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프로메테우스의 불, 인류의 미래를 밝히다.

프로메테우스의 '불'과 환웅의 '홍익인간'

by 도슨트 춘쌤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보이는 남자. 그의 손에는 불이 들어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하늘과 맞닿아있다. 하늘의 누군가를 피해 도망가는 것일까? 그는 왜 불을 들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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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 얀 코시에르


미리 아는 자. 그는 바로 그리스-로마 신화의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이름 속 의미다. 프로메테우스는 신화 상에서 그는 인간을 만든 창조주로 설정되어 있다. 자신이 만든 창조물 인간을 보면서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부모의 마음으로, 그는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을 고민했다. 그리고 최고의 선물을 주었다. 바로 제우스가 가지고 있었던 불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쳤고, 인간은 이 불을 가지고 지구를 문명을 일궈냈다.


그렇다면 왜 프로메테우스는 그 많은 그것 중에서 하필 불을 선물로 준 것일까? 그것도 제우스라고 하는 최고의 신이 소유한 불을 훔쳐서 말이다.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한 번도 아닌 여러 번에 걸쳐서 왜 그는 인간에게 불을 주려고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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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제우스의 불을 훔치는 프로메테우스


인간의 역사에서 불이 가진 의미를 살펴보면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불은 약 100만 년 전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은 동물보다 육체적으로 약하다. 육체적으로 나약한 인간에게 불은 지구 생명체의 위계질서를 바꿀 수 있는 엄청난 무기였다. 인간이 불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자연의 모든 생명체를 압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불을 발견한 인간은 맹수의 위협을 이겨낼 수 있었고, 식습관도 변화했다. 고기를 익혀 먹게 되면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섭취하고 사용할 수 있었다. 그뿐인가? 불을 통해 토기를 만들어, 생산물을 보관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는 금속을 제련하여 생필품과 무기를 만들 수 있었다. 어쩌면 불은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되는 첫 번째 ‘발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역사는 불의 ‘발견’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다.


이처럼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당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최고의 맞춤형 선물이었다. 역시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이름처럼 인간이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 아는 자였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제우스의 분노와 맞바꾼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분노한 제우스는 오케아노스 강 끝의 카우카소스 산 암벽에 프로메테우스를 쇠사슬로 묶었다. 그리고 매일 독수리가 간을 쪼아 먹는 형벌을 내렸다. 매일 고통은 반복되었다. 독수리가 쪼았던 간은 다음 날 다시 회복되었다. 불을 인간에게 준 대가였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든다. 프로메테우스의 이름은 ‘미리 아는 자’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행동에 따른 형벌을 알지 못했을까? 왜 그는 형벌을 당할 것을 알았음에도 인간에게 불을 주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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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모로, 프로메테우스, 1868>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 모로. 그는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프로메테우스의 형벌을 소재로 한 그림도 그렸다. 상징주의는 상징성을 결합한 시각적 회화 양식을 말한다. 모로는 이 그림에서 프로메테우스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바로 ‘신념’이다.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은 형벌을 받는 자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도리어 프로메테우스 발밑에는 독수리가 깔려 죽어있고, 간을 파먹는 독수리는 프로메테우스의 눈치를 보고 있다. 또한, 프로메테우스 머리 위 ‘불’은 결연한 의지와 신념을 잘 보여준다. 그가 가졌던 신념. 그것은 바로 ‘가진 자(제우스)의 것을 가지지 못한 자(인간)’에게 나눠주어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본다면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고통을 알면서도 인간을 위해 ‘희생(sacrifice)’한 것임을 알 수 있다. sacrifice는 sacra(성스러운 제의)와 facere(실행하다)의 라틴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신이다. 그런 그가 희생 제물이 되어 기득권을 포기하는 실천을 했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에는 ‘희생’의 정신이 담겨있는 상징물인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 인간에게 불을 주었고, 인간은 불을 통해 번영했다. 결국,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려고 노력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프로메테우스의 행동과 신념은 우리 역사 속 ‘홍익인간’ 정신과 상당히 닮아있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庶子)인 환웅(桓雄)이 천하(天下)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白)을 내려다보니 인간(人間)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세 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악(善惡) 등 무릇 인간의 삼백육십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삼국유사 제1 기이 고조선 왕검 조선>


천신 환인의 아들 환웅은 ‘홍익인간(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을 위해 세상에 내려온다. 그가 내려올 때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인간의 모든 일을 주관하며 다스릴 수 있는 존재들과 함께 대동했다. 환웅과 함께 내려온 존재들이 우리 역사 속의 ‘불’이라고 할 수 있다. 풍백, 우사, 운사는 농경사회에 필요한 자연요소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인간의 번영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홍익인간을 바탕으로 환웅은 웅녀와 결합해 단군을 낳았고, 단군은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삼국유사』에서는 전하고 있다.


‘홍익인간’은 상당히 특이한 슬로건이다. 신석기 혁명 이래로 인간은 구석기시대와 비교할 수 없는 단위면적당 생산성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대한 잉여생산물은 계급과 국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잉여생산물을 장악하고, 사람들을 노예로 삼으면서 신분제는 고착화되었으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는 커졌다.

이때, 천신의 아들로 자처한 환웅은 ‘가진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을 내세우며 주변 세력을 포용하고, 흡수했다. 그 대표적 세력이 바로 웅녀로 표현된 곰족이었다. 그 결합의 산물은 단군의 ‘고조선’이 되었다.


빈부격차가 나날이 심해지는 이때, 프로메테우스의 ‘불’과 환웅의 ‘홍익인간’은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려고 기득권들이 가진 ‘이익’을 나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차별이 점점 심해지고, 양극화가 굳어진 지금. 프로메테우스의 불과 환웅의 홍익인간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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