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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GARDEN Dec 19. 2023

시선의 방향_END ⟨오펜하이머⟩와 ⟨난징! 난징!⟩

영화 에세이 (Film Essay)



이전 글과 이어집니다.


※ Spoiler Alert ※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장면 묘사가 많이 등장합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의 주의를 요합니다.





     영화 속 인물의 생이 끝나고 나면 마땅히 관객에게는 ‘그렇다면 이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아야 한다. 영화 속에서만, 혹은 과거에서만 반복되는 이야기의 존재 가치란 미약하다. 더 단적으로 말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극장을 벗어날 때 관객이 그 이야기에서 고스란히 빠져나올 수 있다면 그 작품은 잘못 만들어진 무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펜하이머⟩는 관객에게 어떤 질문을 남기는가? ⟨오펜하이머⟩가 현대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는 얼마나 선명한가?

     ⟨오펜하이머⟩는 엔딩에서 용서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신이 오피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 당신은 그를 비난할 수 있는가? 실컷 오피를 순교자로 그리고서 던지는 질문이기에 이는 비겁하다. 오피가 면피를 가질 수 있다면 오늘날 내려지는 다른 유사한 결정도 면피를 받을 수 있다는 잠재적 결론이 도사린다.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 오피는 연쇄 반응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아인슈타인에게 말한 후 화면 너머를 보며 눈을 질끈 감는다. 이는 바통을 관객에게 넘기는 행위다. 후대가 건네는 메달의 주인공이 오피나 아인슈타인이 아닌 후대 본인들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대사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바통을 건네받은 관객은 의아하다. 먼저는 오늘날 관객이 어떤 점에서 오피와 같은 입장에 서 있는지 짐작할 요소를 영화가 남기지 않았기에 그렇고, 무엇보다 영화를 보면 오피의 선택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 보이기에 그렇다. 아무리 수십 만 명의 사람을 해치는 일에 일조했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명분과 이해의 길이 열리는 걸 목격했는데, 관객이 넘겨받은 바통의 무게가 뭐 그리 무겁겠는가. 우리도 그저 후대를 향해 눈을 질끈 감으면 되는 일 아닌가. 엔딩이 건네는 메시지와 영화가 시종일관 그려온 내용 사이의 간극이 크면 이런 사달이 나는 것이다.





     오피가 살던 시기에 인류는 아직 전쟁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것이 얼마나 장기적이고 반영구적인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지 체감하지 못했다. 어렴풋이 알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권력에서 손을 떼기 두려워했다. 더 나은 지혜를 받아들일 만큼의 인지가 부족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떤가? 오늘날 우리는 전쟁의 끔찍함과 무용함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 전쟁이 만들어내는 지옥도를 이해하는 작업보다 오피의 입장과 감각을 이해하는 작업이 선행될 만큼 지금의 세계는 안전한가? 원자 폭탄 개발에 일조한 개인의 처지를 공감하려고 노력할 만큼 인류는 이미 진일보한 것인가? 혹은 언제나 그랬듯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또 한 번 삭제된 것에 불과한가? 마셜 군도의 원주민 피폭을 다루는 일보다, 일본의 피해자 의식이 어떻게 지금처럼 공고히 자리 잡게 됐는지 이해하는 일보다, 피폭의 피해를 대물림해서 받는 이들을 살피는 일보다 오피의 감정에 공감하는 일이 인류에게는 더 시급한 문제인 것인가?

     결국 ⟨오펜하이머⟩를 보는 내내 불편했던 감정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오펜하이머⟩에서부터 파생되는 논제들이 풍부할 수는 있으나, 그것은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오펜하이머⟩ 자체가 보여주는 세계는 경주마에게 씌우는 눈가리개 같은 좁은 범주에 머물렀을 뿐이다. 감독의 인터뷰와 학자들이 제공하는 추가적인 이야기는 엄밀히 말했을 때 영화의 구성 요소가 아니지 않은가.





