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무엇을 그린 것이지?’라는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세요. 자세히 보면 어떤 감정들이 생겨날거예요.
녹색과 노란색이 화면을 각각 나눠 차지하고 있어 차분한 느낌이 들어요. 고요한 분위기가 느껴지고요.
녹색과 노란색의 경계, 그 경계에 보이는 하얀색이 저는 마음에 걸려요. 화가는 녹색에 하얀색 테두리를 칠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이 그림은 마크 로스코의 「무제」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마크 로스코는 색면회화의 대표작가로 뽑힙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는 이러한 호칭을 거부해요. 그는 인간의 본연적 감성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비극, 황홀경, 운명 같은 근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어요. 무엇을 느끼게 할 것인가를 중시했던 것이죠.
그래서 제목도 「무제」였던 거군요. 각자 느끼는 감정이 다르니, 제목이 없을 수 밖에요. 그런데 이 그림이 고양이 신과 어떤 연관이 있나요?
이 그림을 보면 다양한 생각이 들어요. 그것은 극단적인 녹색과 노랑, 그리고 하얀색의 경계가 어우러지며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이죠.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색깔들이 밀집되어 있을 때, 인간은 감정적이 되죠.만약 이런 극단적인 색깔로 가득찬 자연환경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까요? 저는 이 그림을 볼 때 마다 항상 생각나는 곳이 있어요. 테블릿에 속 위성사진을 한번 보시겠어요?
마크 로스코의 그림처럼 녹색과 노랑이 극단적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바로 나일강과 그 주변 일대에요. 여기서 이집트 문명이 탄생했죠. 이집트는 광활한 사하라 사막과 푸른 나일강이 만나 이뤄진 거대한 문명이었습니다. 이집트인들에게 있어 황량한 노란색의 사막과 나일강을 낀 풍요로운 녹색의 농토는 이집트인들에게 정서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노란색의 황량한 노란색의 사막과 푸른 나일강의 접점에서 이집트 문명이 태어났군요.
그들에게 있어, 죽음의 공간으로 가득 찬 사막과 곡식이 무르익어 가는 녹색의 농토는 참 대비되는 공간의 공존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이집트인들 이런 자연환경에 살았기 때문에 감성적일 수 밖에 없겠네요. 자연스럽게 그들의 예술과 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고요.
맞아요. 이집트인들은 공존하는 두 세계 즉, 죽음의 사막과 생명의 농토 사이에서 살아가는 경계인들이었어요. 또한 자신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농토를 제공한 나일강을 감사하면서도 두려워했어요. 나일강의 홍수는 모든 것을 쓸어버림과 동시에 풍요로운 흙을 이집트인들에게 제공했기 때문이에요. 이집트인에게 있어 자연환경은 그 자체로 경이의 대상이었을 거예요. 자연스럽게 자연을 신으로 섬겼죠.
아! 그 자연의 신 중이 바로 우리 고양이가 되는 거군요. 그런데 왜 이집트인들은 우리 고양이를 신으로 만든 거죠?
앞서 말씀드렸듯이, 사람은 자신이 ‘믿음’을 가지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어요. 위기를 극복하거나 힘을 결집시킬 수도 있죠. 그러한 관점에서 고양이 신 바스테트 청동상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청동상은 기원전 7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바스테트라고 하는 신의 얼굴이 고양이로 묘사되어 있어요.
바스테트 신의 밑에 귀여운 새끼 고양이들이 보여요. 바스테트 신의 자식들인가 봐요.
잘 보셨습니다. 바로 이 점이 고양이가 신이 된 지점입니다. 인간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 그리고 바라는 것. 고양이는 인간이 원했던 이 것을 가지고 있었어요.
우리 고양이들은 일년에 3번 정도 임신을 해요. 한번에 6마리까지 낳기도 하죠. 번식력이 강한 동물이라 할 수 있어요. 우리의 이런 모습 때문에 인간들은 고양이 신을 숭배한 것일 수 있겠네요.
고양이는 다산의 동물이죠. 농경시대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어요.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인구가 많아야 했죠. 그러한 면에서 고양이의 다산은 상당히 인간이 부러워 할 만한 능력 중 하나였어요. 고양이를 신으로 섬길 정도로 말이에요. 이집트 인들이 바스테트를 얼마나 숭배했으면,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바스테트 여신 축제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이때, 70만명에 달하는 순례자들이 4~5월 바스테트 여신 숭배의 중심지 나일강 델타 지역의 부바스티스에 모여들었다고 해요. 고양이 신 바스테트에 대한 믿음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고양이의 다산 능력을 인간들이 부러워했고, 신으로 섬겼다는 거군요. 그런데 그것 하나를 가지고 신으로 섬긴다는 것이 이해가 안가요. 또 다른 이유는 없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