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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고등학생, 맞춤형 대입전략을 짜보자!

by 그림크림쌤

무기력에 빠져 있는 티라노씨를 가엽게 여긴 신이 선물을 준 걸까?

양 날개를 모두 잃어 떨어지고 있는 티라노씨를 불쌍히 여겨 날개를 달아준 걸까. 고등부 수학학원 최상위반 합격에 이어 얻은 의외의 3월 모의고사 결과 말이다. 아이가 ADHD라서 해도 안 되는 줄 알았다. 중학교 때 가장 잘한다던 수학도 90점 이상이 잘 안 나오고, 과학교사 엄마랑 함께 공부한 과학은 90점은커녕 6~70점대를 전전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더 3월 모의고사 결과가 뿌듯하고 의미가 있었다.


모의고사보다 어렵게 내는 중학교였다니. 세상에나. 이 정도일 줄이야. 중학교 시험이 어려우면 단련되어 고등학교 가도 큰 충격을 안 받아 좋다더라. 문제는 단련되기 전에 좌절해서 아예 포기하는 아이들이 생긴다는 거다. 학군지에 이런 아이들이 많다고들 했을 때 남의 얘긴 줄 알았다. 역시 키워보기 전엔 호언장담하면 안 된다는 걸 또 느낀다.



"엄마는 아무리 봐도 네가 공부 안 하기엔 아까운 것 같아."

"8번의 시험 중 4번은 시험공부를 포기했는데 과학 2등급이 말이 되냐고. 자네, 공부할 마음 없나? 현직 과학교사로서 아무리 봐도 안 하기엔 아까운 머리를 가졌네만. 필요하다면 엄마가 도와줄 수도 있네."

악수를 청하며 장난스럽게 제안을 던진다. 칭찬받아 기분이 좋은지 그러겠다는 대답 대신 씩 웃으며 내 손을 잡아 악수해 준다.


공부 머리 얘기가 나왔으니 티라노에게 지능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ADHD는 지능 검사 결과가 낮아도 상처받을 필요가 없는 것 같아. 너를 봐봐. IQ 89인데 수학 잘하잖아. ADHD는 주의력과 충동성 문제로 실제 지능보다 낮게 나오는 것 같아. 게다가 ADHD 중엔 예민한 경우가 많아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환경이 낯설어서 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만 지능이 높고 낮음이 중요한 건 아니야. 낮게 측정된 지능이 맞다고 할지라도 그 아이가 가진 '달란트'는 꼭 있을 테니까. 지능이 뇌의 모든 영역을 측정하는 것도 아니니까. 측정한 지능은 낮더라도 측정되지 않는 영역의 뇌 기능이 좋을 수도 있고. 엄마가 볼 땐 넌 수학, 과학에 확실히 재능이 있어. 그리고 너 아플 때 보면 참을성도 진짜 좋은 거 알아? 네가 가진 장점에 너의 그 참을성과 집념까지 발휘한다면 넌 뭐든지 해낼 수 있어!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넌 날아갈 거야."

오늘도 자존감 높이기다.


이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열 수 있을까 몇 년간 고민하며 꾸준히 해왔다. 그런데 막상 고등학생이 되니 '만약 고3 때에도 수학만큼은 놓지 않는다면 방법이 있지 않을까?'라는 현실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마침 수학 서술형 시험에 강하기도 하니 말이다. 서술형과 수학에 강한 ADHD 아이에게 맞는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 정보 수집을 위해 학원과 학교 설명회가 있으면 최대한 참석하기로 한다.



"수학만 조금 잘하고, 나머지 과목들은 아주 못하는 아이도 대학을 갈 수 있을까요?"

수학학원 학부모 설명회에서 한 질문이었다. 이 질문이 그렇게 신기했을까? 아니면 특이한 애 엄마 면상이 궁금했던 걸까?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의실에 있던 학부모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수학만 잘해선 안 돼요. 다른 과목도 해야죠.'라고 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과 다른 대답이 들려온다.

"다른 과목은 전부 잘하는데, 수학만 못하는 아이들은요. 안타깝지만 고3까지도 수학은 해도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다 못하는데 수학만 잘하는 아이들은요. 나중에 정신 차리면 다른 과목은 다 올라가요."

감사하게도 학군지 수학강사다운 전문성이 포함된 고급 위로를 건네신다. 질문자가 무안하지 않도록 내 입장에서 듣기 좋은 답변을 해주셨으니 말이다. (정신을 차려야 말이지... 그놈의 정신, 언제 차리는 건데...)


비슷한 질문을 신입생 학부모 진로설명회 후 진로진학 부장 선생님께도 여쭤보았다.

"이 학교에서는 이 정도로는 수학 잘한다고 하기도 뭣하지만"이라고 운을 떼었다. 여긴 수학 모의고사 1등급이 한 반에 6~7명씩 되는 데다가 전국 1% 안에 드는 출중한 애들이 워낙 많으니 말이다.

"이번에 수학 OO점을 맞아 1등급이 나오긴 했는데요. 이런 아이도 수리논술전형을 준비하면 대학진학이 가능할까요? 다행히 사회 1등급, 과학 2등급이 나왔습니다."

원점수와 등급까지 함께 말씀드리며 여쭈어 보았다.

"논술전형이 축소되다가 올해 다시 약간 확대 움직임이 있어요. 논술전형도 수시전형이라 최저 2개가 필요해요. 수학과 탐구 이 두 개로 최저를 맞추면 되겠네요."

단호하지만 확신에 찬 어조로 말씀하신다.

"SKY는 어려워도 인서울 4년제까지는 가능할 수도 있다는 말씀 맞으실까요?"라고 되물었다.

"그렇죠."

'아... 방법이 아얘 없진 않구나.'

한줄기 희망의 빛이 내게 비친다. 수학마저 놓을까 봐 전전긍긍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매일 티라노 옷을 입고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3년도 안 남았다니... 언제 이렇게 컸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3가지는 무조건 탄탄하게 만들어놓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중고등학교에서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많은 학생들을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얻은, 공부로 성공하는 방법이나 원칙인 셈이었다. '다 잘할 필요 없다. 독서, 영어, 수학에 집중하자. 나머진 고등학교 가서 해도 늦지 않다.'였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선택을 더 좁혀야 한다면 아이 성향에 따라 셋 중 하나라도 확실히 잡아두는 것이 좋다. 셋 다 잡으면 가장 좋지만, 사춘기 아이는 부모 뜻대로 안 되니까. 대입 전형 종류는 많고 대학별로 세분되어 있어, 아이에게 무언가 한방이 있다면 대학 진학의 길이 없지 않으니까. 그렇게 ADHD인 티라노는 수학만큼은 확실히 잡아두겠다는 신념이 있었다. 한 과목이라도 잡고 있어야 정말로 공부할 마음이 생겼을 때 다른 과목으로 확장이 될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가 아니더라도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나도 노력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발판이 될 수도 있고 말이다.



(사진출처 : [포토] 수능 시험장 향하는 수험생들 < 더포토 < 갤러리기사 - 더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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