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너라서 더 소중해!
토마스 홀, <사랑의 어려움>, 1870
운다. 계속 운다. 끝없이 운다. 울어야 하는 이유는 많다. 모로반사, 이앓이, 배고프거나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다. 그래서 항상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한다. 울면 바로 대처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잘 때는 특히 더 가까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놀랄 때, 쓰다듬어 줄 수 있다. 그러면 곧 아빠의 손길에 따라 잠이 든다. 그런 점에서 나의 요즘 모습은 토머스 홀이 그린 <사랑의 어려움> 속 아빠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금만 바꿔 패러디하자면, 한 손에는 분유, 목에는 다윤이를 탄 모습으로 묘사할 수 있다. 그림 속 가족은 다둥이다. 나보다 어려움이 몇 배는 될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자녀들 틈 속에서도 든든한 고목처럼 서 있다. 그는 사랑꾼이 분명하다. 힘들면서도 아내의 손을 잡고 있지 않은가? 곧 넷째가 생길 것 같은 분위기다.
나는 그처럼 힘들진 않지만, 초보라는 것은 언제나 힘들다. 그러므로 나의 힘듦을 그는 이해해 줄 것이다. 그림 속 아빠처럼, 항상 다윤이와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기가 다치지 않고 잘 큰다.
하지만 성인은 다르다. 성인끼리의 가장 좋은 거리가 45cm라고 한다. 더 안으로 들어오면 불쾌해진고 멀어지면 공감하기 어렵다. 45cm의 거리 두기는 어른들에게 필요한 안전지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거리는 어쩌면 행성의 공전궤도와 비슷해 보인다. 사람을 행성에 비유하자면, 45cm의 거리를 유지해야 공전할 수 있다.
그러나 신생아에 가까울수록 부모와 아기 간의 거리는 가까우면 동시에 공존하며 공전할 수 있다. 달이 그렇다. 달은 매년 3m씩 지구와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수억 년 뒷면 지구와 완전히 멀어져, 우리는 더 만날 수 없다고 한다. 이 말은 처음 달이 만들어졌을 때는 지구와 매우 가까웠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윤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지금은 가장 가까이에 있어야 할 때다. 하지만 조금만 크면, 나와 멀어져 갈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45cm의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사이가 올 것이다. 다윤이가 그만큼 홀로 공전할 수 있는 행성이 되었다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조금씩, 그런 순간들을 느낀다. 신생아 때는 내 품 안에 있어야 살 수 있었다. 100일, 200일, 돌이 지나면서 그녀는 조금씩 앉고 일어서며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가고 있다. 도리어 내가 안으려 하면, 귀찮아하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조그마한 녀석이 나와 거리를 둔다면, 서운해할 것이 아니라 흐뭇해야 한다. 내가 돌아야 함께 돌 수 있는 위성이 아닌, 자신의 우주를 가진 행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나와 더 가까이 있어야 하는 행성이다. 이 거리가 조금씩, 조금씩 멀어질 때 겸허하게 이 글을 다시 보고, 받아들이려 한다. 이렇게 귀여운 다윤이도 어느 순간 사춘기가 올 것이다. 에드윈 랜시어가 그린 <말썽꾸러기>처럼 말이다. 소녀는 무엇인가 잘 못 했는지 눈치만 본다. 부모님께 혼이 단단히 났나 보다. 다윤이도 말썽꾸러기가 되면 그녀가 커가고 있다는 신호일 것이다.
에드윈 헨리 랜시어, <말썽꾸러기>, 1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