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스의 판도라와 희망
고독한 분위기. 홀로 빛을 내며 타고 있는 양초. 그리고 생각에 잠겨 있는 그녀. 그녀의 손은 놀랍게도 해골을 쓰다듬고 있다. 그녀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일까?
<조르주 드 라 투르, 해골을 안고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그림 속 여인은 성경에 등장하는 막달라 마리아다.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의 재산을 털어 산 향유를 예수 그리스도의 발을 씻기는데 헌신했던 여인이다. 또한, 예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목격했던 가톨릭의 성녀다. 그런 그녀가 죽음과 허무함을 상징하는 해골을 들고 있는 것은 회개의 순간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을 통해 경건한 회개의 순간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특별한 기법 때문이다.
조르주 드 라 투르,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름이다. 그는 키아로스쿠로(명암법)의 대가였다. 키아로스쿠로는 극단적인 빛의 효과를 통해 그림의 분위기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밝다’를 의미하는 chiao와 ‘어둡다’를 의미하는 oscro의 이탈리아 합성어다. 이 기법은 극단적 대비를 통해 사람의 감정을 자극한다. 성녀의 회개. 그리고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 이 그림은 우리에게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세상의 두 모습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빛이 있다는 것은 어둠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의 진리다.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작은 빛은 더 도드라져 보인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분명 인간들에게 빛과 같았다. 그러나 빛 뒤에 숨겨진 어둠이 있었다. 이 어둠을 지적했던 이가 바로 제우스였다.
”프로메테우스, 너는 내 앞일까지 알면서도 네가 빚은 인간의 앞일은 모르는 자다. 사랑에는 작은 사랑과 큰 사랑이 있다. 네가 인간에게 기울인 것은 작은 사랑이요. 내가 인간을 염려하는 것은 큰 사람이다. 잘 들어라, 네가 내게서 훔쳐다 준 불이 비록 오늘 인간의 좋은 종노릇을 할지 모르나 장차는 인간의 나쁜 상전이 된다.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네가 감히 내 뜻을 거역하고 내 불을 훔쳤기 때문이 아니라 그 불을 다른 것이 아닌, 인간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3권 中>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지닌 어둠의 속성에 더 주목하고 있었다. 제우스가 우려했던 것은 인간이 불을 통해 사용하면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었다. 제우스의 우려는 옳았다. 역사가 증명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불의 활용도를 고민했고, 숙달했다. 그리고 불을 통해 여러 무기를 만들어갔다. 더 강한 무기! 더 강한 살상력! 불은 인간의 이러한 욕망을 충족시켰고, 부추겼다. 인류의 역사에 평화의 시기보다 전쟁을 했던 순간이 월등한 것은 인간이 얼마나 전쟁에 미쳐 살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프로메테우스의 불, 환웅의 홍익인간은 그들의 의도처럼 빛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불 뒤에 숨겨진 어둠. 그것은 인간의 욕망을 채워줄 전쟁과 살육의 도구로서 불이었다. 불은 확실히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인간을 이(利)롭게 했다. 이(利)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날카로운 무기 될 수도 있다는 점이 뼈 아플 뿐이다.
환웅의 아들. 단군이 세운 고조선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고조선은 ‘홍익인간’을 국가의 슬로건으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널리 인간들을 이롭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8 조법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고조선의 8 조법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들이 보인다.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相殺以當時償殺)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물로써 배상한다.(相傷以穀償)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되, 용서를 받으려면 돈 50만 냥을 내야 한다.(相盜者男沒入爲其家奴女子爲婢, 欲自贖者人五十萬).
<한서, 동이전>
여기서 주목할 내용은 ‘노비’에 관한 부분이다. 고조선은 노비를 두었다. 계급사회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8 조법은 모든 고조선 사람들의 번영을 위한 내용이 아니었다. 또한, 부의 분배를 통한 번영보다는 국가의 중계무역을 통해 이득을 취했다. 그 결과 한나라와 갈등했고, 내부적으로는 내분이 일어났다. 결국, 고조선은 내분으로 멸망했다. (B.C.108)
<고조선의 멸망은 한나라의 공격보다 내분이 주요인이었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려고 지상에 내려왔다는 환웅의 의지와 다르게 고조선의 역사는 흘러갔다. 만약 고조선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했다면 내분이 발생했을까? 고조선을 정복했던 한 무제는 정복에 참여했던 장군들을 질책했다. 그들의 무용 때문에 고조선을 정복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조선의 내분은 ‘홍익인간’이 없는 인간의 미래를 잘 보여준다.
이것은 현재에도 마찬가지다. ‘홍익인간’을 교육의 목표로 삼는 우리나라. 그러나 현실은 ‘홍익인간’과 동떨어져 있다. 세계 경제 순위 10위권의 대한민국. 그러나 국가의 기부지수는 세계 60위권에 불과하다. (영국 자선 지원재단, 2015년 기준) 모두가 잘 사는 국가를 꿈꾸며 인간에 내려왔던 환웅이 지금의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세계 기부 지수(2015 기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판도라의 상자>
제우스는 불의 양면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우스는 인간들에게 선물(?)을 준다. 바로 판도라의 상자다. 판도라는 인류 최초의 여성이라고 한다. 판도라는 ‘세상의 모든 선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 이름처럼, 판도라는 모든 신으로부터 선물을 받았고, 이 선물은 항아리에 채워졌다. 하지만 선물 항아리 안에는 병, 슬픔, 재난 등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판도라는 호기심에 이 항아리를 열어보자 이것들이 세상으로 나가버렸다. 놀란 판도라는 급하게 항아리를 닫았으나 다행스럽게도 항아리 안에는 이 모든 재난이 있음에도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희망’만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인간은 이후 여러 불행과 고난을 겼으면서도 희망을 통해 극복할 힘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 내용은 여러 버전이 있음.)
제우스는 어쩌면 인간에게 ‘불’이 지닌 빛과 어둠을 잘 사용할 수 있는 ‘희망’을 선물로 준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희망이 성공과 실패의 경험담이 쌓여 지금의 ‘역사’가 된 것이리라.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것 또한 미래를 내다본 프로메테우스의 큰 그림이 아니었을까? 불의 어두운 점을 잘 알고 있었을 프로메테우스. 그는 희망을 통해 어두움을 극복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