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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eph Oct 06. 2020

할머니댁 별채

30대 직장인 자가마련기 - 정착에 이르기까지 #5


우리는 특별한 집 가장 아래층, 별채에 머물렀다.


별채. 별채는 나쁘지 않은 표현이다. 별도로 마련된 공간. 집주인과 분리된 삶을 살 수 있는 우리 가족만의 것이다. 가족의 범위라는 것이 선을 긋기에 애매한데, 하나의 대문 안에 피를 나눈 친족이 함께 살고 있으니 우리는 큰 대가족이기도 했고, 현관이 다른 별채에 머물고 있으니 군식구이기도 했다. 보는 이에게 궁금증과 놀라움을 주는 돌계단 위 본채와는 다르게 별채는 아주 소박했는데, 분리된 주방과 화장실, 그리고 공용 공간 없이 나뉜 2개의 방이 전부였다. 가뜩이나 좁은 이 공간을 더 암울하게 만든 것은 바로 천장의 높이다. 당시 나는 키가 완전히 자라지 않았음에도 천장이 낮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이 집은 경사진 땅에 맞추기 위해 반 층씩 공간을 할애하는 스킵플로어 구조를 갖추게 된 것인데, 응접실 밑에 위치한 별채가 제 높이를 낮춰 본채의 균형을 맞췄다. 때문에 이쪽 편에선 1층 별채와 앞마당이 맞닿아 있고, 반대편에선 2층 주방과 뒷마당이 닿아있었다. 이 낮은 천장은 김 사장님과, 사모님을 아주 무겁게 짓눌렀다. 


골프연습장을 정리한 후, 아빠는 다시 할머니를 도와, 아동복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것은 마치 이 집에 들어와 사는 대가와도 같았다. 경기도로 이사 가기 전, 아빠는 아동복 공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할머니와 이모할머니 가게에서 판매할 옷들을 만들어 냈다. 공장에는 미싱을 하는 언니들이 여럿, 재단하는 삼촌이 한 명, 그리고 언니들이 묵는 숙소 방도 딸려 있었다. 미싱 하는 언니 중에는 등이 굽고, 어깨 뒤로 큰 혹이 난 언니가 있었는데, 처음엔 그 낯선 모습이 무서워 공장에 가는 것이 싫었다. 엄마한테 ‘저 언니는 등이 왜 저래?’라고 물으면 엄마는 ‘언니가 아파서 그런 거야. 그런 거 물어보면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꼽추 언니는 무뚝뚝한 표정과 달리 손이 빠르고, 입담도 좋은 공장의 에이스였다. 언니가 이야기를 꺼낼 때면, 공장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까르르, 웃곤 했다. 나에게도 가끔씩 '너 할래?' 하면서 조그만 것들을 건네곤 했는데, 쪼가리 천으로 만든 헝겊인형이나, 파우치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수줍게 그런 것들을 모았다가, 엄마에게 내보이곤 했다. 엄마는 언니가 손재주가 정말 좋다며, 공장에 오래 다녔으면 좋겠다고 했다. 명절이면 공장 언니들에게 고기며, 선물들을 들려 보냈는데 엄마는 꼽추 언니 물건은 나중에 빼었다가 항상 가장 좋은 것을 주곤 했다. 아빠의 공장은 할머니 자매의 사업이 번창하면서 함께 몸집을 키워갔지만, 그것은 아빠가 선택한 일이었다기보다는 맡겨진 가업과도 같았다. 이유도 모를 만큼 갑작스럽게 그 가업을 정리하고 성공과 실패를 잇따라 맛본 뒤, 아빠는 다시 조그마한 공장을 차렸다. 상황은 우리가 서울을 떠나기 전과 아주 달랐다. 꼽추 언니도 이미 다른 공장에 취직한 지 오래였다. 아동복 시장은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중국 공장에서 값싸게 만들어 온 옷들이 도매시장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아빠가 새로 일군 작은 공장은 이내 먼지가 쌓여갔다.








멈춰있는 공장에, 사람이 여럿 있을 필요가 없었다. 엄마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생각해보니, 당시 엄마의 나이가 지금의 나와 큰 차이 나지 않는다. 서른여섯, 일곱쯤 되었을까? 갑작스럽게 돈을 벌어야 하는 사모님 - 엄마의 고향은 강원도 산골이다.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천도리. 엄마 어린 시절엔 외삼촌과 개구리를 잡아먹은 적도 있다고 들었다. 엄마는 천도리에서 썩히기엔 아까울 만큼 총명했던지라, 군인이었던 외할아버지는 엄마를 춘천에 제1 고등학교(현 강원사대부고)로 유학 보냈다. 그곳은 당시 군자녀들이 많이 다니던 곳으로, 엄마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천도리를 떠나 기숙사 생활을 했다. 이후에는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며, 강원도를 영영 떠났다. 


