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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eph Oct 24. 2020

첫 번째 정착, 그 사람

30대 직장인 자가마련기 - 정착에 이르기까지 #11


첫 번째 단계.


iBT 토플이 최소 85점을 넘어야 교환학생에 지원할 수 있었다. 나처럼 4-1학기에 교환학생을 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여러 변수를 고려하더라도 ㅡ지금의 휴학기간이 마지막 찬스였다. 토익 점수도 없는 마당에 토플이라니... 물어 물어 해커스 빨갱이, 파랭이 책을 구입했다. 휴학 중에 찾은 학교 도서관은 활기가 넘쳤다.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저마다의 공부 중이었다. 필리핀에서의 생활영어는 토플 시험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사실이 씁쓸했지만, 치열하게 무언가에 매진하는 전우들 사이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생전 처음 보는 영어단어를 외우는 것은 나름 뿌듯한 일이었다. 단기적이지만 목표가 생기니 활력이 차올랐다. 반면 한편으로 안 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자리했다. 문제집에 밑줄을 치며 생각했다. 나는 두 번의 시험이 큰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무래도 외워지지 않는 단어를 반복해 적으며 생각했다. 나는 시험운이 특별히 좋지도, 그렇다고 컨디션 난조로 평소 대비 죽을 쑤는 편도 아니다. 모의고사를 채점하며 생각했다. 만약 85점을 넘지 못한다면, 두 번 세 번의 응시는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도서관 자리를 정리하며 또 생각했다. 어쩌면 4-1학기는 한국에서 착실히 취업을 대비하며 인턴이라도 지원해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 단계.


어학연수를 갈 때처럼, 어느 학교에 지원할지 고민해야 한다. 우선 영어 이외의 언어는 구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원할 수 있는 국가는 한정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영미권은 모교에 납부하는 등록금 외에 추가 비용이 드는 케이스가 많았고,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해당 국가 언어를 모를 경우 일상생활이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 선배들의 교환학생 수기들을 보니 북유럽이 눈에 띄었다. 추가 학비가 없었고, 모든 전공수업은 영어로 수강 가능했으며, 국민들의 영어 구사능력이 좋은 편으로, 일상생활에서도 큰 지장이 없다고 했다. 특히 핀란드는 당시 한창 매스컴을 타던 선진 교육제도와 ‘휘바 휘바’ 하는 자일리톨껌 CF로 왠지 더욱 친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고민 끝에 가장 커리큘럼이 참신한 곳에 지원했다. 낮에는 자작나무 숲을 거닐고, 밤에는 오로라를 보고, 소규모 토론식 수업을 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핀란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높다던데, 나도 뭔가 달라져서 올 수 있을까? 휘바를 외치는 파란 눈의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아주 먼 나라. 여름이면 해가 지지 않고, 겨울이면 속눈썹까지 얼어버리는 얼음의 땅 핀란드 - 그곳에서 나의 미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세 번째 단계.


다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점검했다. 4-1학기를 핀란드에서 보내고 한국에 오면 바로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선배들처럼 토익도 봐야 하고, 졸업논문도 써야 하고, 수십 개의 입사지원서도 제출해야 한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할 수 있는 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고민이 되기도 했다. 6개월을 채워 아르바이트를 하면, 학자금 대출도 어느 정도 갚고, 교환학생 생활비 부담도 줄일 수 있었다. 다만 무작정 돈만 벌어서는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채우기 어려웠다. 나는 실패할 여유가 없었다. 당장의 돈보다는 확실한 취업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래, 사실 빠른 취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리고 이 취업을 위해서는, 아르바이트보다 그럴듯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눈을 돌리니 엄청나게 다양한 대학생 활동들이 있었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홍보대사부터, 각종 공모전, 봉사활동까지, 세상에 멀뚱하게 학교만 다닌 사람은 나밖에 없었나 할 정도로, 학교 밖은 활기차고 치열한 곳이었다. 나는 고심 끝에 모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학생기자단에 지원했다. 선발되면 6개월 동안 기업 관련 기사를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활동이었는데, 매월 활동비도 나오고 우수 활동자에게는 해외취재의 기회도 주어졌다. 학교 과제를 제외하고는 글을 써본지도 꽤나 오래되었지만, 나와 교수님을 제외하고 읽어 줄 사람이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이 묘한 동기 부여가 되었다.







축하합니다.


