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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eph Oct 06. 2020

할머니댁 본채

30대 직장인 자가마련기 - 정착에 이르기까지  #4

30대 직장인 자가마련기 - 정착에 이르기까지  #4

우리는 또다시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할머니와 이모할머니의 가족과 같은 집에서 살게 되었다. 갑자기 생긴 빚을 탕감하느라, 김 사장님 내외는 더 이상 '집주인'에게 줄 수 있는 돈이 없었다. 할머니는 이모할머니와 큰 집에 살았고, 남는 방에 우리 가족을 들였다. 가세가 기울었는데, 대궐 같은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분리된 공간 덕에 우리는 분수를 잊지 않고 살 수 있었다. 할머니와 이모할머니는 거주를 같이 했는데, 특이한 공생 관계라 할 만했다. 우선 그 집은 이모할머니의 명의였으나, 할머니의 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공동명의인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성북구 언저리에 그마만한 단독주택을 짓는 데 있어 우리 할머니의 공도 꽤 컸다는 정도.



그 집은, 아주 특별했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스킵플로어 구조로 지어진 단독 주택. 담장은 높게 솟았고, 가시 돋친 장미 넝쿨이 담장 위로 자랐다. 크고 무거운 대문 옆으로는 자동으로 열리는 차고 문이 있었다. 거대한 문 뒤로는, 아름다운 조경이 꾸며져 있었는데,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작은 연못에는 잉어가 헤엄을 치고, 그 뒤로는 작은 오두막 정자가 있었다. 일전엔 손님이 오면 연못을 바라보며 차를 즐기기도 하였으나, 당시 그 오두막 위에는 먼지 쌓인 드럼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나의 당숙이 몇 번 치다 지겨워 방치한 그 짐덩이. 겨우 지붕만 있는 오두막에 우두커니 앉아 '내 집은 여기가 아니에요'라고 웅얼거리는 꼴이 꼭 피치 못해 이 집에 들어온 우리 가족 같았다. 높이 솟은 대문 뒤로는 현관으로 향하는 긴 보행로가 있었는데, 디딤돌 양 옆으로는 동그랗게 모양을 내어 깎은 진달래, 철쭉나무들이 길을 밝혔다. 보행로를 따라 걸으면 돌계단이 나왔고, 그 돌계단을 반 층 정도 올라야 현관에 다 달았다.


1.5층 정도 되는 높이의 공간. 현관 중문을 열면, 가장 왼쪽에 응접실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되었을까? 나는 '응접실'의 의미를 어렴풋이 배웠다. 손님을 맞는 곳. 그곳의 외벽은 통유리로, 아름다운 정원과 연못이 내려다 보였다. 실제 장작을 태울 수 있는 벽난로도 준비되어 있다. 실제로 집을 얼마나 덥힐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존재만으로 특별한 분위기를 내는 것만은 분명했다. 보드라운 가죽의 소파, 거대한 카펫. 응접실을 나와 다시 반 층을 오르는 계단 옆에, 손님용 화장실이 있었다. 그간의 화장실과는 확연히 다르게 그곳은 어두웠다. 자줏빛 세면기와 변기. 그리고 말린 억새 따위로 장식이 된 그 공간은 이모할머니의 취향대로 꾸며졌는데, 내가 느끼기엔 아주 스산하고, 공포심을 자아냈다.


반 층을 오르면, 2층. 두 할머니의 방과 주방이 위치한 곳이다. 이모할머니의 방은 개인 욕실이 딸려있고, 가장 안쪽에 있었는데 그녀의 고매한 취향과, 종교적 신념이 잘 드러난 곳이었다. 열렬한 기독교 신자였던 할머니와는 대조적으로, 이모할머니는 불가의 사람이었다. 때때로 불경을 외고, 주역 같은 것을 공부했다. 우리가 그 집에 들어갈 무렵에는 가까운 이들의 사주팔자까지 보기에 이르렀는데 석가의 가르침과는 큰 상관이 없는 것 같았으나, 나는 꽤 흥미가 있었다.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사후세계보다는, 당장 나의 20대, 30대에는 어떤 삶이 있을지, 남은 생에 무엇을 하고 살 팔자인지 듣는 것은 그저 어린 나이에도 재미가 있는 것이었다. '너는 水의 기질을 타고났고, 사주에 官이 있어 감투를 쓰거나, 요직에 올라갈 거란다.'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었다.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을 참이면 할머니가 나타나 나를 낚아챘다 '애한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어! 하나님이 알아서 쓰실 아이야!' 이러나저러나 두 할머니의 말은 아직도 증명되진 않았다. 금일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기껏해야 내가 쓴 감투는 ‘김 과장님’에 그쳤기 때문이다.


