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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Oct 22. 2023

이렇게 화사한 날 만난 가장 초라한 나

거리에 온통 빛이 가득하다. 여기저기 꽃 소식에 맘이 설렌다. 목련이 피면 봄이 시작된다. 개나리와 벚꽃에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시고 설레던 날. 생각지도 못한 나를 만났다. 나조차 보고 싶지 않았던 가장 초라한 나.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나의 모습은 심지어 나조차 외면해버렸던 그 모습 그대로 예고 없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의 기준을 두고 산다. 행복의 조건이 A부터 Z까지 있다면 누군가는 A만 있으면 다른 게 없어도 될 만큼 A가 중요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런 게 뭐 그리 중요하냐며 별 탈 없이 지낼 수만 있다면 행복하다는 사람도 있다. ‘A만 중요하다고 하는 A만 없는 사람’이 내게 상담을 청한다면 난 뭐라고 답해줄까? 그래도 당신은 B부터 Z를 다 가진 사람이지 않느냐고 말해주면 그에게 위로가 될까?

살다보면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일 때가 있다. 걱정할 것도 없어 보이는 그들의 삶도 사실 들여다보면 또 다른 고민으로 고통 받고 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평생 행복 경험치를 평균내면 다 같은 값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에게는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과 덜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이 있게 마련이므로 때때로 누군가의 불행한 이유가 나에게는 불행의 이유가 되지 않듯이 누군가에게는  행복해 보이는 요소가 나에게 행복한 이유가 되지 않기도 한다.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느냐에 따라 같은 삶을 살더라도 누군가는 행복할 수 있고 누군가는 불행할 수 있다.

더없이 화창한 봄날 불행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급격한 기온변화로 인한 건강의 불균형은 불안정한 정서를 만들어내고 봄을 만끽하는 행복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겪는, 최근엔 SNS에 도배되는 ‘나만 빼고 다 행복한 것 같은 피드’들을 보며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도 이런 우울감이 생기는데 한 몫 한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봄에 느낄 수밖에 없는 심리적 부담과 과거 실패경험에 대한 트라우마도 봄철 우울증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조량이 적은 겨울이 더 우울한 거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봄철 우울증은 겨울철 우울증보다 큰 문제를 안고 있다. 봄철 늘어난 일조량은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을 증가시킨다. ‘행복 호르몬’이라는 별명을 가진 세로토닌은 활력을 주고 기분을 좋게 하기도 하지만 충동적 행동을 야기하기도 한다. 특히 우울증 환우들에게 충동성은 감정조절의 어려움을 겪게 하고 이것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스프링피크’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이다. ‘스프링피크’는 봄철에 급격하게 자살률이 증가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2020년-2022년의 우리나라 월별 자살 사망자 통계자료를 보더라도 봄철 사망자수가 다른 달보다 크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20대 한 여배우에 이어 유명가수의 극단적 선택이 이슈가 되었다. 10대들의 자살기사도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이 봄,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고 생명이 꿈틀거리고 연둣빛 새싹이 움트는 이때, 누군가는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을까? 없는 것, 힘든 것만 생각하지 말자고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이미 있는 것, 지난 날 좋았던 일을 돌아보라고 말해주면 도움이 될까? 그런 말이 나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왠지 위로가 될 것 같지 않다. 나는 나에게 걷기를 처방했다. 걸으면서 머리 속으로 날아 들어오는 생각들을 그저 맞이하기도 하고, 스스로 어처구니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허무맹랑한 상상을 보태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감정의 뿌리까지 들여다보기 위한 질문의 질문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내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 왜 그렇게 중요해졌는지를 더듬어 올라가보았다. 혹 별거 아닌데 내가 가진 아주 개인적인 문제 가령 환경적 요인 같은 것 때문에 문제를 바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내 감정에 내가 속고 있는 건 아닌지를 점검해 나갔다.  

지금도 내 주변을 비롯해 우울감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함께 답을 찾아보자고 그 때까지는 스스로를 돌보자고 말하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이야기도 너무나 조심스럽다. 다만 내가 걷기를 택했던 것처럼 몸을 일으켜보자고 속삭여 본다. 마음은 마음먹는 대로 추스러지지 않고 불쑥불쑥 자기의지와 상관없이 힘든 생각들이 날아 들어와 둥지를 틀지만 몸을 위해서는 할 수 있는 것들을 좀 해보자고,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니까 그렇게 해보자고 부축해 함께 한 걸음 내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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