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너라서 더 소중해!
칼 라르손, <과자를 들고 있는 브리타>, 1894.
조급해질 때가 있다.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 때다. 다윤이의 배밀이가 조금 늦다고 생각했다. 5~7개월이면 배밀이를 해야 하는데, 아직 앉기만 하고 기어 다니지 못했다. 걱정했고, 문제가 있나 마음을 졸였다. 혹시나 안짱다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면 망상이었다. 5개월 뒤, 다윤이는 왜 그런 걱정을 하고 있냐는 듯 나를 바라보며 서 있다. 조금 있으면 우리 집의 고양이들은 다윤이를 피해 도망 다녀야 할 판이다.
<과자를 들고 있는 브리타>는 칼 라르손이 그렸다. 유독, 라르손의 자녀 중 브리타와 고양이가 함께 있는 그림들이 많다. 그의 다섯 번째 자녀였던 브리타가 고양이처럼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나 보다. 나는 이 그림을 좋아해서, 거실에 걸어둔다. 다윤이와 산이가 같이 있는 모습 같아서이다.
브리타처럼 다윤이는 곧잘 서있다. 이제는 한 손에 장난감을 들고 서있을 정도가 되었다. 장족의 발전이다. ‘언제 땅에 닿지?’라고 생각했던 거대한 소서는 이제 다윤이의 몸에 맞지 않지도 않는다. 다윤이가 이처럼 순식간에 커버리는 것을 보면서, 걱정을 ‘선불’로 하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생각해보면 걱정이란 이름에 가려졌던 미션들은 하나씩 다 해결하며 살아왔다. 알지 못한 길을 가야 한다는 두려움, 나의 상황 때문에 위축되었을 뿐이다. 다윤이의 모습을 보면, 왜 걱정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잘 해결되었다. 그렇게 다윤이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성장해 나갈 것이다.
불가능해 보였던 배밀이, 서기는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 버렸듯이 말이다. 이제는 뛰고 정확한 발음으로 목청을 높여 나를 부를 것이다.
“아빠, 나 놀아줘!”
내년 이맘때쯤? 나는 그녀의 성장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때, 서 있는 다윤이를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다윤이 엄마, 이모가 보인다.
그렇다! 세상은 홀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산적하지만, 그 뒤에는 함께 하는 이들이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홀로서기가 필요하지만, 혼자가 아니다. 소소해서 더 행복할 우리들의 앞날을 바라본다.
다윤이, 우리 가족 모두!
그리고
지금까지 나의 소소한 순간을 공유한 당신도!
칼 라르손, <큰 자작나무 아래에서의 아침식사>, 1895. - 두면 화면으로 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