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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GARDEN Nov 28. 2023

시선의 방향 8_⟨오펜하이머⟩와 ⟨난징! 난징!⟩

영화 에세이 (Film Essay)





이전 글과 이어집니다.


※ Spoiler Alert ※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장면 묘사가 많이 등장합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의 주의를 요합니다.






     한편, 욘 라베는 독일로 돌아가면서 자기 조수와 당천상 그리고 그의 아내를 함께 데려가려 한다. 당천상은 검문소 앞에서 다시 이다와 마주한다. 이다는 오랜만이라며 뻔뻔스럽게 그의 안부를 묻는다. 어쨌거나 마침내 난징을 벗어날 기회다. 그러나 이다는 욘 라베와 갈 수 있는 사람은 둘 뿐이라며 당천상 부부를 보내주고 조수의 통행을 허락하지 않는다. 남겨진 조수를 뒤로하고 걷던 당천상은 얼마 못 가 걸음을 멈춘다. 일전에 동포를 팔아넘겼던 그는 이번에는 타인의 목숨을 대신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기로 결심한다. 이다는 굳은 표정으로 사는 게 낫지 않냐고 되묻는다. 그러나 당천상은 기어이 난징에 남는다. 그 순간, 이다가 믿고 있던 세계가 무너진다.



     이제 이다의 눈에 서리는 것은 두려움과 그를 감추기 위한 경멸 그리고 광기다. 인간성만큼 괴물을 두렵게 만드는 건 없다.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견고한 합리화를 무너뜨리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의 괴물과 동침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괴물이 되지는 않는다. 이다는 전쟁이라는 비극 안에서 사람들을 괴물로 만들며 그것이 곧 인간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생존의 기로 앞에서 인간성을 지켜내는 당천상을 보며 비로소 자신의 실상을 마주한다. 이것이 세상에 더 많은 ‘선한 타자’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타인은 자아를 비추는 유일한 거울이다. 괴물만 가득한 세상에서 괴물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는다. 괴물은 오직 사람을 통해서만 자신의 본모습을 볼 수 있다.



All that is necessary for the triumph of evil is that good men do nothing.
악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Edmund Burke 에드먼드 버크





     당천상은 포박된 채 총살대로 간다. 총살대에는 이미 몇 사람이 눈이 가려진 채 묶여있다. 당천상은 차례를 기다린다. 이다가 특유의 태연한 표정으로 당천상의 입에 담배를 물려준다. 발사 명령이 내려지고 묶여있던 이들이 총살된다. 당천상은 차마 그 모습을 쳐다보지 못하지만, 이다는 익숙한 듯 그들을 똑바로 바라본다. 다시 총알이 장전되고 이제는 당천상의 차례다.


사람은 누구나 죽어.     

     다시 한번, 이다의 단언이다.


그거 알아? 내 아내가 임신했어.
내 아내가 또 임신했다고.

     당천상의 마지막 전언이다. 그는 웃고 있다.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둘은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당천상이 총살되는 순간 이다는 몸을 돌린다. 괴물은 자기 모습을 보는 게 두렵다.




     몸을 돌린 이다의 표정이 관객을 향한다. 그러나 포커스는 이다의 어깨 너머에서 벌어지는 당천상의 총살 장면에 맞춰져 있다. 안대 쓰기를 거부한 당천상은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이다를 마지막까지 바라본다. 확인 사살이 이어진 후에야 포커스가 이다의 얼굴로 옮겨간다. 이다는 한참 만에 겨우 뒤를 돌아 죽은 당천상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이 장면 다음에 난징의 피난민 중에서 군인과 양민을 구분하는 장면이 따라붙는다. 군인으로 분류되어 끌려간 자 중 가족이 있는 경우 양민으로 돌려보내달라는 선교사의 부탁을 어째서인지 이다가 수락한다. 이는 당천상이 이다에게 남긴 균열이다. 괴물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렇게 이다와 당천상은 서로의 초상을 그려내는 붓이 된다.








To be continued →


*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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