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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C Jul 15. 2024

정말 사랑하지 않는 걸까?

어반자카파 <널 사랑하지 않아>

사랑하긴 했나요?


   어반자카파의 <널 사랑하지 않아>는 처음 들었던 순간부터 귀에 꽂히듯 강렬한 인상을 준 곡입니다. 그런데 들을 때마다 자꾸 의심이 듭니다. 정말 사랑하지 않는 걸까요? 우선 가사를 살펴보겠습니다.


무슨 말을 할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개만 떨구는 나 그런 날 바라보는 너 그 어색한 침묵
널 사랑하지 않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눈물 흘리는 너의 모습에도 내 마음 아프지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그게 전부야 이게 내 진심인거야
널 사랑하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아티스트: 어반자카파, 앨범: STILL

발매: 2016.05.27.

작곡: 권순일(어반자카파)

작사: 권순일(어반자카파)



   화자는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이 고민의 정체는 뭘까요? 아직 자신을 사랑하는 상대에게 이별을 통보해야 하는 미안함일까요? 어색한 침묵 속에 화자가 꺼낸 말은 "널 사랑하지 않아."입니다. 꽤나 어렵게 꺼낸 말이란 것을 알 수 있죠. 그런데 "너도 알고 있겠지만"이라는 말을 함께 전합니다. 화자는 어느 시점부터 '너'에게 사랑하지 않는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나 봅니다.


    "눈물 흘리는 너의 모습에도 내 마음 아프지가 않아" 하며 냉정하게 사랑의 종식을 선언합니다. 더구나 이 선언에는 이유조차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 그 자체가 이유죠.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 하며 자신의 감정을 단호하게 드러내는 듯합니다. 이상할 일도 아니죠. 사랑을 시작하는 데 이유가 없었던 것처럼 끝나는 데에도 이유가 없을 수 있죠. 이런 말을 차갑게 내뱉는 화자라면 상대를 사랑하긴 했을까요?


   그런데 "그냥 그게 전부야 이게 내 진심인거야 널 사랑하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하는 대목에 이르면 '사랑하지 않는 걸 이렇게까지 강조한다고? 확인사살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걸까?' 하는 합리적 의혹을 품게 됩니다.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AI들과 대화를 해 봤습니다.




ChatGPT와의 대화



산책자 C: 이 노래에서 화자는 어떤 마음인 걸까?


ChatGPT: 이 노래에서 화자는 연인에게 더 이상 사랑이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가사를 분석해보면 화자의 마음 상태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민과 망설임: "무슨 말을 할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개만 떨구는 나 그런 날 바라보는 너 그 어색한 침묵" - 화자는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연인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워 망설이는 모습이 보입니다.


냉정한 진실: "널 사랑하지 않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 화자는 더 이상 연인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냉정한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연인도 어느 정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암시합니다.


감정의 무감각: "눈물 흘리는 너의 모습에도 내 마음 아프지가 않아" - 연인이 눈물을 흘려도 화자는 전혀 마음이 아프지 않습니다. 이는 화자의 감정이 이미 식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진심의 고백: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 화자는 다른 이유 없이 단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변명이나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합니다.


결정적인 결단: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그게 전부야 이게 내 진심인거야" - 화자는 더 이상 미안하다고 말하거나 용서를 구하지 않겠다고 결단합니다. 이는 그만큼 자신의 감정이 확고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화자는 연인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솔직하게 전달하려 합니다. 이런 진솔한 고백은 상처를 줄 수 있지만, 결국 두 사람 모두에게 필요한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산책자 C: 혹시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주제와 정반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을 가능성은 없을까?


ChatGPT: 표면적으로는 사랑의 부재를 다루고 있지만, 정반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작품의 다층적인 의미를 탐구하고, 깊이 있는 이해를 도모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아래에 이 작품의 표면적인 주제와 반대되는 숨은 메시지를 추측해보겠습니다.


