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능력의 발달: 해독에서 독해로
오늘은 읽기 방법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책을 읽을 때는 문자를 해독(decoding)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요, 글자와 소리, 의미와의 관계를 인식하는 과정이 해독입니다. 글자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이 '사과'라는 글자를 읽을 때 '사', '과' 하며 글자 하나하나를 소리내어 읽은 뒤에야 글자가 뜻하는 것이 '사과'라는 것을 인식하는 과정이 바로 해독이죠. 글자를 배우기 시작한지 1~2년 정도는 이렇게 해독의 장벽을 넘어서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문자 해독기에 있는 아이들은 소리내어 읽는 '음독'이 읽기의 기본입니다. 이렇게 음독을 훈련하여 글자와 소리, 의미의 관계를 익혀 능숙하게 해독할 수 있는 상태를 '해독의 자동화'라고 합니다. 자동화는 운전을 처음 배웠을 때를 떠올리시면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처음 운전을 시작할 때에는 시동을 켜고 사이드브레이크를 해제하고 기어를 넣고 핸들을 조작하는 모든 행동들이 어색하기만 합니다. 조작 하나 하나를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는 동안 뇌와 손발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그러다 몇 달 이 과정을 반복하고 나면 익숙해져 더이상 운전에 필요한 과정이나 행동 하나 하나를 의식하지 않아도 능숙하게 운전할 수 있게 되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해독이 자동화된 뒤에야 아이들은 묵독으로도 글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해독할 수 있는 단계가 되면 혼자 묵독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 자녀에게 목이 쉬도록 책을 읽어 주는 부모님을 종종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정적으로 책을 읽어 주던 부모님들도 아이가 글자를 알기 시작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읽어 주기를 중단하고 아이가 혼자 읽게 하죠. 아이의 문해력을 키워 주고 싶은 부모님이라면, 부디 계속 책을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해독에서 독해로 전환되는 시기라도 아이들이 글자 해독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해독의 자동화'를 넘어 읽기 유창성을 획득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따라서 글자 해독의 부담을 줄이면서 아이의 이해력과 사고력을 키우는 효과적인 방법은 책을 '듣는' 것입니다. 오디오북을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부모님이 책을 읽어 주는 것은 부모님과 아이의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유도하여 아이의 정서적 안정과 친밀감까지 키울 수 있는 효과가 있으니 1석 2조입니다. 언제까지 읽어 주는 게 좋으냐는 질문을 하신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가능한 오래.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물론 책 읽어 주는 것을 거부할 가능성이 크지만 어릴 때부터 가족이 함께 책을 읽었다면, 아이가 큰 뒤에도 각자 자신이 읽은 부분 중 좋았던 내용을 일부라도 다른 가족에게 소리내어 읽어 주는 모습이 어색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아이뿐 아니라 연로한 부모님께 책을 읽어 드리는 것도 정서적 안정과 소통 측면에서 함께 TV를 보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독이 자동화되고 읽기 유창성을 획득하며 아이들은 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독해'의 단계에 들어서게 됩니다.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의 경우, 읽기 유창성 단계에서 훈련을 소홀히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아이들은 글자나 문장은 잘 읽지만 의미를 파악하거나 글에 드러나지 않은 의미나 내용을 짐작하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소위 해독은 되지만 독해는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죠. 이를 '기능적 문맹'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이 문제가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이유는 '매튜 효과' 때문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태복음 25장 29절의 말씀입니다. 로버트 머튼은 저명한 연구자가 더 많은 혜택(지원금 등)을 가져가고, 잘 알려지지 않은 연구자는 그렇지 못함으로써 점점 두 사이에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을 두고 마태복음을 인용하여 '매튜 효과'라 말했습니다. 케이트 스타노비치는 이를 학생의 읽기 문제에 적용했습니다. 읽기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진급하면서 점점 더 독해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언어는 도구과목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다른 교과목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학업 성취도가 점점 떨어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초등학교 1~2학년 때 해독에서 독해로 잘 이행하지 못해 읽기 유창성을 획득하지 못한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전과목의 학습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다섯 가지 읽기 방법
그렇다면 독해를 잘 하려면 어떤 연습이 필요할까요? 독해는 글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수능 세대라면 '어사추비'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수능 국어에서 다루는 독해 문제들이 어휘, 사실적 이해, 추론적 이해, 비판적 이해로 구성된다는 말이죠. 그런데 최근 독서교육 또는 국어교육에서는 어휘를 제외한 읽기 과정 및 기능을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합니다.
내용 확인: 사실적 읽기, 글에 명시적으로 나타난 내용 파악하기
추론: 추론적 읽기, 글에 생략된 내용이나 드러나지 않은 의도나 관점 파악하기
평가: 비판적 읽기, 사실과 의견 구별, 글의 신뢰도나 타당성 평가하기
창의: 필자와 자신의 의견 비교하기, 문제 해결하기, 주제 통합 읽기, 선택적 읽기
점검과 조정: 읽기 과정과 전략 점검하고 조정하기
2022 개정교육과정 중 국어과 읽기 영역의 내용 체계
교육과정 문서에서 볼 수 있듯 읽기는 단순히 글에 명시적으로 나타난 사실을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글에 드러나지 않은 의미를 추론하고 글의 타당성이나 작가의 의도를 평가하며 자신의 생각과 비교하며 읽어야 합니다. 또 같은 주제를 가진 다양한 텍스트를 통합하여 읽고 자신의 진로나 관심 분야에 대한 책을 스스로 선택하여 읽어야 합니다. 간략하게 보여드렸지만 생각보다 읽기, 또는 독해가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여기에 좀더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 '점검과 조정'입니다. 이것은 읽기에 대한 '메타인지'를 뜻합니다. 메타인지는 '인지에 대한 인지', 즉 자신의 인지 과정을 관찰·발견·판단·통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의 인지에 대해 판단하는 능력을 뜻하죠. 이를 읽기에 적용하면 자신이 잘 읽고 있는지, 어떤 전략을 사용해 읽고 있는지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은 다시 읽거나 다른 전략을 사용해 읽기를 '조정'하는 것입니다. 메타인지가 뛰어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적절한 때, 적절하게 발휘할 수 있어 효율적이고 성취도도 높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 사교육계나 자기계발서에서 메타인지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아졌죠.
21세기에는 이러한 읽기 방식의 변화에 더해 복합양식(multimodal) 텍스트 읽기와 다문서(multi-text) 읽기, 디지털 리터러시까지 문해력(literacy)의 범위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 교육과정은 물론이고 OECD의 PISA 읽기 평가나 미국의 교육과정에도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사추비만 외치시던 부모님들이라면 다소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을 테지만, 읽기 환경이 크게 변화했기 때문에 읽기 영역과 방법이 달라졌다는 것을 인식하셔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곧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독해의 고수가 되려면 이러한 읽기 방법을 자유자재로, 텍스트에 맞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그동안 책을 얼마나 잘 읽어 왔는지 점검해 볼까요? 다음 시간에는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 봤을 만한 알퐁스 도데의 「별」에 읽기 방법을 적용해 보겠습니다. 오래 전에 읽어 내용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다시 꺼내 읽으시기를 추천합니다. 소설 속 정경이 비 오는 요즘 잘 어울리는 작품이니 읽기 방법을 떠올리며 한번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예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숨어 있는 보석들을 발견하실 수도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