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영하 Feb 20. 2023

< 詩作 이야기 - ⑬ 개혁 / 권영하 >


개혁  / 권영하  

 

도배를 하면서 생각해 보았다

언제나 그랬지만 

낡은 벽은 기존 벽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진액을 빨아 버짐으로 자랐다

벽지를 그 위에 새로 바를 수도 없었다

낡고 얼룩진 벽일수록 수리가 필요했고

장판 밑에는 곰팡이꽃이 만발했다

합지보다 실크벽지를 제거하는 것이

힘들고 시간도 더 많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사하거나 집을 새로 지을 수도 없었기에 

낡아 헐어있는 벽을 살살 뜯어내고

새 벽지로 재단해서 붙였다                                 

습기는 말리고 울퉁불퉁한 곳에는 초배지를 발랐다

못자국과 상흔이 남아 있었지만

잘 고른 벽지는 벽과 천장에서 환하게 뿌리를 내렸다

온몸에 풀을 발라 애면글면 올랐기에

때 묻고 해진 곳은 꽃밭이 되었다

갈무리로 구석에 무늬를 맞추었더니

날개 다친 나비도 날아올랐다

방 안이 보송보송해졌다  


  - 『신춘문예당선시집 』(문학세계사), 『문장웹진 』(사이버문학광장), 『현대시문학 』

☞ 출처 : https://blog.naver.com/almom7/223183965429


         

  <개혁詩作 노트 

 개혁은 어떤 제도나 기구 등을 새로 뜯어고치는 것을 말한다. 

 급진적으로 완전하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고쳐가는 과정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은 도배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뒷부분에 ‘애면글면’은 힘에 겨운 일을 이루려고 갖은 애를 쓰는 모습을 말한다.

이전 11화 가자미 / 권영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