경희호텔경영전문대학. 지금의 경희대학교 관광대학의 전신이다. 엄마는 그곳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 당시 실습으로 가든호텔, 플라자호텔 등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졸업하는 막 학기에 엄마는 신라호텔에 지원했다. 최종 면접에는,  故 이병철 회장이 면접관으로 들어왔었다고. 그는 엄마의 초롱초롱한 눈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엄마는 그 일화를 마치 훈장처럼 기억하고 있다. 직장을 그만둔 뒤 팍팍한 삶 속에서 가끔씩 그 언젠가 불특정 한 옛날을 회상할 때면, 엄마는 유독 그 날의 면접장으로 돌아가곤 했다. 엄마 그 자체로서 가치를 판단해 준 사람에게,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며. 


신라호텔에 합격 후 엄마는 영어와 일본어를 배웠고, 며칠은 프런트에서, 며칠은 백오피스에서 근무했다. 근사한 분위기, 배경을 채우는 음악, 격식 있는 손님들이 주를 이뤘을 것이다. 총명한 눈빛에 똑 부러지는 아가씨는, 첫 직장에서 여러 꿈을 꾸었다. 화려한 도시의 삶과 사회생활. 그러던 중 엄마는 아빠를 만났다. 그것은 처음은 아니었다. 엄마와 아빠는 천도리에서 처음 만났다. 엄마가 국민학생 무렵, 할머니와 아빠가 이사를 왔고, 두어해 살다 아빠는 고향인 남해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나 서울에서, 엄마와 아빠는 우연처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꽤 벌이가 좋던 공장의 젊은 사장님이었던 아빠는, 엄마가 근무하는 호텔 커피숍에서 엄마를 오랜 시간 기다렸다고.


그 후로 다시 십여 년이 지나, 엄마는 또 일을 해야 했지만, 호텔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그곳은 이미 다른 리그였다. 그간의 경력 단절이 10년을 넘었다. 동기 동창 중 여자들은 대부분 결혼을 하여 아이를 기르고 있었고, 남자들은 더럿 지배인이 되거나, 동종 업계에 근무하고 있었다. 주변에 보험이나, 정수기 판매를 하는 친구들이 엄마를 꼬드겼다. 아줌마들도 쉽게 할 수 있고, 하는 만큼 벌이도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는 못하는 사람이다. 관심 없는 사람을 붙잡고 이거 사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하는 소리는, 차마 입밖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엄마는 드문드문 기억나는 영어와 일본어를 붙잡고 방문교사를 시작했다. 







엄마는 저녁 시간 이후에 귀가하는 일이 잦았다. 아빠는 새벽 원단시장을 나가느라 밤낮이 영 달랐다. 때문에 나는 홀로 본채에 올라가 할머니, 이모할머니 식구들과 저녁을 먹어야 했다. 날이 갈수록 그 식사 자리가 영 고역처럼 느껴졌기에, 나는 점점 핑계를 대며 저녁을 걸렀다. 8시, 때론 9시까지 엄마가 오길 기다렸다가 함께 늦은 저녁을 먹었다. 엄마는 '할머니랑 먹지 그랬어. 늦게까지 배고플 텐데' 하면서도 햄 하나라도 더 구워 상에 올렸다. 날이 지나며 나는 밥솥에 밥도 하고, 본채에서 얻어 온 밑반찬도 몇 통 들고 별채에 내려다 놨다. 누구도 나에게 눈치를 주거나, 내 집 네 집 선을 그어댄 것은 아니었지만 - 그냥 내 마음은, 별채 아래 엄마 곁이 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상을 치우고 나서 엄마가 대뜸 노래방에 가지 않겠냐는 것이다. 웬 노래방. 딱히 취미도 없지만 혼자 있을 것도 없어 엄마를 따라나섰다. 동네 어귀 손님 없는 노래방, 침침한 작은 방에 들어가자 녹음된 박수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는 머쓱한 듯 책을 뒤적거리다, 이내 몇 곡을 내리 불렀다. 하나같이 느리고 쿵작 이는 노래들. 엄마의 애창곡은 김수희의 '애모'였다. 


'그대 등 뒤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드는데-'


채 한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나와서, 우리는 집 앞을 걸었다. 엄마는 말이 없었다. 높은 담장, 큰 대문을 지나 디딤돌 길을 걸었다. 집 안에 들었다. 곧 할머니가 별채 문을 두드렸다. '얘, 어디 갔었니. 큰일 났다 얘-' , ' 애랑 잠깐 산책하느라, 무슨 일이세요?', '아이고... 춘천에서 연락이 왔어... 사돈이..' , 엄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그 날, 외할머니의 부고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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