2층 계단 왼쪽으로 기다란 주방이 있었다. 주방의 가장 안 쪽 끝에는 문이 하나 있고, 그 문은 뒷마당으로 이어졌다. 뒷마당에는 딸기며, 작은 상추며, 조그마한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고, 장독대도 여럿 있었다. 이모할머니는 대단한 기질의 소유자였는데, 사업적인 수완이 훌륭했을 뿐 아니라, 용모도 아름답고, 음식 솜씨마저 훌륭했다. 장독 안에는 겨울 김장김치는 물론이거니와 빨간 물김치, 하얀 물김치 등도 찰랑였다. 뒷마당으로 향하는 문 반대쪽으로, 가족의 식탁이 있었다. 멋들어진 반찬들이 가득했음에도, 그 식탁에서 밥을 먹을 때면 나는 항상 목 끝에 무언가가 걸린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우리 집’이 아닌 곳에서 얻어먹는 밥이라는, 그런 자격지심이 마지막 한 숟갈에 얹어진 것이었다. 마치 얼린 돼지고기를 대충 삶아낸 수육의 고약한 잡내처럼, 어떤 요리비결로도 제거할 수 없는 그 자격지심을, 그곳에서 먹는 매 끼니마다 삼켰다.


2층에서 반층을 더 올라가면 세모 천장의 다락과, 화장실이 한 개 있었다. 꼭대기 층도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세모 지붕형태의 천장을 지녔기에, 나는 그곳을 다락이라고 생각했다. 밖에서 이 집을 보면, 외국에서 볼법한 세모 지붕과 창문이 눈에 띄는데, 그곳이 바로 이 방이다. 밖에서 보이는 운치와는 다르게 내부는 처참했다. 주로 도매시장에서 사용되는 아동복 샘플과 부자재, 손님에게 보여선 안 되는 잡동사니들이 이 방의 주인이다. 처음에 우리 할머니는 이 방을 치워 나에게 주려 하였는데, 그러자니 이 짐들을 수납할 곳도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철 지나 상품가치가 없는 의류 재고가 머무는 방. 이 방의 주인은 또또 단추와 레이스, 라벨지 뭉치들이다.


다락에서 반층을 더 오르면 3층이다. 3층에는 이모할머니의 아들과 딸, 나에게는 5촌 당숙의 방이 각 한 개씩, 화장실이 하나, 그리고 서재를 겸한 거실이 있다. 당숙들은 아빠의 사촌 동생이었는데, 나이 또래가 나와 더 가까웠으므로 당시에는 언니, 오빠 하며 따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실 서재에는 책들이 많이 있었다. 당숙들이 나만할 때 보았던 동화, 소설, 전집부터 조금은 어려운 책들까지. 오빠는 군대에 갔고, 언니는 고등학생이라 대부분의 오후 일과를 학원에서 보냈으므로 나는 3층 서재에서 홀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는 어린이는 완전무결한 것이다. 왜 책을 읽느냐거나, 그만 좀 하라던가 하는 잔소리가 나올 법이 없다. 그저 그 행위를 하는 어린이를 그 자체로 존중해 주고, 별다른 말을 걸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그것은 보이지 않는 보호막에 둘러싸인 것과 같은 효과를 내었다. 거실 서재에는 연결된 테라스가 있었다. 어른들의 운치를 위한 공간이었지만, 그들은 3층까지 올라오는 수고보다는 응접실 소파에 몸을 기대는 편을 택했다. 책을 한 권 들고 3층 테라스에 앉으면,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이 집을 갖고 싶기도 했고, 도망치고 싶기도 했다.


방해받고 싶지 않았지만 구원받고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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