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미영 Dec 23. 2020

춤추는 시니어

나이쯤이야, 시린 무릎쯤이야 ---나이도 아픔도 잊은 춤

“♪야~~ 이 야~이 야이 내 나이가 어때서♬”

둥글게 모여 앉은 시니어 그룹 30여 명이 목청을 높여 노래를 부르며 손으로는 열심히 춤을 추고 있다.

지방의 한 복지관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인 무용치료 그룹은 남자 15명, 여자 15명으로 구성된 독거노인들이다. 빈집에 덩그러니 남아 외로움을 홀로 달래야 하는 노인들은 이곳에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아픈 곳을 도닥이기도 하고 지역사회의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유일한 소통의 창구가 되어주는 복지관이 그분들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장소이다.

강당에 들어서면 둥글게 늘어서 있는 의자 30개가 먼저 치료사를 맞는다. 노인의 신체 특성상 바닥에 앉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쇠약해진 신체 곳곳이 젊은 날의 치열했던 삶을 반영하듯 삐그덕 거리며 일상생활을 위협한다. 이곳에 모인 노인들 중 많은 이들이 지팡이를 의지하며 걷거나, 앉고 일어설 때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가능할 정도로 하체의 불편함을 호소한다. 그래서 세션의 시작을 바닥이 아닌 의자에 둘러앉아 시작하기로 했다.

그룹의 특성을 고려해 음악을 고르고 메테리얼을 정한다. 리듬에 맞춘 음악을 사용하는데 노인 그룹은 트로트 노래나 옛적에 듣던 팝송, 향수를 자극하는 노래 등이 움직임을 이끌어 내는데 도움이 된다.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너무 빠르지 않은 곡으로 세션을 시작했다. 둥글게 앉은 30명의 노인들이 커다란 고무 밴드를 둘러 잡고 천천히 팔을 돌리기도 하고 앞뒤로 흔들기도 하고,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신체도 이완하고 마음도 이완한다. 옆 사람과 악수를 하면서 인사를 하고 맞은편에 앉은 사람과 눈을 맞추기도 한다. 서로의 손을 주물러 주기도 하고 컨디션이 좋은 날은 둘씩 짝을 지어 머리도 만져주고 어깨도 주물러주고 등도 쓸어준다.

한 할머니의 고백에 코끝이 찡해진다. 한 평생 누가 어깨 한번 주물러 준 적 없다고 했다. 죽도록 일하고 자식 키우고 시부모를 봉양하고도 안마는커녕 고맙다 인사한 번 제대로 못 들어봤다고. 그나마도 아픈 자신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가버린 남편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이렇게 누가 자기 등을 쓸어주고 손을 잡아주니 위로가 된다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신다.

그렇게 많이도 외로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함께 모였다.

시니어 그룹은 아동그룹과 매우 닮아있다. 이렇게 얘기하면 어르신들이 노여워하실지 모르겠지만, 왜 우리 엄마가 외할머니 보고 갈수록 아이 같아지는지 모르겠다고 하신 말씀을 실감했다. 할머니들은 동료 할머니들을 의지하면서도 사소한 일에 시샘하고 서운해하고 토라졌다. 그러다 마음이 풀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하하 호호하신다. 할아버지들도 평소 들어주는 사람이 없던 터라 한번 말문이 열리면 그칠 줄 모르다가 결국 누가 한 소리 하면 이내 수그러진다. 서로 짝이라도 맺을라 치면 누구는 좋고 누구는 싫고 아이들처럼 사람을 가리기도 하고 치료사가 어쩌다 본인에게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것 같으면 서운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무례한 듯 하지만) 약간 귀엽기까지 한 것은 그들의 외로움과 아픔을 조금씩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젊어서 혼자되어 일평생 외로움을 삭인 분, 얼마 전 배우자를 하늘로 보내신 분, 친한 친구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 슬픔에 빠져있는 분, 자식을 먼저 보낸 분, 여기저기 눈치 보다가 이제야 혼자되셨지만 마음 둘 곳 찾지 못해 방황 중인 분, 너무 일을 많이 해서 허리가 구부러진 분, 여기저기 수술해서 온 몸에 안 아픈 곳이 없는 분, 자식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분 등 사연은 가지각색이지만 그들은 모두 당신들의 마음을 공감해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계셨다. 작은 칭찬이라도 뛸 듯이 기뻐하고 작은 움직임에 큰 성취감을 느꼈으며 작은 토닥거림에 눈물을 훔치셨다. 그들의 아이 같음에는 그들의 아픔과 외로움과 젊은 날 현실의 삶에 쫓겨 돌봐주지 못했던 마음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들의 주름살에, 구부정한 어깨에, 아픈 무릎에 지금 편하게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노고가 담겨있는 듯하다.

