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가고 싶다는 건 아니다. 그저 가는 날이고, 가야 하니까 가는 거다. 가기 싫은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하고 흘려보낸다. 명상하듯 생각을 비우기로 했다. 이게 쉽지 않다. 금세 다시 가기 싫어진다. 생각을 비우는 대신 수강료를 생각한다. 나란 놈은 이 편이 나은 것 같다. 결국 모든 것이 수련의 일부인 셈이다.
하타 요가의 꽃은 후굴(몸을 김밥 말 듯 뒤로 말아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모든 전 후 동작들은 후굴을 잘하기 위한 예비 동작이란다. 비비 꼬고 거꾸로 서고, 별짓을 다 해도 결국 최종 목표는 후굴이다.
발바닥이 정수리에 닿을 때의 희열이 있다는데, 아직 거기까지 거려면 60cm도 넘게 넘어가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일단 가슴과 어깨가 열리고 팔힘도 길러져야 하며, 턱을 확 제칠 수 있도록 근육이 풀어져야 한다. 스마트 폰 중독 상태의 현대인들은 하루 종일 전굴(앞으로 구부린) 상태로 생활한다(지금도 전굴상태). 자라목에 라운드 숄더, 어깨도 등도 딱딱하게 굳어 있다. 현대인이면서 10년 넘게 웹디자이너로 일하며 전굴인으로 살아온 내게, 60cm의 거리는 엄마 찾아 삼만리와도 같다.
뭐, 알다시피 빠른 길은 없다. 그저 조금씩 접근해 가는 수밖에. 매일 아침밥을 짓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 듯, 생활의 일부로 만드는 꾸준한 반복만이 살길이다. 그렇게 해서 발바닥이 정수리에 닿을 정도가 된다면 발로 세수도 하고 화장품도 바를 수 있을 것이다(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선생님께서 차담 시간에 반 건시에 이어 중동 대추야자를 선보이셨다. 역대 최고의 아침 차담 인원이었다(다섯 명). 첫맛은 대추와 홍시를 섞은 듯한데, 뒷 맛은 버터리하다. 보이차의 쌉싸름한 맛과 잘 어울린다. 좋은 차는 맛은 물론이요 몸의 기를 북돋아준다고 한다. 그렇게 되려면 시간의 힘이 필요하다. 보관을 잘한 생차는 오래 묵힐수록 맛이 좋다. 로스팅을 마친 커피가 시간이 갈수록 산화해 향을 잃는 것 과는 반대다. 좋은 보이차는 좋은 사람과 닮은 것 같다.
"지난번에 소개해 주신 밥집 가봤는데, 진짜 맛있었어요. 제 안에 숨어있던 아저씨를 만난 기분이었어요."
주 고객층이 30대 이상인 원신식당 이야기다.
"저희도 말씀하셨던 카페에 갔었는데 진짜 커피 성지 맛 더라고요. 바리스타님도 잘 생긴 느낌(마기꾼일지도 모르지만)"
맛집 후기로 시작한 차담 자리에는 더 많은 정보가 쌓여간다. 쌀국수는 어디가 맛있고, 중동 음식은 어디, '맥주는 맥파이가 맛있지.' '요 근처에 커피 맛집을 찾았어요.' 쏟아지는 정보가 벼룩시장 급이다. 집단지성의 힘이란 게 이런 것인가. 잘 모아 놓으면 <제주도 현지인 맛집 순례> 같은 책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요가를 마치고 떡볶이와 김밥을 사다 공원 벤치에 앉아 먹었다. 야채가 가득하고 햄을 뺀 웰빙 김밥, 떡집에서 당일 뽑은 가래떡으로 만든 데다, 일주일 동안 숙성한 양념장을 사용한 자부심 가득한 떡볶이. 니콜에게도 꼭 한 번 맛 보여 주고 싶어 벼르던 메뉴다.
아름드리나무를 그대로 살려 조성한 공원은 가을빛으로 물들어 이국적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통나무에 등판을 부딪히는 아주머니께서 계셨지만, 왜 그렇게 열심인지 아니까 다 괜찮다(40대 중반을 넘기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노랗게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센트럴파크에서 샌드위치 먹는 느낌으로, 야무지게 떡볶이를 찍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