얼떨결에 나는 토플 점수도 제법 나오고, 지원한 학교에 합격도 하였으며, 기자단의 멤버가 되었다. 다양한 학교의, 다양한 재능을 지닌 친구들이 한 기수가 되었다. 누구는 영상을 잘 만들고, 누구는 사진을 잘 찍었다. 신박한 아이디어는 기본이고, 언변도 좋았다. 이래저래 끼가 있는 친구들에 비해 나는 마땅한 재능이 없는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을 애써 감췄다. 우리는 매달 강남역에 거대하게 자리 잡은 대기업 본사에서 아이템 회의를 했다. 높이 솟은 건물, 보안 검색대, 세련된 회의실, ID카드를 목에 건 왠지 모르게 스마트해 보이는 직원들은 위화감을 주기도 했지만, 자부심과 소속감을 주기도 했다. 우리는 직접 아이템을 기획할 뿐 아니라 섭외, 취재, 촬영, 편집까지 도맡아야 했는데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 OO의 학생 기자단이라며 명함을 내밀 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를 호의적으로 맞아줬다. 이상한 것은, 즐거운 활동임에도 내가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대기업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큰 빌딩에, 칸칸이 마련된 사무실에, 내 자리가 있었으면 - 하는 생각 말이다.


기자단 활동을 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취재 이외에도 만남의 자리는 많았다. 교환학생을 가기 2달 전쯤, 이전 기수 선배들과 교류를 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좋은 대기업에 다니거나, 사업을 하는 선배들이 자리해 인연이 닿은 후배들에게 남은 시간 동안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은지, 뭘 더 준비해야 하는지 현실적인 조언도 해줄 터였다. 어색한 친분을 쌓으며 몇몇의 선배들과 번호를 교환하고 집으로 오는 길이 낯설었다. 나도 그들처럼 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다못해 부모님에게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을까?


다음 날 아침, 한 선배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하루에 몇 번씩 톡이 오갔다. 선배는 친절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너 재밌는 친구구나, 하며 밥을 사주겠다는 자리에 흔쾌히 응했다. 약속 장소에 다다르니 선배가 멋쩍게 손을 들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오늘 너 만나려고 처음으로 누나랑 쇼핑했어. 요즘은 정장만 입으니까 옷이 없더라고. 이거 머리부터 발 끝까지 새로 산거야. 어제 미용실 가서 머리도 잘랐다구.’ 고작 여기에 나오려고 열심히 단장을 했다고 하지만, 선배는 꾸밈이 없는 사람이었다.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들을 담백하게 이야기했다. 술잔이 몇 잔 오가고, 밤도 깊었다. 이제 일어나야지 하는 차에 선배가 대뜸 물었다. ‘우리 한번 만나볼래?’ , ‘네? 아뇨. 안 될 것 같아요.’ , ‘아니, 너무 고민도 안 하고 거절이 빠른 거 아니야?’ , ‘아니에요. 고민했는데 안 될 것 같아요.’ , ‘왜? 내가 정말 마음에 안 들기라도 해?’ , ‘그건 아닌데요.’ , ‘그럼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말해줘.’ , ‘우선 저 두 달 뒤에 핀란드에 가요. 장거리 연애는 싫어요. 그리고 저 같은 집단에서 연애하는 것도 싫어요. 헤어지면 누구 한 사람은 결국 떠나야 하잖아요. 세 번째는 - 음, 저 최근에 썸 타는 사람 있어요.’


그는 되물었다.


‘썸? 그 사람 좋아하니?’ , ‘뭐, 그런 셈이죠.’ , ‘근데 왜 안 만나?’ , ‘말씀드렸잖아요. 저 두 달 뒤에 교환학생 간다구요.’ , ‘그래서 안 만나는 거야?’ , ‘네. 그 사람한테도 똑같이 말했어요.’ , ‘그럼 네 걱정거리 내가 다 해결해주면, 너 나 만날래?’ , ‘어떻게 해결할 건데요?’ ,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만나지 않는 거라면, 그건 서로 진짜 좋아하는 것도 아니니까 신경 쓸 것 없어. 그다음, 헤어질 걱정? 혹시나 만약에 나랑 네가 헤어지면 내가 여기 나갈게. 아무랑도 연락 안 해. 너 기자단 사람들 다 가져. 그리고 두 달 이따 출국한다구? 아직 한참 남았네. 두 달 동안 열심히 만나고,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그 거리, 시간 느껴지지 않게 내가 책임질게. 어때?’


‘......’


‘일단 한번 만나봐! 거 참, 너는 손해 볼 것 없다니까?’ 그 당시에 나는 그 선배가 대체 뭐가 그렇게 당당하고, 확신에 찼는지 알 수 없었다. 나를 얼마나 봤다고, 나를 얼마나 안다고 말이야.



그리고 내가 정말 예측하지 못했던 것은, 떠날 날만 세고 있는 나에게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해대는 이 선배가, 지금의 내 남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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