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번 방학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학습중단 위기

부제 : 이런 책을 쓰고 있습니다.

by 그림크림쌤

안녕하세요. ADHD고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ADHD인 현직 중등교사 그림크림쌤입니다. 오늘은 잠시 쉬어가도 될까요? 위로가 필요해서요.


이번 방학에도 티라노에게 공부 위기가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티라노에 대해 아시는 분도, 전혀 모르시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티라노 씨는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전 과목 중 수학만 학원에 다닙니다.

[브런치북] ADHD교사자녀,학군지에 던져지다에서도 썼지만, 작년 1학기에 학습 무기력에 빠져 집에서는 수학 숙제조차 안 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학교 쉬는 시간에만 수학숙제를 하며 수학실력을 연명 중입니다.


그렇다 보니 매 방학마다 수학학원 중단 위기가 찾아옵니다. 학교에 가지 않아 숙제가 밀리니까요. 지난겨울방학에 이어 이번 여름방학에도 어김없이 위기가 왔습니다. 숙제가 밀린 일은 숙제 압박감을 불러왔고, 순식간에 '수학 그만둘래!'라는 커다란 감정폭풍으로 돌변했습니다.


불안이 높은 데다 눈치도 부족한 ADHD엄마인 저 역시 감정폭풍에 휩싸인 건 당연했습니다. 지난 주말, 몸살을 핑계로 2박 3일 내내 과수면 상태에 빠져 잠만 잤습니다. 솔직히 깨기 싫었습니다. 아바타가 가상세계에 접속해 현실세계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저 역시 꿈나라로 접속한 아바타였습니다.


두 남자들은 그런 저를 신경조차 쓰지 않고 무던합니다. 꼬박 30시간을 연속해서 잠만 자는데, 티라노가 쭈뼛쭈뼛 제 옆에 있던 남편에게 와서 애교 섞인 표정으로 말을 겁니다.

아빠, 나랑 체스할래?



그렇게 둘이서 체스판이 벌어졌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요새 체스게임을 주야장천 하더니, 실제로 해보고 싶었나 봅니다. 화목한 모습, 몇 달 만인지... 그 풍경이 너무 소중하고 또 간절하게 행복합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방학부터, 긴장됐는지 갑자기 말도 못 걸게 하고 보드게임도 함께 안 해주었었거든요.


"체스할래?"라는 말이 저에게 '그림크림 언어'로 번역되어 들립니다.

엄마, 나 때문에 힘들지? 힘들게 해서 미안해. 나 예전처럼 아빠랑 보드게임 할 테니 힘내!


IQ 89인 ADHD 아이가, 멘사 아빠를 5대 0으로 가볍게 이깁니다. 남편은 계속 지면 티라노가 시시해져서 체스 안 한다고 할까 봐 걱정된다면서, 틈만 나면 체스 공부를 합니다.

아이패드 드로잉. 아직 초보라 많이 서툽니다. 재미로 봐주세요.


울면서 잠만 자는 절 모른 척하던 남편이었는데, 갑자기 남편의 이런 모습에 '그림크림 언어'로 자막이 달립니다.

이 사람이 날 걱정하는 마음의 표현 방식이구나!


둘이 함께 보드게임을 하는 모습에 내 멋대로 위안받습니다. 그렇게 2박 3일 저의 과수면은 끝이 났습니다.



수학공부 vs 부모 자녀 관계,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 남은 수학공부와 부모 자녀 관계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1%의 망설임 없이 선택했습니다. 부모 자녀 관계를요.


겨우 회복해 놓은 아이와의 관계를 수학공부 압박으로 망치고 있는 거라면, 이따위 공부 다 때려치우게 하자!

미친 생각이 듭니다.

부모와 관계가 원만한 아이는 새로 그 어떤 일을 시작해도 다 해낼 힘이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초조함과 조급함을 내려놓고, 아이 저력을 정말로 믿어주어 보기로 결심합니다.


쉬어도 괜찮아.

공부 안 해도 괜찮아.

공부 못해도 괜찮아.

수학마저 못해도 괜찮아.


괜찮아. 잘하고 있어.

7시 반 등교, 해내는 거 쉬운 거 아니야.

고등학교 무사히 졸업만 하자.

정시준비해야 하니 자퇴? 엄만 그딴 거 몰라.


남들처럼 그냥 평범하게.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아주 아주 평범한 그런 어른이 되렴.

남들 다 다니는 고등학교도 남들처럼 졸업하고.

그냥 그렇게 자라렴.


엄마처럼 "정말 특이하다"소리 안 듣는 어른이 되렴.

성과가 좋지 않아도 좋으니,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편안하게 영위하는 그런 어른이 되렴.




ADHD 자녀양육서 탈고를 시작했습니다.

7월 말 ADHD 자녀양육서 초고를 출판사에 넘겼고, 현재 1차 교정 작업 중에 있습니다.

초고를 넘길 땐 A4 11포인트 기준, 200쪽 원고가 내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정말 뿌듯했습니다.


게다가 초고를 보내고 며칠 후, 편집장님으로부터 제 원고가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도 많다"는 피드백을 받았거든요. 제가 뭐라도 된 냥, 얼마나 기쁘던지요. 너무 좋고 설레여서 문장을 달달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답니다. ㅎㅎ

내 초고를 본 편집장님 반응. 뿌앵..ㅠㅠ

그런데 1차 교정을 하고 있는 지금, 전체 원고 수정을 한번 마쳤는데도 영 찜찜합니다. 초고를 넘길 때 분명 티라노와 남편까지 동원해서 검토를 많이 하고 보냈는데, 심지어 여기저기 오타도 있더라고요. (충격 그 잡채...ㅠㅠ)

오타보다 더 충격인 건, 내용 흐름이 이상하다고 느껴질 때입니다. 허....ㅎㅎ


이런 책을 내는 게 목표입니다.


처음엔, 티라노가 ADHD로 힘들 때마다 "엄마는 이럴 때 어떻게 해결하면 된다고 했지?"라며 수시로 꺼내볼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게 목표였습니다.


근데 지금은 목표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 ADHD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두고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고 싶은 책

- ADHD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회자되는 책

- 심지어 ADHD가 아니어도, 교우관계나 공부 어려움이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읽어보고 싶은 책


이런 책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책을 썼습니다.

꿈도 참 야무지지요? 꿈이 높으면 발끝 언저리라도 닿을 거라는 소망도 함께 담았습니다.



그림크림쌤의 ADHD책, 기대해주세요.

그냥 책 말고, 좋은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했고, 다할 겁니다.

전 ADHD라 해낼 수 있습니다.

일상 전체는 조금 엉망이어도 과몰입과 과집중만큼은 절 따라올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면서도 생각을 계속하거든요.

(이래놓고 혹시 나중에 2쇄조차 못가더라도... 비웃기 금지입니다...ㅠㅠ)





그림크림쌤 인스타그램에 ADHD일상툰 드로잉을 재미로 종종 올립니다. ADHD의 유쾌하고 엉뚱한 일상을 서툴지만 재밌는 만화로 구경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grimcream_ssam


다음 주 목요일에 원래 내용으로 연재를 이어가겠습니다. 한 풀이성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라이킷과 댓글은 사춘기까지 온 ADHD아들의 4년 양육으로 지친 제게 큰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keyword
이전 06화ADHD교사자녀의 과잉행동 충동성 자세히 살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