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 단편
멀리서 그림자 하나가 어른거렸다. 사수였다. 굳이 표정을 살피거나 발걸음의 무게를 가늠하지 않아도, 오늘 그의 양동이가 유난히 묵직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해 질 녘까지, 아니, 동틀 때까지 제 실적을 삶아 먹고 뼈까지 발라낼 기세로 거들먹거릴 것이며,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온갖 잔소리들은 내 관자놀이를 쉴 새 없이 쪼아댈 것이다.
나는 허물어져 있던 자세를 마지못해 고쳐 앉으며, 몇 시간째 망부석처럼 적막만 드리운 낚싯대 끝만 멍하니 응시했다.
“오셨습니까.” 뱉어낸 목소리가 생각보다 잠겨 있었다. 앉은 채로 고개만 까딱, 건조한 인사를 건넸다. 그는 가벼운 눈짓으로 답례를 대신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내 발치께의 텅 빈 양동이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냉소가 어렸다.
“또 허탕인가 보군. 자네다운 실적이야.”
“……”
내 옆에 보란 듯이 의자를 펼쳐 앉은 그가 들고 온 양동이를 ‘쿵’ 내려놓았다. 속이 꽉 찬 양동이가 바닥에 부딪히며 내는 둔탁한 소리는, 그의 만족감을 대변하는 듯했다. 이 일이 내게 맞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다. 흥미조차 없는 일에 성과가 따를 리 만무했다.
“통 입질이 없어?”
“……예.”
“없긴. 또 다 놓아줬겠지. 그렇게 심지가 물러서야. 쯧쯧쯧.”
그의 예단은 정확했다. 오늘 새벽녘에만 너덧수는 낚았으나, 그 작은 숨들을 차마 거둘 수 없어 전부 제자리로 돌려보낸 후였다. 사수는 그런 나를 향해 혀를 차며, 벌레라도 보는 듯한 시선을 던지고는 제 낚싯줄을 익숙한 포인트에 정확히 투척했다.
“애써 잡은 걸 왜 자꾸 놓아주는 건가, 자네는?”
“아…… 오늘 올라온 것들이 전부 너무 어려서…….”
“그런 것까지 헤아리다간 언제 할당량 채울 셈인가! 이 미련한 인간아. 이 바닥에서 그런 놈은 자네 하나뿐일 걸세.”
평소보다 비난의 수위가 높았다. 내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한들, 이 냉혹한 세계에서 그것이 변명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모욕까지 감내해야 하는가. 이곳은, 내게는 정말이지 지옥이었다.
“내가 보기에, 자네는 기본이 한참 부족해.”
“……예, 맞습니다.” 차라리 그렇게 단정해주는 편이 나았다.
“이 사람아, 기본이 부족한 걸 알면 머리를 싸매고 다시 배우든가, 아니면 입이라도 열어 물어보든가 해야지.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으면 놈들이 알아서 바늘에 걸려주기라도 한단 말인가?”
“……죄송합니다.” 나는 기계적으로 대답하며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절망스럽게도 퇴근까지는 아직 세 시간이 넘게 남은, 짙푸른 새벽 두 시였다.
“이대론 안 되겠군. 내가 사수로서 특별히 자넬 가르쳐주지. 우선 자네가 아는 사실, 정보, 뭐든 좋으니 아는 대로 다 말해 보게.”
저 능글거리는 면상에 당장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었지만, 그런 객기는 상황을 더 귀찮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길게 심호흡을 하며, 마지못해 이 ‘일’의 기본 수칙 세 가지를 읊조렸다.
“낚싯줄을 팽팽하게 유지할 것, 한 번 잡은 후에는 포인트를 옮기지 말 것, 떡밥은 한 곳에 집중적으로 뿌릴 것입니다.”
“포인트를 옮기지 않는 이유는?”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한 번 낚이면, 그 주변의 다른 것들도 이끌려오기 때문입니다.”
“떡밥을 한 곳에 뿌리는 이유는 뭔가?”
“그들의 시야를 교란하고, 판단을 흐리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흠…….”
내 대답이 그의 예상 범위를 벗어났던 모양이다. 그의 미간에 미세한 주름이 잡혔다.
“대표적인 ‘포인트’를 말해보게.”
“리투아니아, 한국, 러시아…….”
그 순간, 사수의 손목에 채워진 전자 팔찌에서 짧은 진동음이 울렸다. 상부의 호출이었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잠시 다녀올 테니, 내 것까지 잘 보고 있게.”
“예…… 다녀오십시오.” “그리고, 지금부터는 절대 놓아주지 말게.”
사수는 못을 박듯 한마디를 남기고 의자에서 일어나 본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육중한 그림자가 사라지자, 낚시터에는 거짓말처럼 평화가 찾아왔다. 호수는 달빛 아래 잔잔히 숨 쉬었고, 낚싯바늘 끝의 찌는 미동조차 없이 고요했다.
사수가 떠난 지 오 분 남짓 흘렀을까. 몇 시간 동안 죽은 듯 잠잠하던 내 낚싯대의 찌가 갑자기 위아래로 격렬하게 요동쳤다. 나는 심장의 고동을 느끼며,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릴을 감아 올렸다. 낚싯줄 끝에서 전해져 오는 무게는 생명이 아닌, 깊은 수렁에서 건져 올린 절망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기이할 정도로 아무런 반항이 없었다. 마치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그렇게 묵묵히 끌려 나왔다.
……흠. 이런 경우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내 낚싯바늘 끝에는, 중년의 사내가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해진 소매 끝을 붙잡은 가녀린 팔, 어린 여자아이였다. 사내의 몸은 이미 재가 될 운명처럼 허물어져, 어떠한 소생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에 비해 아이는, 가쁜 숨만 멎었을 뿐,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듯 보였다.
“이 양반아, 혼자 갈 것이지, 여긴 어디라고 애까지 끌고 오나…….”
나는 그들을 낚싯바늘에서 조심스레 빼내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혼잣말을 흘렸다. 왼손에는 사내를, 오른손에는 아이를 들고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아이의 작은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사내만을 양동이에 넣었다. 그리고 그의 작은 새끼는, 다시 차가운 호수 속으로 돌려보냈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시는 잡히지 마라.” 그렇게 나는, 오늘도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고 새벽 호숫가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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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식입니다. 서울 한 아파트에서 부녀가 함께 생을 마감하려던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인 40대 A 모 씨는 현장에서 숨졌으나, 10대 딸은 극적으로 구조되어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경찰은 A 모 씨가 사업 실패 등으로 인한 과도한 채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방 안에서는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타다 만 연탄 두 장이 발견되었으며, 창문 틈은 종이상자로 꼼꼼히 막혀 있었던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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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으로 창작된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