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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eph Nov 01. 2020

김 과장, 집 샀다며?

에필로그



2017년 가을. 남편이 말했다.


"어때? 이제 실감이 좀 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집을 산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대가 산산이 부서진 것 같은 기분이랄까. 좁아터진 부동산에 우리 부부와 매도인 부부. 머리가 벗어지고 말을 떠듬거리는 상대편 중개사와, 손이 빠르고 말은 그것보다 더 빠른 우리 측 중개사가 한데 모여 서류를 작성했다. 너도 나도 집을 사려고 하는지 팔려고 하는지 부동산 전화기는 쉴 새 없이 울려댔고, 우리는 무언가 쫓기는 기분으로 서류를 훑었다. 주요 내용들을 빠르게 읽어 내려가고, 장마다 우리의 도장이 찍혔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중국 출장길에서 뜬금없이 연락해 남편의 이름 한자를 무엇을 쓰느냐고 묻더니만 제법 그럴싸하게 파온 커플 옥도장이, 이제야 빛을 발하듯 거금의 서류에 찍혀댔다. 기분을 좀처럼 알 수 없었다. 내 이름이 올라간 내 집, 내가 결심하기 전까진 나갈 필요가 없는 내 집, 내가 재산세를 내고, 내 맘대로 고치고 내 멋대로 살아갈 내 집. 아직 실입주를 하기엔 자금이 부족해 세를 끼고 샀지만, 그래도 내 집이다. 2년의 시간을 벌었다.



당장에 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이 서울 하늘 아래 나의 집이 있다는 것이 든든했다. 지금 사는 전셋집에서도 안락한 삶을 살고 있지만,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미국에 있는 집주인 대신, 그의 자매인 대리인에게 연락을 하곤 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의 주인과 그의 대리인. 따뜻한 양반들이지만 알 수 없는 ‘을’의 입장을 느끼곤 했다. 남편과 집에 관련된 대화할 때도 집주인이~ 집주인 께서라는 말을 종종 꺼내야 했고, 마치 현대판 노비가 주인님을 칭한 듯 대하는 그 호칭을 스스럼없이 쓰는 나 자신에 깜짝 놀라곤 했다. 그러던 나에게도 세입자가 생기고, 나는 집주인이 되었다.


주인이라고 해봤자 사실상은 빛 좋은 개살구다. 내가 매매한 집의 70%는 전세 세입자의 보증금이다. 이 보증금의 일부는 세입자의 재산이고, 일부는 은행의 것일 테다. 나머지 30%는 우리 부부의 것이다. 주인은 우리인데, 차지한 지분은 더 적어 아이러니하다. 그 30%의 절반은 급히 융통한 마이너스 통장에서 나온 것이니, 실상 계산을 해 본다면 집 전체의 15% 정도만이 온전한 우리 부부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집은 공동명의이니 나의 몫을 세심히 계산한다면 약 7.5%. 정도가 이 집에서 내가 행사할 수 있는 재산권 정도인 것. 지인들의 축하가 이어졌다. 젊은 부부가 살뜰히 모아 일찍 집을 마련했으니, 축하할 일이었다. 


2년 동안 마이너스 통장을 꺼뜨리고, 운이 좋아 집 값이 올라준다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반환하고 바로 입주할 수 있을 것이다. 계획이 틀어지면 다시 2년의 시간을 벌고, 또 여의치 않으면 2년을 기다려야겠지. 우리가 산 집은 전세로 거주하고 있는 집과 같은 단지, 다른 동의 더 큰 평수다. 단지에 쓰레기라도 버리러 나가면 남편과 나는 손을 잡고, 등기 상 실소유주는 우리 부부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이들이 살고 있으며, 지분으로 따지면 은행이 가장 크게 차지하고 있는 그 집을 올려다보았다. 



내 집 마련이라고? 매매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저 집에 내 발 뻗고 살 수 있어야, 실감이 날 것이다. 현관 안으로 들어갈 순 없지만, 멀리서 바라볼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목표가 생겼다. 2019년에는, 우리 집에서 살자고. 



지금 이 사람과 함께, 진짜 우리 집에 살아보자고.











정착에 이르기까지 2부는, 핀란드 교환학생 생활부터 취업, 결혼, 그리고 집 매매에 이르기까지 보다 자발적인 유랑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브런치에서 계속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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