이런 어르신들이 함께 모여 춤을 춘다.

먼저, 그들의 신체에 어떤 부위가 있는지 각각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신체에 대한 탐색이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목을 돌리자면 어깨까지 따라 빙글빙글 돌린다. 손목을 돌려보자면 온 팔을 휘젓는다. 오랜동안 자신의 신체에 관심이 없었던 탓이다. 서로의 모습을 관찰하다 이내 웃음보가 터졌다. 그러면서 서서히 자신의 신체에 있는 각 관절에 대한, 신체 각 부위에 대한 재인식이 이루어지며 조금씩 몸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자신에 대한 신체인식이 이루어진 후에는 상대방에 대한 교류가 시작된다. 옆 사람에게 부드러운 수건을 건네 보기도 하고 공을 건네 보기도 한다. 때로는 그룹에서 나온 다양한 상상 속 이미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가령 꼬물거리는 금붕어를 조심스럽게 전달하기도 하고 커다란 수박을 전달하기도 하고 장난기 많은 할아버지는 금송아지를 낑낑거리며 건네주기도 한다. 받은 분도 금송아지라니까 또 기분 좋게 웃으며 받아두고는 허리를 쭉 펴본다.

이렇게 전달된 무언가가 누군가의 제안에 따라 다양한 활동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봄철 들판에 널린 쑥을 캐고 산천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진달래꽃을 따다 젊은 날 사랑하는 누군가와 화전을 부쳐 막걸리 한 잔 하던 기억이 떠오르면 움직임은 쑥을 캐러 들판으로 걸어가는 동작부터 시작된다. 리듬에 맞게 경쾌하게 발걸음을 떼는가 싶던 움직임은 전력질주가 되어 숨이 턱에 차오르며 심장이 요동친다. 서서는 언제 뛰어봤을지도 모를 다리지만 의자에 앉은 채로 드넓은 들판을 마음껏 달리는 상상을 하며 온 힘을 다해 달려보는 것이다. 뛰다가 걷다가 옆 사람의 손을 잡아끌어주기도 하며 들판에서, 산천에서 가져온 쑥과 진달래를 요리하기 시작한다. 노인들은 그 일련의 과정들을 기억해내고 그때의 즐거운 감정들을 ‘바로 지금 이곳에서’ 다시 느끼며 현실 속에서 또 다른 즐거운 기억으로의 재탄생을 경험한다. 요리하고 먹고 옆 사람에게 먹여주는 움직임들에서 한참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사람의 온기를 경험하는 노인들의 미소가 행복하다.

그런 기억의 회상이 모두 즐거울 수는 없다. 때로는 분노의 감정이 때로는 슬픔의 감정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모두 함께 발을 구르기도 하고 있는 힘을 다해 손으로 잡아 던져버리기도 하고 옆 사람의 토닥거림에 위로를 받기도 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조절해 간다.

움직임을 통해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언어를 사용해 보기도 한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고맙다 라는 표현에 유난히도 인색했던 어르신들은 움직임과 함께 그동안 하고 싶어도 못해봤던 말들을 뱉어본다. 처음이 어렵지 한 번 해보시더니 서로들 좋아하시며 한 번 더 해보기도 하신다. 세션이 끝나며 한 마디씩 하신다. “오랜만에 아이처럼 신나게 뛰어봤다. 앉아서 뛰는 것은 생각도 못했는데 속이 후련하다.”, “누가 내 몸을 주물러 주고 수고했다고 등을 쓸어주니 행복하다.”, “사랑한다는 말이 이렇게 쉬운 줄 알았다면 젊은 날 더 많이 해 줄걸 너무나 아낀 것이 후회된다. 이제라도 많이 해주어야겠다. 여러분, 사랑합니다.”라며 아이처럼 웃는 어르신들의 웃음이 봄 햇살처럼 눈부셨다. 부디 오래오래 행복하시기를....

이전 15화 춤추는 군인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