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 단편
“자, 각자 자리에 앉아요.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고요.”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열 명 남짓의 아이들이 줄지어 21세기 박물관의 ‘체험관’으로 입장했다. 체험관 중앙에는 가로로 긴 통유리 터널이 설치되어 있었고, 아이들은 그 터널을 마주 보며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조명만을 제외한 주변이 어둠에 잠겼고, 터널 양 끝을 막고 있던 문이 동시에 열렸다. 왼편에서는 흑인 여성 한 명이, 오른편에서는 동양계 남성 한 명이 네 발로 기어 나왔다. 둘 모두 목줄이 채워진 채, 몸에는 천 조각 하나 걸치지 않은 날것의 모습이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으악, 징그러워요!”
“괴물 같아요...”
선생님은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 모습과는 아주 다르죠? 하지만 이건 우리 선조들의 모습이에요. 불과 백 년 전의 모습이랍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와 여자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양팔을 뻗어 닿을 듯했지만, 목줄이 당겨지며 그들은 곧 뒤로 확 잡아끌려갔다.
“오...”
아이들은 멍하니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호기심 많은 아이 하나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방금은... 무슨 상황이었나요?”
“번식 욕구를 해소하려다 줄에 당겨진 거예요. 재밌죠?” 선생님이 웃자, 아이들도 따라 웃었다.
터널 안의 침묵을 깨고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Parlez-vous français?”
남자는 짧게 욕설을 내뱉으며 바닥을 내리쳤다.
“하... 이럴 줄 알았으면, 불어 좀 배워둘 걸.”
그의 말은 아이들에게 들리지 않았지만, 선생님은 다시 한 번 안내했다.
“이제 <고대 언어>를 실행해 볼까요?”
아이들은 프로그램을 실행했고, 곧 남녀의 말은 실시간으로 머릿속에 번역되었다.
“Comment allez-vous le résoudre à l'avenir?”
“뭔 X소리야,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대화는 여전히 이어지지 않았고, 두 사람은 안간힘을 쓰며 몸짓으로 서로를 이해하려 애썼다.
보다 못한 한 아이가 남자에게 다가가 한국어로 외쳤다.
“야! 저 여자가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잖아!”
남자는 아이를 향해 고함쳤다.
“닥쳐! 이 빌어먹을 깡통 새끼야!”
목소리는 갈라졌고, 절규처럼 들렸다. 아이는 멈칫하더니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제가 도와줬는데 왜 화를 내요?”
“원래 복잡한 생물이라 오류가 자주 나타난답니다.” 선생님은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때였다. 여자가 입을 열었다.
“Je veux mourir...”
뚝뚝, 눈물방울이 유리 터널 바닥에 떨어졌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액체에 놀라 선생님에게 몰려갔다.
“선생님! 슬퍼서 그런 거죠? 그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죽여주면 안 돼요?”
“안 돼요~ 저 둘은 마지막 인류랍니다. 잘 보존해야 우리 후손들도 사람을 볼 수 있겠죠?”
선생님은 천천히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자, 이쯤에서 인사하고 견학을 마무리할까요? 다 같이~”
아이들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앞으로 열심히 살아~”
“열심히 살아~”
※ 본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으로 창작된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