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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맘혜랑 Oct 15. 2024

왜 그렇게 날카롭니?

생존의 지혜

숲길이 드디어 눈앞에 드러났다.

홍사용문학관 주차장에 차를 정차하니 반석산이 우리를 반겼다. 아이들이 우르르 자연의 품으로 몰려들어갔다. 열 명 남짓 되는 아이들이  속에서 또 무슨 발견을 할까,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숲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잘려나간 나무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잔뜩 쌓여있는 나뭇가지를 보며 흥분하는 아이들. 집에서 뛰어놀지 못하고 참아야 했던, 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죽은 듯 누워있는 나무를 보는 순간 분출되었다. "저건 죽은 나무가 아니란다." 나는 아이들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이 나무들은 언젠가 썩어서 다른 생명들에게 영양분이 될 거야. 숲은 이렇게 회전목마처럼 돌고 또 돌아. 죽은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또 다른 생명을 위한 밑거름이지." 내가 하는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흘리고 아이들은 나무 조각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나무와 친구가 되어 놀았다. 몸으로 순환을 느끼고 이해하려는 듯   구석구석을 누빈다.


500여 미터를 걸었을까 잘 조성된 웅덩이가 있었다. 큰 기름새가 무리 지어 자라고 있다. 큰기름새 (Cordgrass) 습기 있는 땅과 해안가에서 자생하는 식물로, 군락을 이루며 촘촘히 자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날카로운 잎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다. "이 풀을 아는 친구 있니?"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몇몇이 고개를 갸웃거다. 나는 한 걸음 더 다가가 큰기름새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풀은 왜 이렇게 잎이 날카로울까? 손 끝으로 느끼는 거침과 날카로움은 마치 커터칼보다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칼처럼 만지면 피가 날 정도로 위험할 수도 있어."라는 말에 아이들은 신기한 눈으로 그 풀을 쳐다봤다. "이 풀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야. 다른 동물들이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게 말이야. 사람도 그렇단다. 가끔 우리는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렵고 무서워 우리 마음을 방어하려고 날카로워질 때가 있지." 


그때, 뒤쪽에서 작은 말다툼이 시작됐다. 나뭇가지를 주워 들던 두 아이가 서로 먼저 집을 짓겠다고 몸싸움을 한다. “내가 먼저 했단 말이야!” “넌 내 말을 듣지 않았잖아!”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나는 그들을 잠시 지켜보다가 다가갔다. "큰기름새를 보렴." 나는 아이들에게 다시 풀을 가리켰다. "이 풀도 처음엔 누구나 만질 수 있었겠지. 그런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렇게 날카로워졌어. 큰기름새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야. 이 풀은 환경을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거든. 강한 뿌리로 땅을 단단히 잡아주어 토양 침식을 막고, 염분이 많은 환경에서도 끈질기게 자라며 습지 생태계를 지탱하는 존재란다. 너희가 방금 한 말들도 그렇단다. 서로를 지키려다 보면 때론 마음이 날카로워지고 상처를 주기도 해. 하지만 큰기름새 단지 날카롭기만 한 건 아니야. 이 풀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다른 생명들과 연결되어 살아가. 우리가 친구들과 관계를 맺을 때도 단지 방어만 하기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연결되면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해."


아이들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까지 다투던 두 아이도 서로를 다시 바라보았다. 큰기름새의 날카로운 잎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어 전략이다. 그러나 그 풀도 생명력 있는 뿌리로 깊이 연결되고, 주변 생명들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아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때로는 자기 방어를 위해 날카로운 말을 할 수 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서로 이해하고 연결되는 마음이었다.


숲은 끊임없이 순환한다. 죽은 나무들이 썩어가며 새로운 생명을 키우고, 큰기름새도 그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자연에서 배운다. 강해지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방어하는 동시에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생존의 방식임을. 아이들은 그날 자연 속에서 작은 교훈을 얻었다. 자신을 지키되, 친구들과 함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그 당시 숲해설을 하며 만난

큰기름새는 나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었다.


사람중심이던 내가 자연 속의 작은 소우주로 자리 잡으면서 그 속의 또 다른 소우주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그들로부터 삶을 배우는 자세를 가지게 했다. 자연은 내게 언제나 품 넓은 엄마 같다. 


나는 요즘 새롭게 삶을 살아간다.

그간 비워 두었던 곳간을 채운다. 책을 보면서 마음을 채우고, 글을 쓰면서 마음을 채운다. 인생을 다시 쓴다.


문단에 발표했던 시, 이 공간에 옮겨본다.



큰기름새


혜랑


내 가슴을 베고 지나간 그날 이후,

잿빛꽃이 되었다


주저리주저리,

날카로움에 얽힌 이야기는

내 귀에 들어와 연민이 되었다

좁쌀 같은 꽃을 피웠던 지난 시간들

저 바닥의 모래알과 뒹굴다 버려질 우리의 날

어느 구석,

통증으로와 자리 잡았다


바람이 서걱거리며 스치운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겉모습이 품은

너의 속내를 더듬어 보라 한다


이제는 돌아보려 한다



10년 전 문단에 발표했던 시를 다시 읽으며 그 당시의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돌이켜본다.

시를 쓰지 않았더라면 치유되지 않았을 그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도저히 살아내지 못하고 미칠 것 같던 그 순간들도 다 지나고  하나의 추억으로 남는다.

그 상흔은 성숙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나에게 남아 존재하는데.

깨달음이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은 없다

그저 되는 것도 없고

또한 세상 공짜는 없다.

설령 그것이 공짜로 내게 왔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돌고 도는 상황이 온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간 나의 어려움이 내게 이렇게 성숙으로 왔다고 생각하니

이 가을이 너무도 아름답다.

그래서 나는 이 가을에 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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