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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Aug 02. 2022

낯선 사람을 만날 기회

며칠 전 일요일에 대형 쇼핑몰에 갔다. 대부분의 물건 및 먹거리를 인터넷으로 구매하는데 꼭 직접 가서 보고 골라야 하는 것들이 종종 있다. 

이번엔 아들의 등산화를 골라 신겨보고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아들 학교는 7학년(중1) 가을이 되면 지리산을 등반한다. 아직도 아기티를 벗지 못한 사춘기 아이들이 며칠 동안 갈아입을 옷가지에 먹을거리며 조리도구, 침낭까지 들어있는 무지막지한 배낭을 메고 한 번도 해보지 않아 상상조차 안 되는 힘든 등산을 하는 것인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등산화이다. 너무 커도 안 되고(아깝다고 너무 큰걸 사서 신겼다가는 등산이 너무 힘들어져 중도 포기할 수도 있고) 너무 낡아도 안 되고(산을 오르다 고무밑창이 부스러져 발바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발목을 보호할 수 있는지, 방수는 되는지 등등의 요건을 맞추려니 한 번 신을 거라고 누군가에게 물려받기도 걱정되고 대충 인터넷으로 샀다가는 사이즈 맞추기가 여간 어렵지 않겠다 싶었기 때문에 쇼핑몰을 택했다. 

몸을 움직여 발품을 팔아야 하는 오프라인 매장 쇼핑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인터넷 쇼핑은 손가락이랑 눈만 움직이면 되니 시간가는 줄 모르는데 반해 오프라인 매장은 발을 옮겨야 했고 수많은 인파 속에서 이리 저리 피하며 내 공간을 만들어 다녀야 했다.어디 그 뿐인가? 다가오는 직원들을 상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고 질문에 대답도 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이 내가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한 과정임에도 인터넷에서는 필요 없는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은 분명했다. 마음에 드는 신발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기를 한 시간여. 아들은 이미 투덜거리기 시작했고 나도 다 포기하고 집에 가고 싶어졌다. 예전엔 백화점에서 하루 종일도 있을 수 있었는데 이젠 고작 한 시간도 힘들게 되다니. 이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 다시 생각해보면 ‘사람들’이었다. 코로나 3년 동안 알아서 격리하느라 알지 못하는 다수의 사람들과 부딪힐 일이 전혀 없었다. 너무 오랜만에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피해 다니다보니 피로감이 몰려온 것이다. 떨어진 당을 보충하기 위해 사온 아이스크림을 긴 소파에 함께 앉아 먹는 동안 미묘하게 있었던 자리싸움 같은 것, 구매하거나 옷을 입어보기 위해 줄을 서면서 생기는 새치기 등의 에피소드, 그냥 보고 싶은데 직원이 말을 거는 것. 직원이 창고까지 가서 가져다 준 신발이 결국 사고 싶지 않아 다른 곳을 보고 오겠다며 나오는 그 찝찝함 등. 나는 낯선 이들과 한 공간에 있는 시간이 너무 오래 단절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보니 사람들 속에 있는 것 자체가 피곤했던 것이다. 

인터넷은 많은 것을 편리하게 해 주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시켜 결국 그 속에서 경험하며 성숙해져야 할 많은 것들과 접할 기회를 소실시킨다.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와 무언가를 조율하거나 눈치를 보거나 양보를 해야 하는 등의 일상은 귀찮을 수 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성숙할 수 있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무용치료 세션도 화상인터넷으로 점점 숙달된 기술로 진행하면서 이렇게도 괜찮겠다 싶었지만 아니었다. 영상으로 맺는 관계는 한계가 있다. 서로 만나 직접 보고 손을 맞잡고 부대끼며 때로는 서로 때문에 불편함도 느끼고 결핍도 느끼고 양보도 하고 그 안에서 조율하는 사이에 보다 성숙한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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