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해진 길도 안내 지도도 없는 길을 수고롭게 가야 하는 것. 힘겹게 오르지만 정상이 어딘지 알 수 없고 그곳이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산. 불가능한 또는 불가지한 것이지만 갈 수밖에 없고 할 수밖에 없는 것. 사랑도 삶도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곡에는 이 무모한 사랑을 부정하는, 멈추라 말하는 타자들이 등장합니다. 네가 하려는 것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것이라고, 정상이 없는 산을 오르는 일이라고, 사랑이 아니라고. 그러나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헛수고라, 무모하다 말하는 목소리들은 힘을 갖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조차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해도 멈출 수 없는 것이 또한 사랑이니까요.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동문선, 정가: 30,000

   이 노래를 들으며 요즘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자꾸 꺼내 뒤적이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를 스쳐가는 미세한 움직임들을 난해하지만 아름다운 언어로 포착해 낸 보기 드문 책이죠.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가 사랑을 기다림으로 표현한 부분입니다.


"나는 사랑하고 있는 걸까?——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사람, 그 사람은 결코 기다리지 않는다. 때로 나는 기다리지 않는 그 사람의 역할을 해보고 싶어한다. 다른 일 때문에 바빠 늦게 도착하려고 애써 본다. 그러나 이 내기에서 나는 항상 패자이다.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나는 항상 시간이 있으며, 정확하며, 일찍 도착하기조차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74p

 

   끝없는 기다림. 이것만큼 사랑하는 사람의 상태를 잘 나타낼 수 있는 게 있을까요? 황동규 시인도 <즐거운 편지>에서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라고 표현했죠. 사랑과 기다림을 표현한 시 중에 하나가 더 떠오릅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이 시의 화자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안 모든 감각이 예민해집니다. 그렇게 모든 움직임이 너인 것처럼 느껴지는 기다림은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로 변모합니다. 더는 수동적인 기다림에 머물지 않고 대상을 향해 가기로 한 것이죠. 그 대상이 아무리 멀리 있다 해도. 황지우 시인에게 기다림의 대상은 "민주, 자유, 평화, 숨결 더운 사랑"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요?


   한편 사랑은 어리석은 것이기도 합니다.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에서 "그대 두 손을 놓쳐서 난 길을 잃었죠 허나 멈출 수가 없어요 이게 내 사랑인걸요" 하는 부분을 보면 이 곡의 화자도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뭔가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고통과 혼란에 빠질 것을 안다 해도 멈출 수가 없는 것이 또한 사랑이죠. 이를 『사랑의 단상』에서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착란을 일으킨다. 그의 착란은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보다 어리석은 것이 또 있을까? (...) 나는 니체의 당나귀처럼 사랑의 영역에서의 모든 것에 대해 "예"라고 대답한다. 나는 고집을 부리고, 배움을 거부하고, 똑같은 처신만을 반복한다. 어느 누구도 나를 가르칠 수 없으며, 나 또한 그렇게 할 수 없다.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268p


   사랑은 누가 지시한 것도 아니고 반드시 해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게다가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약자의 자리에서 기다림을 감내해야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사람이든 어떤 가치든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삶을 지속할 동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옥타비오 파스는 "사랑은 자유롭게 선택한 현기증"이라고 표현했다는데, 정말 공감하는 말입니다. 자유롭게 선택한 그 사랑이 우리를 현기증 나게 하지만, 우리는 또 그 사랑 덕분에 삶의 허무를, 무의미를 극복하고 하루하루를 살아 냅니다. 누가 그 사랑을 헛수고라고, 무모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 눈에 누군가의 사랑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려"는 것처럼, "정상이 없는 산을 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비웃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요. 지금 주변에 그 현기증에 힘겨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어떤 말 대신 어깨나 툭툭 토닥여 주려고 합니다. 술이나 한 잔 사 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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