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하나 남은 수학공부 중단이 두려운 진짜 이유

by 그림크림쌤

안녕하세요 그림크림쌤입니다.

출간준비 중인 원고 1차 교정을 마감 날짜에 맞춰 마무리하다 보니 요새 글을 2주에 한번 올리게 되었네요. 혹시 제 글을 기다렸을지 모를 구독자님들께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지난 편에 이어 이번 편까지만 속마음 글을 하나 더 올리려 합니다. 아직은 조금 위로가 필요해서요...



시간 순서대로 담담히 티라노 씨 사춘기 사건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초6 여름. 잘하던 영어학습 중단 위기가 왔고, 버텨보았지만 결국 중단되었습니다. 초4부터 2년 반을 매일 2~3시간씩 꼬박 성실하게 스스로 공부하던 티라노, 코로나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맞벌이 부모가 없는 사이 점점 게임 세상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중1.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 관심군이 나왔고, 상위 기관과 상담 연계 신청을 했습니다. 거기서 adhd가 의심된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간 소아정신과에서 혼합형 adhd진단을 받았습니다.


중2. 초등 때부터 단짝이던 친구와 중1 때 친한 친구끼리 연결되며 도리어 티라노만 소외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때부터 티라노는 '교우관계'가 중단되었습니다.


중3. 친구 자체를 사귀려는 시도를 아예 안 합니다. 작년에 교우관계를 포기했으니까요. 중3 1학기 기말고사, 시험공부 거부선언을 합니다. 그렇게 '수학을 제외한 모든 공부'도 중단되었고, 집에서는 숙제를 포함한 그 어떤 공부를 하지 않으며 학습 무기력에 빠졌습니다. 단지 수학학원만 남았고, 학교에서는 할 게 없는지 학교에서는 수학숙제를 했습니다.


고1 현재. 2학기 들어 학교에서 조차 수학숙제를 안 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하나 남은 수학마저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영어학원 그만두고 싶다고 했을 때, 어르고 달래며 버텨봤자 결국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이미 겪었습니다. 특히 adhd 아이는 인지적 유연성이 부족해서, 융통성이 부족하고 고집이 셉니다. 마음을 잘 안 먹지만 한번 마음먹으면 독하게 끝까지 해내고, 본인이 한 말은 철저하게 지킵니다. '나 앞으로는 시험공부 절대 안 할 거야!' 이 말을 1년 넘게 철저히 지키니까요. '티라노야. 그런 말은 좀 안 지켜도 괜찮아.' 작년에 얼마나 울었나 모릅니다.

KakaoTalk_20250903_171625672.jpg 중2 때 공부하던 그리운 모습. 다시 볼 수 있을까? (직접 그린 갤럭시 노트 드로잉)


학군지 수학학원 최상위반. 이 타이틀을 놓기가 참 어렵습니다.

고등부 탑반 전담 선생님이라 그런가, 중등부때와 달리 자존심이 강하고 따라올 자만 남기겠다는 마인드가 강하셔서 adhd 아이가 다소 숨 막혀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겠습니다. 학원 선생님께 울고불고 사정사정했습니다. 제발 그 반에 붙어 있게만 해달라고. 선생님 풀이가 기똥차다며 아이가 선생님을 매우 존경한다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요. 이 약발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습니다.


웃긴 건 수학숙제는 한 달째 전혀 안 해가면서 학원을 옮기겠다거나 그만두겠다는 말은 없어졌다는 사실입니다. 학원 가기 전에는 귀찮다면서 가는데, 끝나고 올 때는 기분이 좋아져서 돌아옵니다. 아마 수업이 재밌긴 한가 봅니다.



하나 남은 수학학습 중단 위기, 난 왜 이렇게 힘들지?

이 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힘든 학교생활은 교우관계나 공부, 그 무엇이라도 하나만 있으면 버티는 힘을 내게 해줍니다. 티라노는 중2 때부터 교우관계를 시작으로 수학을 제외한 모든 공부까지 전부 내려놓았습니다. 제가 볼 땐 지금까지 학교생활을 버티게 해 준 건 수학에 대한 자부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버티게 해 준 원천인 수학을 내려놓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수학마저 내려놓으면 그다음엔 무엇을 내려놓으려고 할까?
저는 자꾸만 그다음 수순은 '등교'라는 생각이 듭니다.


