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속에서 자기확신이 더욱 빛을 발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세상이 우리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우리를 위협할 때 우리는 의지할 한 가지를 찾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자기확신이다.
나는 글을 쓰는 동안, 그리고 세 자녀를 키우며 끊임없이 나 자신을 믿어야 했다. 육아와 글쓰기는 언제나 나를 시험하고, 흔들어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길을 붙들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세 자녀를 키우는 과정은 마치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는 것과 같았다. 처음엔 내가 맞게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이끌어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도전이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성향과 요구를 가지고 있었고, 나는 그들에게 맞춰야만 했다. 그것이 마치 내 글쓰기 여정과도 닮아 있었다. 글을 쓸 때마다, 한 단락 한 단락을 완성해 나갈 때마다 마주하는 난관들. 나를 의심하는 순간들이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써나갔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믿는 과정이었다.
글쓰기가 무엇인가? 누군가에겐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저 조용히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일 것이다. 나에게는 후자에 가까웠다. 글을 쓰는 일은 늘 나 자신과의 대화였다. 세상에 나를 내보이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글을 썼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키워가는 아이들처럼, 내 글도 천천히 성장할 것이라고,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이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믿었다.
박완서 선생님의 문체처럼, 담담하고 깊이 있는 문장들은 늘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박완서 선생님의 글 속에서 느껴지는 그 흔들림 없는 자기확신,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 그리고 삶을 꿰뚫는 사유는 언제나 내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마치 삶의 어떤 중요한 순간에 다시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나 역시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나의 경험, 나의 글쓰기 여정, 그리고 세 자녀를 키우며 느낀 수많은 감정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일 수 있기를 바랐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글쓰기와 육아는 나에게 더없이 큰 자기확신의 시험장이었다. 글은 내게 있어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솔직한 방법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나의 존재가 흔들릴 때마다, 나는 글 속에서 다시 나를 발견하곤 했다. 때로는 글이 답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분명히 무엇인가를 배우고 있었다. 박완서 선생님도 그랬을 것이다. 자신의 글 속에서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며, 또 다른 길을 찾았을 것이다
.
밥 프록터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믿는 것은 자기확신의 본질이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 한 발 내딛을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아이들을 키우며, 글을 쓰며, 불확실성 속에서도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을 믿는 확신 덕분이었다. 아무리 험한 길이라도, 결국에는 내가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내 글과 삶은, 박완서 선생님의 문체처럼 그렇게 담담하게 흐르면서도 강하게 이어져 나갈 것이다. 삶은 언제나 나를 시험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험 앞에서 나는 늘 나 자신을 믿고, 그 믿음 속에서 다시 일어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