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책_신형철, 『인생의 역사』중에서
두 사람의 말은 모두 진실이다. 그러나 나의 진실은 아니다. 사랑은 세상이 고통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면서 끝나는 게 아니라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일이다. 사랑은 가치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가치다. 나의 진실은 다음 문장에 있다. "Amo: Volo ut sis." 하이데거가 아렌트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에 적힌 아우구스티누스의 말, 훗날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9장 2절)에서 다시 적은 그 말. "사랑합니다. 당신이 존재하기를 원합니다." 사랑은 당신이 이 세상에 살아 있기를 원하는 단순하고 명확한 갈망이다. '너는 이 세상에 있어야 한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아모 볼로 우트 시스. 세상이 고통이어도 함께 살아내자고, 서로를 살게 하는 것이 사랑이 아는 유일한 가치라고 말하는 네 개의 단어.
-신형철, 『인생의 역사』 96p.
이영광의 사랑의 발명은 '무정한 신 아래에서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기 시작한 어떤 순간들의 원형'을 보여주는 시다. 나는 인간이 신 없이 종교적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는 무신론자인데, 나에게 그 무엇보다 종교적인 사건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곁에 있겠다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무신론자는 신이 없다는 증거를 쥐고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염려하는 사람이다. 신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 세상의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향한 사랑을 발명해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신이 아니라 이 생각을 믿는다.
-신형철, 『인생의 역사』 9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