두루두루 잘 지낸다고 하지만, '따로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도 없는 티라노가, 학교에서 수학마저 못하게 되었을 때 받게 될 무시를 견딜 수 있을까?' 너무 두렵습니다. 두려움은 불안을 금세 불러오며 adhd인 저를 순식간에 감정폭풍에 휩싸이게 합니다.


어제 티라노가 없는 낮에 하루 종일 주책맞게 울고 또 울었습니다. 티라노가 하교한 이후에는 좋아하는 고기반찬도 차려주고, 감기약도 챙겨주며 잘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또 숙제를 안 한 채 꾸역꾸역 수학학원에 갔습니다. 보내놓고 또 눈물바람입니다.



그래도 제가 티라노 때문에 마음고생한 3년 동안 저도 발전이라는 걸 했나 봅니다.

아이가 없는 틈에만 실컷 울었습니다. 예전과 달리 티라노 앞에서 저의 불안을 들키지 않았습니다.


잘했어. 그림크림! 절대로 너의 불안을 티라노에게 들키지 마.
그게 최악이라는 거, 네가 가장 잘 알잖아.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처럼, 아이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부모는 자꾸만 겸손해집니다.

심지어 아이가 올 1등급이어도, 초등맘일 때처럼 주위에 쉽사리 자랑하지 못합니다. 혹여 그 자랑이 내 아이에게 압박이라는 악수로 작용하거나, 다음에 1등급을 못 받아올까 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자꾸만 원고를 고치는 저를 발견합니다.

'수학만큼은 잘하는 티라노'를 '수학만큼은 하는 티라노'라고 고치며 '잘'이라는 글자를 빼버립니다. adhd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니, 마치 안개가 하도 심해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도로를 달리는 그런 기분입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티라노 방황이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근데 이제 시작인가 봅니다. 학군지 수학 최상위반에 합격하고, 수학 모의고사에서 1등급이 나오면 공부 동기부여로는 충분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완전한 저의 착각이었다는 걸, 이번에도 역시 지나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수학 1등급 나왔다고 너무 기뻐한 게 잘못이었구나!


저희 부부가 좋아한 게, 아이에겐 또 다른 압박 요소로 작용했다는 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늘 지나고 나서야 깨닫고 뉘우치고, 한발 늦게 남들보다 몇 배로 노력하면서 극복하며 사는 걸까요?


눈치 없는 adhd인 엄마가 예민한 adhd 아들을 키우는 게, 난도가 참 높습니다.


티라노의 하나 남은 수학 공부,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는 강요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주어 보려 합니다. 숙제를 학교가방에 넣어주긴 하겠지만, 안 해오더라도 잔소리는 이틀에 한마디 정도만 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이렇게 자주 말해주려 합니다.

공부 못해도 괜찮아.

수학마저 못해도 괜찮아.

편식 심해도 괜찮아.


수학마저 못하게 된다고 해도 널 계속 사랑할 거야.

대학에 못 가게 된다고 해도 널 계속 사랑할 거야.

비교와 경쟁이라는 이 힘든 세상에 adhd로 태어나게 만든 엄마는 네가 스스로 일어서서 걸을 수 있을 때까지는 널 도우며 책임질 거야.



제 목표는 대입도, 공부도 아닙니다.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했으면'이 목표입니다. 수학마저 때려치우더라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고등학교만큼은 졸업하게 하고 싶습니다. 내 아이만큼은 '특이하다'는 소리, 저보다는 적게 들으며 살게 하고 싶거든요.


좀 전에 '사춘기 3년이면 지나간다'는 댓글을 보았습니다. 정말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티라노는 4년이 다 되어가는데....ㅠㅠ 지나가는 날이 오기는 오는 걸까요?


오늘은 제가 지킬박사가 아니라 하이드인가 봅니다. 희망을 드리는 글을 쓰려 늘 노력했는데, 오늘은 쉽지가 않습니다. 오늘만큼은 조금만 봐주세요. '날아다니는 새도 떨어지는 날이 있다'잖습니까. 오늘은 제가 그런 날인가 봅니다.

keyword
이전 07화이번 방학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학습중단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