표면적 주제는 사랑의 종결과 이별의 슬픔입니다. 하지만 정반대의 메시지를 찾으려면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발견: 화자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고백을 통해, 그 동안 억지로 유지해왔던 관계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더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이별이 새로운 사랑의 시작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내적 자유와 성장: 이별을 통해 화자는 억눌려 있던 감정에서 벗어나 내적 자유를 얻고, 개인적으로 성장하는 기회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이별의 슬픔을 넘어 자기 발견과 자아 성장의 과정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관계의 성찰: 사랑이 끝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화자와 상대방 모두가 자신들의 감정과 관계를 다시 성찰하게 되며, 이를 통해 더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ChatGPT는 이렇게 사랑하지 않는 감정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내용으로 해석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내용과 반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인정했지만, 어디까지나 현 사랑의 종결을 전제로 자아의 성장 측면에서 해석했죠. 이렇게 가사를 조목조목 해석하는 능력을 보며 짧은 기간 AI의 성능이 정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걸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AI 챗봇과도 대화를 시도했지만  ChatGPT의 답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애절한 음악과 차가운 노랫말이 만드는 모순


https://www.youtube.com/watch?v=MfYPKZl7W1w

어반자카파, <널 사랑하지 않아> 뮤비


   의문을 해소하고자 본 뮤비는 이 곡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더욱 좁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의 데이트에서 남자는 옆 테이블에서 다투는 연인을 발견합니다. 그러고는 표정이 어두워지죠. 다시 연인에게 집중하고 화장실에 다녀온 뒤 연인에게 반지를 끼워주며 포옹합니다. 그런데 이때 연인을 안고 있는 남자의 시선에 매력적인 여인이 들어옵니다. 하이힐을 벗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발끝에 걸치고 있는 여자였죠. 그 여인에게 시선을 빼앗긴 채 남자는 자신의 연인을 안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이렇게 작은 충격에도 언제든 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노래를 반어로 읽은 저의 생각은 어떤 이유였을까요?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차분한 멜로디와 음색이 먼저 귀에 들어왔습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기에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음악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곡이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애절한 감정이 흘러 넘칩니다. 곡이 3분 10초에 이르면 권순일의 "널 사랑하지 않아"와 조현아의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가 화음을 이루며 감정은 절정에 도달하죠. 이 대목을 들을 때마다 '사랑하지 않는데 이렇게까지 애절하게 부른다고?'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의 작품은 내용과 형식으로 완성됩니다. 내용은 작품의 주제나 메시지에 해당할 것이고 형식은 이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노래의 경우 주제나 메시지는 가사에 담고 이를 전달하기 위한 형식은 특정한 음악 장르나 멜로디, 연주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작품은 이 형식이 작품의 내용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만들지만, 어떤 작품은 형식과 내용이 어긋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때 작가가 내용과 형식의 불일치를 의도한 것이라면 이는 겉으로 보이는 내용과 전혀 다른 메시지를 말할 가능성이 큽니다.




<구운몽>의 경우


   김만중의 <구운몽> 또한 작품이 겉으로 드러내는 메시지와 숨어 있는 반대의 메시지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승려 성진입니다. 그는 용궁으로 초대받아 꿈 속에서 양소유라는 인물로 환생하여 벼슬을 하고, 여덟 명의 아리따운 여인들과의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양소유는 이렇게 꿈 속에서 높은 관직에 올라 많은 부와 권력을 누리지만, 결국 모든 것이 꿈이었음을 깨닫고 본래의 성진으로 돌아옵니다. 국어 시간에 우리는 이 작품의 주제가 인생의 덧없음과 무상함이라 배우죠.



   그런데 이 작품 또한 인생무상만을 주제로 보기에는 의심스러운 지점들이 있습니다. 이 작품이 인생무상을 말하는 것이라 보기에는 양소유가 경험하는 속세의 사랑과 모험과 권력이 너무도 매력적으로 흥미진진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작품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죠. 즉, 인생무상을 말하려는 작품이라기엔 속세의 사랑과 모험에 지나치게 많은 분량과 노력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경우 독자는 작품이 표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인생무상'보다 '역시 사람은 출세하고 봐야 해.' 하는 메시지가 더 강렬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출헌 선생은 이 작품을 "꿈으로 갈무리한 상층 사대부의 욕망"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는?


   개인적인 해석을 전제로 말하자면 저는 이 노래가 단순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만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일반적인 해석이나 ChatGPT의 해석에도 불구하고 이 음악이 전달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깊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랑을 이제는 어떤 이유로 더 지속할 수 없어 사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애절하고 강렬하게 반복하는 "널 사랑하지 않아"는 오히려 그 사랑을 중단하는 일이 얼마나 아프고 어려운 일인지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좋은 가사와 음악, 훌륭한 가창력으로 여러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해 준 어반자카파 여러분에게 리스펙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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