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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Jun 08. 2021

춤추는 몸에 심긴 생명의 씨앗

어려서부터 몸을 움직이기 좋아했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어릴 적 춤추는 장면보다 더 이전부터 춤을 추었다는 아빠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꾀나 어려서부터 움직임을 좋아했던 것 같다. 중학생이 되어 본격적으로 춤을 배워보고 싶기 전까지 춤은 그냥 그것이 춤인지도 몰랐던 움직임이었으며 꾀나 즐거웠다. 고등학생이 되도록 부모님은 춤을 가르쳐주지 않으셨다. 그냥 공부 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셨다. 고3이 되어서야 무용을 하면 일류대에 갈 수 있다는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무용이 시작되었다. 너무 늦게 시작한 무용은 재미있었지만 늘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다. 어려서부터 춤을 춘 아이들보다 뻣뻣했고 테크닉은 늘 부족했고 순서 외우는 것도 더디기만 했다. 더 잘하고 싶었다. 더 높이 날고 싶었고 더 유연하고 싶었다. 그리고 더 날씬하고 싶었다. 무리한 관절은 보호대를 하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아팠고 머리도 숙이고 감지 못할 정도로 아픈 허리는 늘 근육량 부족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다이어트는 계속되었다. 뼈와 가죽, 약간의 근육 뿐인 몸에도 계속해서 체중감량을 요구받았고 하루 우유 1000ml만 먹으면서도 체중은 줄지 않았다. 춤은 점점 춤이 즐거웠던 나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갖고 싶지만 점점 더 내게서 멀어지는 것, 나는 잘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자괴감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런 못난 마음은 어떤 것을 시도하기도 전에 포기하게 만들었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외면했다. 나의 몸도 내게 늘 불만을 안겨주는 대상이 되었다. 왜 더 날씬하지 않지? 왜 난 스트레칭이 이렇게 안 늘지? 내 골반은 왜 안으로 말려있지? 내 발목에는 왜 남에게 없는 뼈가 있는 거지?(이 악세서리 뼈 때문에 연습시간이 길어지면 발목에서 열이 나며 통증을 유발함) 나의 몸은 늘 무언가가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춤은 그렇게 나의 자존감을 떨어뜨렸다.  

그래도 춤을 추었다. 더 잘하고 싶어서 추었고,  미련이 남아서, 버릴 수는 없어서 추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은 누구보다 춤을 사랑한다. 더 잘해서 더 유연해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나의 몸을 사랑한다. 이전보다 날씬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전에 원하던 모습에서 훨씬 더 멀어졌지만 이제는 나를 사랑할 줄 안다. 나에게 늘 불만을 안겨주던 몸에 조물주가 주신 생명의 씨앗이 담긴 순간, 이제 더 이상 내 몸에 저주를 퍼부을 수 없었다. 다이어트도 잊었다. 춤을 추던 안 추던 더 말라야 한다는 강박도 완전하게 버려진 것은 아니지만 내 아기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골고루 먹으려 애썼다.  더 잘하려고 하던 움직임 대신 내가 건강하기 위한 움직임들을 선택했다. 내가 건강해야 아기가 건강하게 자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입덧과 빈혈증상으로 강제 쉼도 가졌다. 나를 위한 휴식시간을 일부러 가지며 나를 되돌아 보고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태교에 좋다고 조용히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고 뜨개질과 십자수도 했다. 물론 얼마 못 가서 남들에게 다 나눠줬지만 말이다.

임신은 춤의 경쟁적 구도로 인해 열등하다고 느낀 내 몸에 대한 인식을 성스럽고 귀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되어 주었다. 나를 생각하게 되면서 나의 춤이 얼마나 잘 못 되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춤은 그런것이 아니다. 춤은 그냥 춤이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많이 하는 것만이 춤이 아니라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그 어떤 일보다 소중한 일. 내 안에 생명을 키워내야 하는 일을 부여받았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내 몸을 더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 내 몸이 얼마나 소중한지 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아기가 자라갔다. 납작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배가 점점 부풀어올랐다. 놀라운 일이었고 싫지 않았다. 부풀은 배 안에서 아기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부드럽고 유연한 아기의 움직임이 배안의 피부를 매끄럽게 자극했다. 배 속에서 편안하게 움직이는 아기의 움직임은 얼마나 평온하고 자유롭게 느껴지는지. 때때로 배 위로 불뚝불뚝 아기가 발로 차는 것도 마냥 신기했다. 인간은 언제부터 춤을 추냐는 질문에 ‘배 속의 태동이 최초의 춤이다’라는 의견도 있듯이 아기는 엄마의 배 속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내가 그 때까지 경험한 춤과는 전혀 다른 매우 편안하고 자유롭게, 그 어떤 테크닉을 배우지 않았어도 그 어떤 춤보다 훌륭했고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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