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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C Jul 08. 2024

평범한 만남과 이별, 그리움에 대한 담담한 고백

폴킴 <우리 만남이>

   사랑 노래만큼이나 많은 것이 이별 노래입니다. 사랑하면 언젠가 어떤 모습으로든 이별을 피할 수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겠죠. 10대와 20대를 보내는 동안 사랑 노래에 심취해 있었다면 지금은 이별 노래에 더 마음이 끌립니다. 딱히 사랑이나 그 비슷한 특별한 인연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만남보다 이별이 더 잦은 시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겠죠.


   졸업, 입학, 입사, 퇴사 같은 통과의례를 여러 차례 겪으며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만남과 이별에 익숙해지는 게 인생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가볍고 짧은 인연, 무겁고 긴 인연, 가볍지만 긴 인연, 무겁지만 짧은 인연. 이런 인연들이 계통 없이 다가왔다 사라질 때마다 또 이런 게 인생이구나 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 크고 작은 구멍들이 생겨나는 건 막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이를 먹을수록 슬픔이 기본 정서로 자리잡는 듯합니다.


   이별 노래 중에 폴킴의 <우리 만남이>에 더 빠져든 건 작년 여름에서 지난 봄까지 짧은 기간에 퇴사와 입사, 퇴사를 경험한 덕분입니다. 7년 넘게 몸담았던 회사를 나와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면서 오래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어색하게 적응해 가다 8개월만에 퇴사하면서 짧았던 만남을 다시 끝맺게 됐습니다. 일로 만난 사이인데, 특별할 것 없었던 인연들인데 왜 그렇게 허전한 마음이 들었는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습니다.


   이렇게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며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동안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던 여러 곡들 중 이 노래가 갑자기 새롭게 들리더군요. 이 노래를 흘려들었을 때엔 그냥 평범한 연인 사이의 얘기로 착각했었습니다. 그냥저냥 만나 사귀다 헤어진 이들의 얘기. 그런데 귀기울여 들어 보니 이 노래는 연인 관계에 포커스를 둔 곡이 아니라 살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형태의 만남과 이별을 포괄하는 노래였습니다.



https://youtu.be/FEI_imQ1Eaw?si=K3BrUiGzZRuaroA2


<우리 만남이>
 
우리 만남이 특별하진 않았지 우리 만남에 뭐 있겠어
우리 이별이 가슴 찢기도록 아프진 않았지만 슬플 거야
우리 만남이 특별하진 않았지 우리 만남에 뭐 있겠어
그래도 우리 좀 친해지긴 했지만 서로 눈물 보일 것까진
그리울 거야
인생은 헤어지고 만나고 익숙해지고 또 그냥 그런대로 살아가고
인생은 무뎌지고 아파하며 익숙해져서 다시 그땔 그리워해

우리 만남이 특별하진 않았지 이 나이에 뭐 있겠어
즐거웠다 또 만나자 어 연락해 말해도 한동안 또 안 볼 사이
그리울 거야
...
노래/작사/작곡 폴킴, 2020.04.22.

  뮤비를 보면 살면서 만나는 모든 인연에 대한 얘기임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뮤비의 공간적 배경은 5곳입니다. 학교 도서관, 버스 정류장, 기차 안, 회사, 술집. 인물들은 크게 세 무리로 분류할 수 있는데요, 1. 학교 친구들 2. 버스정류장에 같이 서 있는 사람들 3. 회사 동료들입니다. 학교 친구들은 도서관과 엠티를 떠나는 기차 안에서, 회사 동료들은 회사와 술집을 배경으로 장면이 연출됩니다. 버스 정류장은 특정한 인물들의 배경이라기보다 낯 모르는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며 비를 피하는 곳으로 보입니다. 1.이나 3.의 인물들이 뒤섞여 있을 수도 있고요. 모두 비슷한 코트를 입고 정류장에 서 있는 모습으로 보아 잠시 스친 익명의 사람들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이 뮤비는 평범한 인물들과 일상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합니다. 화면은 대부분 어두운 공간과 차분한 조명, 덤덤한 표정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인물들의 덤덤한 표정도 우리가 일상을 보낼 때의 표정과 다를 바 없죠.



   학교, 버스 정류장,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 이렇게 세 무리의 인물들은 어떤 목적을 위해 잠시 한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입니다. 학업을 위해, 버스를 타기 위해, 일하기 위해. 이들은 그런 별것 아닌 일상적인 목적으로 잠시 만나 함께 공부하고 버스를 기다리고 일합니다. 진정한 만남은 목적이 없는 것, 만남 자체가 목적인 것이라고 했으니, 이런 목적이 있는 만남이야말로 별 볼 일 없는 스쳐가는 만남이겠죠. 가사대로 "좀 친해지긴 했지만, 서로 눈물 보일 것까진 없는 사이"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만남들이 정말 별것 아닌 걸까요?

 

   뮤비에서 보여주듯 이들은 자신의 학업, 이동, 일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만났습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덤덤하게 자기 일을 하지만 때로는 서로 돕고,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며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성취의 기쁨을 나누기도 합니다. 그렇게 시공간을 공유하며 함께 웃고 울던 이들이 별것 아닌 인연일 리 없습니다. 비록 그러다 헤어질 시간이 되면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일상을 함께 나누고 지탱해주는 소중한 인연들이죠.



   그런 이들과 헤어지는 일 또한 쉬울 리가 없습니다. 졸업할 때나 퇴사할 때 우리는 아쉬움에 이 노래 가사처럼 "즐거웠다 또 만나자 어 연락해" 하는 말을 주고받으며 헤어집니다. 그렇지만 목적을 위해 만났던 이들이 목적 없이 일부러 만나기는 쉽지 않죠. 다시 보자, 밥 먹자 약속을 남발해도 "한동안 또 안 볼 사이"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러면 이제 담담한 얼굴로 다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면 되는데 왜 쓸쓸한 마음이 들까요?


   그건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일 겁니다. 공부도 일도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고 거리에서 스치는 이들도 나처럼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기계가 아닌 이상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하다 보면 마음도 주고받게 되죠. 작은 마음이라도 마음을 주고받던 이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무렇지 않을 리 없습니다. 한동안 허전한 마음이 들고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그러다 이 노래의 가사처럼 무뎌지고 다시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지겠죠.



   이 노래의 뮤비는 마지막에 모두 떠나고 텅 빈 도서관과 버스 정류장, 사무실을 비춥니다. 모두 떠나고 시간은 멈춘 듯 공간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떠난 이 공간이 이제는 더이상 비어 있는 공간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떠나간 사람들이 남겨 놓은 무언가가 그 공간 안에 남아 있는 듯합니다. 아마 추억과 그리움이겠죠. "다시 그땔 그리워해" 하며 노래하는 폴킴의 절제된 처연한 목소리가 이 노래 전체의 주제를 정말 적확한 방식으로 아름답게 드러낸다고 느꼈습니다.

 

인생은 헤어지고 만나고 익숙해지고
또 그냥 그런대로 살아가고
인생은 무뎌지고 아파하며 익숙해져서
다시 그땔 그리워해


   지난 봄 퇴사 후 뒤늦게 인사 메시지를 주고받던 분에게 이 노래를 추천했는데, 처음에는 "우리 만남이 특별하진 않았지 / 우리 만남에 뭐 있겠어" 하는 가사에 "쳇" 하고 반응하시더군요. 아마 끝까지 들었다면 짧은 만남이었지만 헤어짐이 아쉽고 함께 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할 거라는 제 마음이 조금은 전해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옛 친구들과 동료들이 그리워지는 여름날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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