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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Feb 08. 2020

춤추는 ‘아버지와 자녀’

춤을 통해 발견한 가장 소중한 것

  


아기자기 예쁘게 지어진 어린이집의 계단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밟아 오르자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반겨주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킨다. 3층으로 오르자 아빠들의 ‘아버지 교육’이 한창이다. 아빠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던 그날은 늘어지게 늦잠 자며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을, 혹은 일주일간 근무의 피로를 못다 한 취미활동으로 보내고 있을 한가로운 토요일 오전이다. 

강의가 끝날 무렵 아이들이 한 줄 기차를 만들어 계단 벽을 따라 올라왔다. 3세부터 7세까지 구성된 아이들은 이어질 수업에 대한 기대로 눈을 반짝였다. 원장님의 소개로 ‘아빠와 함께하는 움직임 수업’이 시작되었다. 주의력이 짧고 아직 어리광이 가득한 유아들과 경직된 모습으로 움직임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아빠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덩달아 긴장된 표정을 감출 수 없다.

아이들은 적응력도 빠르고 리듬을 즐기기 때문에 신체 활동곡에 맞추어 워밍업을 시작했다. 한 아이씩 팔을 높이 들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인사하고 눈을 맞췄다. 손바닥을 머리 위에 대어 주며 점프도 시키고 리듬에 맞추어 몸을 흔들기도 했다. 아이들이 마음 문을 열고 주의집중을 하자 아빠들도 조금씩 안도하는 듯했다. 약간의 동작을 배운 뒤 아빠와 아이가 음악에 맞추어 서로 손을 맞잡고 점프하며 공간을 이동했다. 움직임은 서서히 춤이 되어 리듬을 맞추고 아이와 아빠의 호흡이 맞기 시작했다. 서로의 움직임이 조화로워지자 움직임에 자신감이 붙고 점점 흥미를 느끼게 된다. 음악의 후렴구에서 아빠의 큰 팔에 안겨 빙글빙글 돌며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자 내 마음까지 행복해진다.      


움직임이 주는 행복


 어떤 서먹한 관계도, 얼어붙은 관계도 춤 앞에서는 모두 허물어진다. 처음엔 서로의 눈을 마주 보기도, 손을 맞잡고 서 있는 것조차도 어색하기만 하다. 하지만 리듬에 맞추어 함께 움직이고 같은 공간을  온 힘을 다해 뛰며 아빠의 손을 이끄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아빠와의 활동을 갈망했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몸으로 함께 놀아준다는 것, 한 공간 안에서 함께 숨 쉬고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건 그 어떤 도구보다 강력하게 서로의 친밀감을 높여준다. 그 즐거움과 행복함, 벅찬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저 말없이 꼭 안아주는 진한 포옹으로 아이들은 무뚝뚝하기만 했던 아빠의 충만한 사랑을 온몸으로 

평소 늘 생각하지만 하지 못했던 말들을 고백하기도 했다. “아빠 함께 놀아주셔서 감사해요.” , “네가 있어 아빠는 너무 행복하단다.” “사랑해.” 등 가슴이 뭉클해지는 고백들이 이어졌다. ‘말’이라는 도구는 가장 쉬운 듯하면서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겐 인색하거나 어려운 도구가 되기도 한다. 더구나 우리네 문화에서는 ‘사랑해’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사랑해’라는 말 대신 행동을 만들기로 했다. 가정마다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사랑해’ 동작을 만들었다. 어떤 가정은 어깨를 토닥 거리기도 했고 어떤 가정은 등을 쓸어내려 주기도 했다. 하이파이브로 ‘사랑해’를 대신하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동작을 만들면서 이내 아빠와 아이가 서로의 사랑을 깊이 확인하고 있었다.

서로의 마음을 공감해주는 움직임들도 행해졌다. 때로는 말보다 체온이 전해지는 움직임이 강력한 사랑의 고백이 된다. 아이와 손바닥을 마주대고 움직임을 따라 해 주며 아이의 마음을 공감하고 아빠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아빠의 마음을 읽어 본다. 아이들은 아빠가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 해 주기만 해도 신이 났다. 연신 싱글벙글하던 한 남자아이가 아빠가 평소에는 바빠서 같이 놀아주지 못하는데 오늘 같이 놀아 주셔서 너무나 신이 난다고 고백했다. 옆의 아이가 우리 아빠는 집에서 만날 잠만 잤다고 이야기하자 아빠의 얼굴이 붉어진다. 함께 놀아주는 아빠이던, 바빠서 혹은 피곤해서 함께 놀아주지 못했던 아빠이던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놀아 주던 아빠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어린 유아들과 함께 하느라 아빠들의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했다. 아이들이 ‘아빠와 비행기를 타고 싶다’, ‘레고놀이를 하고 싶다’고 하는 바람에 아빠들은 모두 비행기가 되어 아이들을 태우고 날아다녀야 했으며 서로가 레고가 되어 이리저리 움직임 조립을 하기도 했다. 움직임은 여러 가지 이미지 활동을 가능케 하기에 아이들이 원하는 어떠한 활동도 원하는 대로 해 줄 수 있었다. 

유아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짧은 시간 집중할 수 있는 활동들을 여러 가지 진행하면서 때로는 아빠와 눈을 맞추고, 서로를 안아주며, 서로를 토닥이며, 아기 때처럼 무릎에 앉혀 스윙 동작을 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아빠가 퇴근하면 아이와 함께 할 핸드 셰이크(handshake)를 만들어 연습했다. 이제부터는 아빠와 만나면 핸드 셰이크로 인사할 것이라는 약속도 함께 했다.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숨긴 보물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아빠의 눈동자 속에 아빠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했더니 아이들의 눈동자가 바빠졌다. 한참을 그렇게 아빠 눈동자를 들여다보던 아이들이 마침내 그 보물을 찾아냈다. 바로 아이 자신이었다. 

춤을 통해 한층 가까워진 아이와 아빠. 나중에 담당교사가 아이가 오래도록 그 날의 즐거움을 이야기한다며 감사인사를 전해왔다. 춤은 피부에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된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와의 춤이 필요하다.

나중에가 아닌 바로 지금 말이다. 아이는 너무 금새 자라버리기에 늘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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