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피는 죽단화가 철 모르게 꽃을 피웠다. 그 모습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당황스럽다. 봄이 지나고 한가을에 꽃이 핀 것이다. 내일모레면 서리가 내려 겨울이 올 텐데, 이 꽃은 세상을 맞이할 때가 온 줄로 아는 모양이다. 죽단화는 “나는 한 철에만 피는 것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것 같다. 과연 이처럼 계절을 잊고 피어난 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죽단화를 보며 나는 고민에 빠진다. 이 꽃을 반갑게 맞이해야 할지, 아니면 찬서리에 꽃잎이 시들어 순식간에 꺾일 꽃을 보며 한탄해야 할지 고개만 갸우뚱거리고 있다. 장미는 시들어가고 있는데, 죽단화는 여전히 생생한꽃잎을 펼치고 있다. 꽃이 내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삶의 리듬을 내 속도로 가져가라.” 나는 초조하게 남의 눈치를 보며 타이밍을 재고 있지만, 이 꽃은 자신만의 리듬을 따른다. 이는 마치 인생의 여정처럼, 각자의 속도와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세상만사 이치가 다 때가 있다고 말하던 엄마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죽단화는 늦게, 그러나 완벽한 타이밍에 꽃을 피운다. 이는 창작의 과정과도 같다. 나는 10여 년을 시를 쓰며 시집출간 준비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시작한 글쓰기가 점차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변모했다. 어느 날, 저녁 햇살이 방 안을 물들일 때, 빈 페이지를 바라보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내 이야기는 불안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명확해졌다.
가을 들판이 내게 말한다, '자연의 시간은 인간과 다르게 흐른다.' 바람이 불어와 마른 나뭇잎을 떼어내고, 그 잎은 하늘로 흩어진다. 그 순간, 내 마음도 나뭇잎과 함께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시간이란 자연 속에서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바람에 휘말린 나뭇잎은 결국 자신이 갈 곳을 찾는다. 이렇듯 인간의 삶도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나름의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많은 작가들이 하루 만에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르듯 책을 출간하지 않는다. 그들만의 시간과 경험이 모여 책이라는 형체로 탄생한다. 내가 손에 든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도 마찬가지다. 김창완 작가의 시간과 기억이 겹겹이 쌓여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우리도 각자의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쌓아가고 있다. 언제 완성될지는 모르지만, 각자의 리듬에 맞춰 언젠가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같은 시기에 창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자주 나를 괴롭혔다. “왜 나는 남들보다 늦게 시작하는가?”라는 의문이 들 때마다 꽃들이 때를 기다리며 피는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꽃은 이르든 늦든 각자 자신만의 시간과 리듬을 존중하는데. 나는 어찌 이리도 스스로를 재촉하는지, 그러다 또 어떤 때는 대자연의 지혜, 죽단화의 지혜가 큰 위로가 된다. 나의 창작의 길 또한 다양한 경험 속에서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자연의 시간 속에서 나의 글쓰기도 한결 느긋해진다. 정해진 길로만 가야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언제 결실을 맺을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 자라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인생을 에세이로 써나가는 데는 긴 시간과 자양분이 필요하다.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 과정은 무수한 경험과 배움, 그리고 기다림으로 가득하다.
창작이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여정이다. 나는 실패의 쓴맛을 보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글쓰기의 고통과 기쁨이 공존하는 이 길에서, 죽단화처럼 자신의 시기를 기다리며 나만의 꽃을 피울 날을 고대한다. 아프리카 속담에 “시작은 늦어도 좋다, 끝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나의 글도 결국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것이다.
죽단화가 시기를 놓치지 않고 세상을 놀라게 하듯, 나도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 매일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글을 떠올리며 고뇌에 빠지지만, 한 글자도 추가하지 못한 채 밤을 보낼 때도 많다. 그러나 그것이 창작의 과정이다. 완벽한 순간을 기다리기보다는 불확실성 속에서 확실성으로 방향을 틀고 나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책을 쓰는 일은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알아내는 과정과 같다.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오랜 시간 연구를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그 상황과 다를 바 없다. 꽃은 그 시기가 되어야만 피어난다. 내가 그동안 남의 눈치를 보며 휘청대고 있었던 이유는 자연의 리듬을 잊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꽃은 저마다의 리듬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다시 들판으로 나가 토끼풀과 민들레, 질경이가 무성한 곳을 걷는다. 소로우가 “빵 부스러기를 모으는 개미”에 비유해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도 목표에만 집착하며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속도를 존중하고, 글이 무르익기를 기다릴 때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한 송이 꽃이 피어나기 위해 준비해 온 것처럼, 나 또한 평생을 준비해 왔고, 그 결과가 곧 나의 꽃이 될 것이다.
모든 꽃은 한날한시에 피지 않는다. 각자의 때에, 각자의 리듬에 따라 피어난다. 나의 꽃도 그럴 것이다. 나는 오늘도 숲에서 인생의 진리를 깨친다. 이러니 어찌 숲을 사랑하지 않고, 숲에 의지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나는 오늘도 숲에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