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판사 디케의 첫 번째 재판

by 현범

변호사 생활을 15년째 하고 있지만, 오늘만큼 특이한 재판도 없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특이하다고 평한 건, 연쇄 살인이나 강도와 같은 '사건'이 아니라 판사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번 공판을 맡은 판사는...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 로봇 디케(Dike). 그리스 신화의 ‘정의의 신’을 본떴다나 뭐라나... 아무튼 로봇 보급률이 가정이나 교육 기관에서만 90%를 넘기면서, 이 깡통 로봇이 신성한 재판장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다.

물론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반대했었다. 아니, 애초에 공감능력이 하나 없는 로봇 따위에 재판을 맡긴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인류가 창조한 로봇인데, 그 로봇이 인류를 판단한다고? 그런데 놀랍게도, 일부 무능한 시민들과 멍청한 정치인들이 반론을 내놓았다. 공감능력이 없는 로봇이야말로 더 공정하고 객관적인 재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문제를 놓고 여야, 검찰, 각종 행정조직 간에 열띤 토론이 이어졌고, 시간이 흐를수록 시민들 사이의 갈등은 점점 고조되기만 했다. 지친 정부는 마침내 '일단 한 번 시켜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어떻게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아무튼- 변호사들은 하나같이 수임을 거절했다. 직업 윤리나 개인의 사상과는 별개로, 이 사건 자체가 너무나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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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밤 9시 49분, 한주리 양은 평소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에서 나와 지하철을 탔다. 밤 10시 26분, 집으로 귀가하던 한주리 양이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남자 다섯 명이 그녀에게 접근. 밤 10시 30분, 한주리 양은 그들과 함께 사라졌다. 사건 다음 날, 한주리 양은 그 남자들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다섯 명 전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재판에서 패배한 주리 양은 그 남자들의 신상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시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이제, 그 남자들이 고 한주리 양의 유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그 남자들의 뒷배가 든든하다는 소문은 이미 법조계에 파다했다. 실제로 그 중 한 명은 다선 의원의 아들이었다. 사실 그 사실을 제외하고도 이미 결론이 난 사건의 부수적인 재판이라 승산은 희박했기에 변호사들이 기피한 것도 당연한 처사일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대중들이 보기에) 억울한 피해자의 편에 서는 것. 게다가 로봇 판사의 첫 번째 공판에 참여한다는 것. 설령 승소하지 못하더라도, 내 이름값은 톡톡히 할 수 있으리라. 내가 이 골칫덩어리 사건을 맡은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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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당일, 시민 배심원 8명이 자리에 다 착석하고 나서야 재판이 시작됐다. 발 대신 바퀴가 달린 판사가 로봇 특유의 소릴 내며 재판장석에 앉았다. 그의 얼굴은 ‘디케’라는 이름에 걸맞게 두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었다.

-재판 시작하겠습니다. 디케의 기계적인 목소리가 법정을 울렸다.

무테안경을 쓴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나를 한 번 쓱 훑어보며 당당하게 걸어나왔다. 내 자격지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눈빛에서 경멸의 기운이 느껴졌다. '새파랗게 어린 놈이...' 나는 혼잣말로 중얼댔다. 검사는 디케 앞으로 다가가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나는 '존경하는'이라는 말에 실소가 터질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저 검사는 로봇에게 존경을 표한 최초의 인간일 것이다. 그 순간 디케가 내 생각이라도 읽은 듯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두 눈이 안대에 가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나를 꿰뚫어보는 것만 같았다. 이후 검사는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갔다. 신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침착했다. 이제 내 차례다. 나는 증인석으로 걸어가 증인 앞에 섰다.

“증인.”

“네….”

중년 여성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그녀의 눈에는 초점도 없었다.

“한주리 양은 집에서 어떤 딸이었나요?”

“착하고…. 정말 착하고... 착한... 하나뿐인 제 딸이죠.”

여자는 간신히 대답한 뒤,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량 곳하지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한주리 양은 이성, 그러니까 남학생과 교제한 적이 있습니까?”

“아뇨. 낯가림이 심했기 때문에 먼저 다가가는 걸 무척 어려워했어요. 그날도 내가 데리러 갔으면…. 데리러 갔어야 했는데.” 증인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어찌나 서글프게 소릴 내어 우는지, 배심원 중 몇몇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재판장에서는 진정해야 한다고 그렇게 일렀건만... 나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탈진이라도 하기 전에 얼른 답을 받아내야 했다.

“어머님, 일단 진정하시고….”

"그 골목에서 저희 집까지 5분이면 가요. 5분!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우리 애가 남자 다섯 명을 꼬신다는 거예요?!" 여자는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CCTV에 다 나왔잖아요. 남자들이 우리 애를 끌고 가는 게 다 찍혔잖아요. 그런데 왜! 왜 우리 주리가 가해자라는 거예요?! 왜!!"

나는 내 계획이 틀어지자 짜증이 솟구쳤다. 말하기로 했었던 내용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고 더군다나 이렇게 감정적이어선 재판에서 이길 수 없다. 주리 양의 어머니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더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주리 양의 어머니는 내 속도 모르고 더욱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때,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당연히 판사가 휴정을 선언하거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하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판사는 뭐 하는 거야?' 나는 디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디케의 안대 아래로 투명한 액체가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물... 눈물이었다. 이후 재판은 연기되었고, 다음 날 로봇 판사 디케는 폐기되었다.


※ 본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으로 창작된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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