     한 영화 모임에서 ⟨오펜하이머⟩를 본 후 나눈 대화들을 아직도 기억한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는 이야기, 과학자로서 오피가 가졌던 호기심과 열망들, 당시 일본은 항복하지 않았을 거라는 명분, 패전국에서 나고 자란 감독의 시선으로 작은 세계를 삭제한 폭력성에 대해 “어쩔 수 없죠”라고 답하는 무심함...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얼마나 기운이 빠지는 말인가. 아무리 전 세계적으로 네트워크가 발달하고 소통이 원활해졌음에도, 다양한 학문이 등장하고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척도가 늘어났음에도, 강자가 약자를 악의 없이 오려내는 편집의 폭력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가. 그날의 비참함에 휘청이다가 마침내 쓰기 시작한 것이 이 에세이다. 좋아하지 않는 영화에 대해 말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라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오펜하이머⟩와 ⟨난징! 난징!⟩을 다루자고 결정한 다음, 두 달여를 틈만 나면 전쟁사 영상을 봤다. 내가 다루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했다. 전쟁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일은 고통스러워서 자꾸 주위를 환기하고 싶어졌다. 일단 하나를 보기 시작하자 회피하는 일도 괴로웠다. 밥을 먹으면서, 지하철 안에서, 잠들기 전에, 짧게는 10분 길게는 3시간에 이르는 영상을 수십 개씩 봤다. 끔찍한 참상을 기록한 글도 수두룩했다. 온통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이야기였다. 진이 빠졌다. 영혼 어딘가가 병들고 있는 게 느껴졌다. 눈을 감으면 참호에 들어가 누운 내 모습이 보였다. 발이 썩어들어가고,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쥐가 사방을 기어다녔다. 자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오펜하이머⟩가 삭제한 것들이 무게가 두려웠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그 모든 비극이 왜 일어나야만 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도대체 왜?’ 되물으며 글을 쓴다. 그리고 이렇게 되묻는 목소리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난징! 난징!⟩을 처음 본 날도 기억한다. 계단식으로 된 강의실에서 매주 다 같이 영화를 보고 과제로 감상문을 써서 제출하는 수업이었다. 15시에 시작해서 18시면 끝나는 수업. ⟨난징! 난징!⟩을 본 날은 학생들 모두가 유례없이 숙연한 분위기로 집에 돌아갔다. 걸핏하면 수업이 끝나고 함께 술을 마시러 가던 동기들도 입을 꾹 다물고 사라졌다. 한편 나는 ⟨난징! 난징!⟩을 보고 무척 분노한 상태였다. 특히 일본 병사들이 난징의 민간인 여성을 강간한 후 모여서 사랑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보며 치를 떨었다. 세상만사에 분노가 탱천해 있던 시기였고, 젠더 갈등을 언어화하던 시기였다. 같이 하교한 남자 동기 L에게 나의 분노를 슬쩍 내비쳤다. 그런데 L이 지나치게 조용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는 작게 떨고 있었다. 내가 다녔던 학과는 여성과 남성의 성비가 8:2 정도였기 때문에 남자 동기는 고작 네 명이 전부였다. 하나같이 여린 사슴 같은 타입이었지만 L는 그중에서도 가장 목가적이고 유순한 친구였다. L은 나의 말에 동의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님에게 상담을 해봐야겠다고 말할 정도로 불안해했다. 나는 그제야 여성으로서 내가 일본 병사들에게 분노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L이 남성으로서 끔찍한 역사에 연좌제로 동참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내가 짊어져야 하는 인류의 역사와는 다른 결의 역사일 터였다.

     분노가 사라지고 나는 도리어 L을 다독여준 후 그가 버스를 타는 모습까지 지켜보았다. L은 인사치레로 미소를 짓거나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는 늘 메고 다니던 백팩 끈을 생명줄처럼 꼭 쥐고 있었다. 몇 년 뒤 L에게도 이야기했지만, 이날 그가 보여준 반응은 나에게 무척이나 큰 고마움으로 남았다. 덕분에 나는 세계에서 남성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 이전과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으며, 무분별하게 남성을 증오하지 않을 수 있었다. 같이 수업을 들은 학우들에 대해서도 매한가지다. 그들은 평소처럼 웃고 떠들며 집에 갈 수 있었다. 농담을 해서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할 수도 있었다. 큰 소리로 울거나 화를 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침묵했고,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들이 본 것을 소화해 내자고 결정했다. 영화란, 사람이란, 그렇게 존재해야 한다고 ⟨난징! 난징!⟩과 그대들을 통해 막연하게 배웠다. 그날 그 순간에 있었던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Fin.


* 이제 제발 사랑 이야기 다루고 싶어요...

* 네, ⟪오펜하이머⟫ 별로 안 좋아합니다. (속시원)


** 연재일을 주 1회로 줄였습니다. 소설, 시, 에세이, 감상문 등 더 다양한 글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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