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초단편소설

by 현범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거친 함성이 잠을 깨웠다. 방 안은 아직 어두웠고, 나는 언니의 분주한 등을 보았다.

언니는 낡은 탁자 앞에 서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모든 창을 검은 천으로 가린 탓에 방 안은 늘 밤 같았지만, 작은 구멍으로 통과한 햇빛은 삐뚤어진 원뿔 모양으로 새어들었다. 나는 그 빛기둥 속을 부유하는 먼지들이, 꼭 녹지 않는 진눈깨비 같다고 생각했다.

“언니.” 나는 언니의 등에 대고 나직이 불렀다.

“……” 언니는 화가 났을 때처럼 대답이 없었다. 등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해 있었다.

“언니야.” 내가 채근하자, 언니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제야 몸을 돌려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언니는 자신의 얼굴을 내게 가까이 대며, 내 양쪽 어깨를 아플 정도로 꽉 부여잡았다.

“잘 들어. 우리, 이제 삼촌한테 갈 거야.”

“응.”

“어제 언니가 말해준 약속, 안 까먹었지?”

“응. 손 꽉 잡기, 넘어지지 않기.”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만약에 손을 놓치면, 100초 동안 그 자리에 숨어있기.”

“똑똑이.” 언니는 그제야 희미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고, 나는 간지러운 칭찬에 입꼬리만 씰룩였다.

일찍이 부모를 여읜 우리를 데려다 키워준 삼촌은, 우리에게 예절과 글을 가르칠 때마다 늘 ‘똑똑이’라 불러주었다. 삼촌은 며칠째 집에 오지 않았다. 언니 말로는 ‘어른들의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느라 바쁘다고 했다. 나는 티 내지 않았지만, 사실은 무척이나 궁금했고, 삼촌이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언니는 한참을 매만지던 것을 들어 보였다. 하얀 천에 대나무 살을 덧댄, 커다란 방패연이었다. 다른 하나에는 내가 아직 배우지 못한, 성난 글씨들이 가득했다.

언니와 나는 한 손을 꼭 마주 잡고 낡은 나무문 앞에 섰다. 나머지 손에 언니는 글씨가 적힌 천을, 나는 방패연을 들었다. 밖은 아까보다 더 소란스러웠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거대한 강물처럼 흐르는 소리가 났다.

“약속, 안 까먹었지?”

“손 꽉 잡기, 넘어….”

“됐어.” 언니는 짧게 말하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꼭 맞잡은 언니의 손에서 미세한 떨림이 내게로 전해져 왔다. ‘쾅! 쾅! 쾅-’ 누군가 문을 세 번, 강하게 두드렸다. 약속된 신호였다. 언니와 나는, 두 개의 작은 고사리는, 온 힘을 다해 문을 밀고 세상 밖으로 나섰다.

“대한 독립 만세!” 문을 열자마자, 빛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이 거대한 파도처럼 우리를 덮쳤다.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지축이라도 흔들려는 듯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내가 든 하얀 방패연은 사람들의 머리 위, 하늘과 땅 사이를 힘차게 헤엄쳤다. 저 멀리, 위태로운 단상 위에서 목이 터져라 소리치는 삼촌이 보였다. 우리는 손을 더 꽉 잡고는, 거대한 인파의 물결 속으로 용감하게 들어갔다.

“대한 독립 만세!” 언니가 먼저 소리쳤다. 나도 언니를 따라, 저 멀리 보이는 삼촌을 향해, 내 작은 목소리를 전부 꺼내 소리쳤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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