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수를 결심하게 된 계기
"대구를 벗어나서 공부해보고 싶어"
나는 20년을 대구에서 자랐다. 수도권 친구들이 자기 지역을 떠난 학교를 비교적 선호하지 않는 것처럼, 고등학생 때는 수도권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것에 막연한 로망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모든 지인들이 대구에 있고, 만약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하게 된다면 나는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데 그 땐 로망에 꽂혀서 굉장히 용감했던 것 같다. 아무것도 몰랐던 것도 한 몫을 했던 것 같다.
또한, 집에서는 대구권 학교가 아니라 수도권 학교에 간다면 학비랑 생활비는 내가 알아서 감당하라고 하셨다. 나는 그게 어느정도는 겁을 먹게하려고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웬만한 큰 돈이 갑자기 들어가거나 하는 경우가 아닌 딴엔 정말 내가 생활비를 벌고 학비를 책임지고 있다. 결론적으로는 자립심 키우는 데 이만한 교육법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나도 내 라이프 스타일에 만족은 하고 있다.
아무튼 그러한 리스크를 감당해서라도 수도권으로의 진학을 원했고, 나름대로는 만족스러운 입시 결과를 얻을 수 있어서 그 중 가장 괜찮다고 생각하는 학교를 택했다. IT컨설턴트라는 꿈을 꾸고 있었기에 산업공학과와 컴퓨터공학과를 지원했었고 그래도 개발은 좀 할 줄 알아야 선택의 폭이 넓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했던 선택이었다. 그것이 내가 인생을 살면서 했던 가장 큰 첫 번째 결정이었다.
홀로 상경한다는 그 기쁨과 수험생 신분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은 두려움을 없애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과제가 이렇게 많은게 맞나..?"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서의 20살 캠퍼스 라이프는 분명히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고, 수업 또한 책으로만 배울 수 있었던 것들에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 친구들은 아직도 종종 만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고 공유하고 있다. 아무튼, 다 좋았지만 4월이 되니 갑작스럽게 외롭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것이 시험이 다가오니 과제가 미친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새벽 늦게까지 공부해도 어렵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지친 채로 강의실에 가면 미리 개발을 할 줄 알았던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앞서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밤을 새서 고민했던 코드들을 단 몇 줄 만에 뚝딱뚝딱 해결하는 모습을 보자니, '와 정말 쉽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처음으로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을 시작했던 옥탑방, 우리집에 들어오면 불은 꺼져 있고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와중에 대학생이 되어 신나게 술자리에 참가했더니 몸살까지 겹치기도 했다. 그 때 처음으로 '아 내가 서울에 던져졌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 감정을 느낄 만큼 중압감이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냥 대구에서 대학을 다닐걸 그랬나.'라는 생각을 했던 기간이기도 했다.
"그래, 반수를 하자"
한 번 힘들다고 생각하니 원인이 무엇인지 근본부터 고치고 싶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순수한 개발은 나와 맞지 않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IT 컨설턴트를 꿈 꾸면서 소프트웨어학부를 선택했던 이유는, 기획을 하고 소통하는 사람이라도 개발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 떠나서 내가 이 학과에서만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한 번 꽂히면 끝을 보는 성격이지만, 한 번 하기 싫다고 생각하면 다시 정을 붙이기가 어려운 성격이다. 그 때 나는 인생에서 가장 많은 고민을 했고, 그 와중에 나온 중간고사 성적은 이 길은 정말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처참했다. (당연했다. 물론 내가 다른 생각을 하느라 공부를 안 한 것일수도 있고, 남들에 비해 좀 더 노력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치만 그 당시에는 그러한 객관적인 평가보다 고민이 더 컸던 것 같다.)
친구들도 물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20살이 개발을 잘 해봐야 얼마나 잘 했겠는가. 그 친구들은 그렇지만 훌훌 털어내고 다시 공부에 집중하고 있었다. 부족하면 스터디를 하고, 학원을 다니면서 말이다. 그 때 문득 '산업공학과는..?'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인생 가장 큰 두 번째 결정"
반수는 사실 본인이 선택한 학교가 불만족스러울 때 대부분 결심을 한다. 나는 그곳에서 만났던 친구들도 정말 좋았고, 내가 개발 직군에서 일하고자 한다면 예전 학교만큼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는 곳도 많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뭔가 이대로 내가 계속 개발만 한다면 놓치는 것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했던 활동이 있다.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하는 '쏙쏙캠프'라는 것이었다. 2박 3일 동안의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여 아이들을 대상으로 봉사 활동을 하는 대외활동이었는데, 우연히 참가했던 그 활동이 나의 결심을 확고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순수한 개발보다는 사람 만나는 것에서 에너지를 더욱 얻었고, 직접 기획한 것을 실현할 때 행복을 느꼈다. 그렇게 '만약 내가 산업공학과에 간다면, 좀 더 폭 넓은 고민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원서 접수는 다소 충동적이었다. 어차피 수능 지원 기간도 지났고, 나는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들어왔기에 자기소개서 작성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지금 내가 다니는 학교와의 우연적인 필연이 발생했다. 사실 처음 원서 접수를 할 때, 우리 학교는 지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미 한 번 합격을 했었기에, 돌아가는 것은 손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제 직전까지 갔다가, 갑자기 우리 학교에 지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경쟁률이 높지 않았던 것이 결정에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언가에 홀린 듯 지원을 했다. 결론은,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만 합격을 했다. 아마 그 때 원서를 넣지 않았더라면 나는 개발자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기획자', 그리고 나중에는 'IT 컨설턴트'라는 꿈을 이루기에는 산업공학과가 최적화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데이터에 대해서도 배우고, 개발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커리큘럼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덕분에 나는 예전 학교에서보다 훨씬 행복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성인이 되고 학생때와 가장 달라진 점은, 내가 했던 결정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그 때 했던 결정이 운 좋게 들어 맞았기에 나는 대학생활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의 학교에서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 이후로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좀 더 나에 대한 감정과 의지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체크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학과에서 배우는 과목 또한 재미있었다. 많은 것을 얕게 배우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산업공학과이기에, 비록 조금은 덜 전문적일 수 있지만 폭 넓은 지식을 갖출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여러 분야에서의 목표를 가지고 있는 동기들과 선배들이 많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를 좀 더 단단하게 단련시킬 수 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