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추던 S 라인의 몸매가 아니 솔직히 말하면 춤을 추던 I 라인의 몸매는 배 안에 아기가 자라면서 완벽한 D라인을 만들어 갔다. 하루 서너잔씩 마시던 좋아하던 커피도 하루에 딱 한 잔 밖에 마시면 안 된다는 의사의 말에 복종했다. 내 건강이 아닌 아기의 건강이 달린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 귀한 한 잔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원정을 가기도 하고 태어날 아기의 용품을 준비하면서 출산일을 기다렸다.
바로 내일이 출산예정일인데 몸에는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내리면 좋다는 말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짚은 발에 체중이 실리며 몸의 근육들이 수축을 일으켰다. 출산도 결국 근육의 수축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그 때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배 안의 아기를 품에 안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옅은 핑크빛으로 아기의 신호를 받았다. 분주한 마음으로 짐을 챙겨 병원을 찾았지만 오후 늦게나 다시 오라는 의사의 말대로 느지막한 오후부터 진통이 시작되었다. 이게 진통인가? 싶은 알싸함이 10분에 한 번씩 오갔다. 무용하는 사람들은 더 수월하게 아기를 낳는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이 정도면 뭐. 별거 아니네’라고 자만한게 화근이다. 7분, 5분, 3분 간격으로 줄어드는 시간은 둘째 치고 진통의 강도는 지금까지 경험한 어떤 고통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양손으로 빨래를 비틀어 짜는 것처럼 몸 속 장기들을 비틀어 짜 아기를 밀어내는 것 같았다. 몸 밖으로 아기를 밀어내기 위한 몸 안의 근육 수축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정한 시차를 두고 밤이 새도록 지속되었다. 선풍기 날개에 머리카락이 감기던 장면이 떠올랐다. 몸 안에 프로펠러가 돌기 시작하면 몸 속의 장기들이 말려 비틀리며 꼬여 들어가는 것만 같은 고통에 소리를 지르고 손에 잡히는 것들을 움켜쥐었다. 지금이야 많은 산모들이 무통분만을 해서 자연 출산을 미개인처럼 여기기도 하지만 당시 나는 혹여라도 다시 내가 춤을 추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아기에게 약물 부작용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용감하게도 그냥 낳겠다고 했다. 물론 진통시간이 길어지면서 살짝 후회가 밀려들기도 했지만 말이다. 살짝? 많이였던가?
분만실에 들어서면 본격적인 분만이 시작된다. 배 속에서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수축으로 계속해서 최고고통기록을 갱신하는 진통이 계속되고 그 수축의 리듬에 맞게 자의의 복부수축을 함께 해주어야 한다. 진통이 지나가고 멈춰있는 아주 짧은 잠깐 동은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있다가 다시 진통이 시작되면 어디서 다시 힘이 나는지 배에 힘을 주기를 여러 차례.
드디어 몸 밖으로 말캉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아기가 쓰윽 밀려나갔다.
‘응애!’
밤새 소리지르고 울고 아파하던 고통이 물밀 듯이 쓸려가고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 솟구쳤다. 몸으로 느낄 수만 있었던 아기를 눈으로 보고 품에 안을 수 있었던 그 시간을 평생 잊을 수 있을까? 살아있는 생명체가 나에게서 나왔을 때 느꼈었던 감정, 마음, 몸의 기억들은 출산이 아니고서는 경험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경이로움이었다. 지금의 나를 만든 수많은 퍼즐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출산의 경험이다. 4년 후 나는 같은 경험을 똑같이 되풀이했고 처음 만났던 아기는 어느새 키가 나만큼 자란 고등학생이 되어 나의 많은 결정들에 자신의 의견을 보태고 있다. 둘째도 내년이면 중학생이 된다.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은 단연 출산이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만나는 과정은 물론 몸에서 일어나는 자동적인 메커니즘과 몸의 각 부분별로 경험했던 기억들이 나의 예술적 토양에 자양분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