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은 나이 듦의 특혜가 아니다

나이가 들었음을 증명하는 행동들(100-39)

by 너라서러키 혜랑

아침에 분명히 열쇠를 여기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출근하려니 보이지 않는다. 냉장고를 열고도 내가 뭘 찾으려 했는지 기억나지 않아 한참을 서 있다가 문을 닫아버린다. 혹은 전화를 끊고는,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했더라?"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순간들. 이런 일이 요즘 더 자주 일어나지 않는가?


이런 경험은 나만의 일이 아니리라. 나이가 들어가며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왜 방 한가운데 서 있지?’, ‘방금 하려던 게 뭐였지?’ 이런 질문은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의 무게와 현재를 살아가는 복잡함이 얽혀 만든 흔적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처음엔 그것이 나이 듦의 자연스러운 일부라고 생각했다. ‘이제 늙어가는 걸 받아들여야지’라는 생각으로 무심히 넘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스스로를 낙인찍는 변명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이렇게 무능력해져 가는 건가?’라는 자기부정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건망증을 단순히 나이 듦의 부산물로 치부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허락된 방치와도 같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메모는 그 시작이었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돌아보고 내일의 할 일을 간단히 정리한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오늘의 계획을 점검하며 실천하는 것을 반복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잊어버림으로 인해해야 할 일을 놓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다.


또한, 작은 실천도 나의 건망증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 수납함마다 정해진 물건을 규칙적으로 정리하며, 사소한 것이라도 나만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렇게 작은 습관들이 쌓여 나를 건망증의 늪에서 구해준다.


나는 건망증과 싸운다. 그것은 나를 퇴보시키는 적이자, 내가 넘어야 할 허들이다. 메모와 정리라는 실천적 방법을 통해 나는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증명하고자 한다. 물론, 모든 것을 완벽히 기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변명을 멈추는 노력이다. 무능력한 노인, 무책임한 직업인이라는 꼬리표는 스스로 만들어낸 환영일 뿐이다.


이제 나는 나이 듦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더욱 당당한 어른으로, 더욱 멋스러운 노인으로 나아가기 위해 나는 두 배, 세 배 노력을 한다. 나이 듦을 부담으로 여기는 대신, 이 과정과 기꺼이 연애하기로 했다. 가슴 설레는 날들이다.


나이 듦은 끝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다. 잊어버림과 허둥댐도 결국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순간들이다. 나이 듦과 함께 성숙해지는 삶을 사랑하며, 오늘도 나는 나를 기억하고, 나를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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