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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GARDEN Dec 05. 2023

시선의 방향_10 ⟨오펜하이머⟩와 ⟨난징! 난징!⟩

영화 에세이 (Film Essay)



이전 글과 이어집니다.


※ Spoiler Alert ※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장면 묘사가 많이 등장합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의 주의를 요합니다.






     주인공의 선택

     주인공은 매 순간 선택하고 행동해야 한다.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린 결정은 결과적으로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주인공과 그의 주변은 문제에 더 깊이 엮여 든다. 주인공은 자신이 선택하기 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 관객은 주인공의 선택에 충분히 동의가 되는지 판단한다. 주인공에게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을 거라는 판단이 들면 관객은 영화에 몰입할 수 없다. 관객이 주인공의 선택을 납득할 때 그들은 주인공과 동화되어 선택에 따른 결괏값에 기꺼이 동참한다. 그리고 주인공의 최종 선택과 엔딩을 숨죽여 기다린다. 그는 과연 원하는 것을 성취할 것인가. 그를 위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오펜하이머⟩의 경우 이러한 인물의 선택과 결괏값이 영화의 중반에서 이미 등장하고 끝나버린다는 데에 구조적 패착이 있다. 원자폭탄을 개발하기로 결심하고 트리니티 실험에 임하는 동안 오피는 매우 주체적인 캐릭터였다. 그는 많은 결정 앞에서 망설이지 않았고, 책임질 수 없는 결과를 목도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오피의 정치적 행보와 청문회에서의 모습은 관객이 지금까지 로스 앨러모스에서 봐왔던 그의 모습과 매우 다르다. 오피는 위축되어 있고 방어적이다. 오피의 아내 키티가 말한 것처럼 그에게는 더 이상 공격할 의지도 선택할 의지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아직 절반이 남았고, 결국 극을 끌어가는 바통은 오피가 아닌 스트로스에게 넘어간다. 지금껏 관객과 감정적 빌드업을 쌓아온 주인공이 아닌 평면적 악역이 이끄는 정치드라마로 결국 영화는 끝을 맺는다. 굳이 찾자면 오피가 마지막으로 내린 결정은 청문회를 받아들이는 것인데, 이때 오피의 포지션은 안쓰럽고 처연한 주인공이 아닌 급격히 삭제된 주인공에 불과하다.







     오피가 매카시 광풍 앞에서 무력했다면, ⟨난징! 난징!⟩의 주인공 카도카와는 중일전쟁의 한가운데서 무력하다. 한동안 카도카와는 비극 앞에서도 낙천성을 유지한다. 이는 그의 순진하고 순수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침략에 성공한 진영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강자의 입장에 선 그가 진정으로 고통과 직면하는 데에는 더 많은 사건이 필요하다. 심지어 카도카와는 진급을 앞두고 초대받은 위안소에서 일본인 매춘부 유리코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유리코는 여자를 알지 못해 당황하는 카도카와를 다정하게 대해주고, 카도카와는 그런 유리코 품에서 그간의 고통을 위로받으며 울음을 터뜨린다. 위안소에서 나오는 카도카와에게 한 병사가 해맑게 뛰어와 어땠느냐고 묻는다. 카도카와가 “나중에 저 여자와 결혼해야겠다”고 답하자, 병사는 머리에 성병이 옮은 게 아니냐고 되묻는다. 그러나 카도카와에게는 자신의 괴로움을 달래준 유리코가 무척 특별하다.


     일본군이 안전지대에 무단으로 들어가 소녀들을 강간한 그날, 카도카와는 혼자 유리코를 찾아가고 있었다. 카도카와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당신을 보러 왔다고 말하지만, 유리코는 시작하시라며 곧바로 다리를 벌릴 뿐이다. 그녀는 카도카와가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병색이 완연한 유리코의 다리가 유난히 새하얗다. 카도카와는 그런 유리코에게 신년 선물이라며 통조림, 사탕, 사케 따위를 담은 보따리를 건넨다. 유리코는 아이처럼 행복해하며 보따리에 얼굴을 묻고 고향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린 듯(사실 정신을 다시 놓으며) 다리를 벌리고 침대에 눕는다. 카도카와는 자신의 이름을 유리코에게 알려주지만, 유리코는 카도카와를 쳐다보지도 않고 로봇처럼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다. 무릎을 세운 새하얀 유리코의 다리만 프레임에 나오고, 그 옆으로 진심을 움켜쥔 순진한 일본인 장교의 얼굴이 어리석게 놓인다.





     숨어있는 부상병을 사살하기 위해 안전지대에 갔을 때도 카도카와는 유리코를 떠올리며 한 선교사의 십자가 목걸이를 가져온다. 카도카와는 어눌한 영어로 자신도 교회에서 공부했다며, 이 목걸이를 자신에게 줄 수 있냐고 공손하게 묻는다. 선교사의 표정이 비통하다. 그러나 카도카와는 선교사에게 목걸이를 받은 게 무척 기쁜 듯 예의를 갖춰 중국어로 감사 인사까지 전한다. 카도카와는 선교사의 슬픔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제아무리 진심으로 하는 행동이라도 카도카와의 태도가 위선이 되는 것은 그가 이 명백한 권력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부상병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일본군은 안전지대에 100명의 여성을 위안소로 보낼 것을 요구한다. 카도카와는 그곳에서 유리코와 닮은 중국인 여성을 보게 된다. 그는 자신이 사람을 착각했다며 사과하고, 주먹밥을 여성에게 내민다. 여성은 주먹밥을 바닥에 버리고 침대에 눕는다. 카도카와는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그런 여성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는 사이 한 병사가 와서 끝났느냐고 묻더니 곧바로 여성을 덮친다. 겁탈당하는 여성이 똑바로 카도카와를 쳐다본다. 카도카와는 시선을 피한다. 신음과 비명, 울음으로 찬 공간을 그가 힘없이 걸어나간다. 애당초 일본인은 5원, 조선인과 중국인인 2원인 세계에서 유리코를 만났음을 그는 비로소 깨닫는다.





     카도카와는 3주 뒤에 돌려보내겠다던 100명의 여성 중 살아남은 자가 고작 7명뿐임을 확인한다. 위안소에서 정신을 놓은 중국인 여성을 이다가 총살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무고한 새하얀 몸들이 수레에 실려 버려지는 것을 본다. 결국 영화의 엔딩부에서 카도카와는 세 번의 중대한 선택을 한다. 첫 번째 선택은 선교사를 사살하는 것이다. 그녀는 더 많은 중국인을 양민으로 구해내기 위해 그들의 아내인 척 사람들을 빼내다가 이다에게 발각된다. 그녀는 위안소로 보내질 터였다. 연행되던 선교사는 카도카와를 발견한다. 그녀는 영어를 아는 카도카와에게 나지막한 소리로 자신을 쏴달라고 부탁한다. 멀어지는 선교사의 얼굴이 유난히 새하얀 것도 같다. 카도카와는 이제 그 빛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멀어지는 선교사를 천천히 좇는 카메라 움직임이 불안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요하다. 그 고요를 깨는 한 발의 총성이 들린다. 카도카와가 선교사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그 직후 카도카와는 유리코를 찾아간다. 그러나 그녀는 전방에 갔다가 병으로 사망했고, 카도카와는 더는 전해줄 수 없는 보따리를 위안소에 두고 돌아간다. 이제 영화는 15분가량 남았다. 그동안 그는 두 번의 중대한 선택을 더 하게 된다.











To be continued →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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