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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C Jun 24. 2024

사랑과 집착 사이

휘성 <안 되나요...>

코노에서 추억 돋는 1990~2000년대 노래들을 부르다 뜨악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사춘기부터 20대에 즐겨 듣고 부르던 노래들인데, 어느 순간부터 가사나 뮤비가 거슬리기 시작하더군요. 한 세대의 시간이 지났으니 그럴 만도 하죠. 특히 '사랑'을 테마로 한 곡들 중에서 요즘 20대가 들으면 과도한 집착이나 스토킹으로 느낄 만한 노래들이 있는데요, 그중 휘성의 <안 되나요...>를 톺아보겠습니다.



휘성, <안 되나요...(화양연화)>


   2002년 4월 3일에 발표한 곡입니다. 박경진 작사, 이현정 작곡, 장르는 R&B이며 휘성의 데뷔앨범 Like A Movie에 수록된 타이틀곡입니다.


https://youtu.be/5EY0Zw1pkSM

너무 힘들어요 다른 사람 곁에 그대가 있다는 게 / 처음 그댈 본 날 훨씬 그 전부터 이미 그랬을 텐데 / 어쩌면 헤어질지 몰라 힘겨운 기대를 해봐도 / 단 한번 힘들어하는 표정 없이 행복해하는 그대가 싫어요 / 안 되나요 나를 사랑하면 조금 내 마음을 알아주면 안 되요 / 아니면 그 사람 사랑하면서 살아가도 되요 내 곁에만 있어 준다면 / 하루는 울고 있는 그대 멀리서 지켜본 적 있죠 / 그렇게 울다 지쳐서 그 사람과 이별하게 되길 기도하면서 / 안되나요 그대 이별하면 이제 그 자리에 내가 가면 안되요 / 아니면 그 사람 사랑하면서 살아가도 되요 내 곁에만 있어 준다면 (후략)


   첫 문장부터 '그대'에게는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화자는 그걸 알면서도 '그대'를 사랑하게 됐죠. 그러면서 '그대'가 이별하기를 바라고 미운 마음도 듭니다. 자기 마음을 알아달라며 애걸하다가 급기야 자기 곁에만 있어 준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도 된다고 말하죠.


   사랑한다는 이유로 껍데기라도 좋으니 내 옆에만 있어달라는 이 노래, 사랑하면 저럴 수 있지 하고 공감하시나요? 상대는 무슨 죄... 이렇게 가스라이팅하면 언젠가 상대를 나를 사랑하게 될까요? 사랑하면 상대를 알고 싶고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지만, 상대가 원치 않는데도 마음을 달라 같이 있어 달라 하는 건 집착과 강요일 뿐입니다. 이렇게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사랑, 심지어 자기파괴적인 사랑은 섬뜩합니다. 말줄임표가 붙어 있는 이 노래의 부제가 '화양연화'인데 가당치 않습니다. 저런 삐뚤어진 사랑을 두고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이라뇨.


   뮤비는 좀더 문제적입니다. 새로 부임한 고등학교 교사가 반 아이 한 명과 썸을 타고, 썸 타는 아이의 친구도 이 선생님을 사랑하는 구도입니다. 물론 졸업식 뒤에야 교사와 학생의 본격 로맨스가 시작되지만, 뮤비의 주인공은 선생님을 차지하기 위해 친구의 자전거를 망가트려 사고를 당하게 합니다. 그 친구는 선생님에게서 멀어지려 하지만, 선생님은 여전히 그 친구를 잊지 못하고 만취 상태에서 주인공과 하룻밤을 보내게 되지요. 여기까지도 막장 드라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여전히 그 친구에게 매달리는 것을 보고 눈이 돌아버린 주인공은 그 길로 물에 뛰어듭니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친구에게 해를 입히고 심신미약 상태의 상대와 하룻밤을 보내고도 뜻을 이루지 못하자 보란 듯이 죽어 버린 주인공. 깊고 애절한 사랑이 느껴지시나요? 집착 쩌는 돌I... 이런 말이 먼저 나오지 않나요? 상대에 대한 욕망과 사랑은 분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랑의 정의를 소개합니다.


샤갈, <도시 위에서> 러시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의 뮤즈이자 연인 벨라와 자신의 행복한 모습을 그린 작품.


Love is the active concern for the life and the growth of that which we love.  
-Erich Pinchas Fromm, <The Art of Loving>
사랑은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의 삶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중에서


   사랑은 상대가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성장하도록 기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뒤에는 연인, 친구, 부모자식 등등의 관계에서 사랑의 이름으로 행하는 말과 행동들을 검열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이러니까 그 나이 먹도록... 하는 핀잔도 달갑게 받아들이고 있죠.


   덧말 하나 더! 직업병이라 '안 되나요', '안 되요'의 표기를 짚고 가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습니다.

'안 되나요' O

'안 되요' X -> '안 돼요' O

'살아가도 되요' X -> '살아가도 돼요' O



2002년 당시 큰 사랑을 받았고 저 또한 즐겨 듣고 부르던 노래임을 밝힙니다. 흐른 세월만큼 사랑의 방식이나 표현이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으로 정리한 것이니 너그럽게 읽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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